다른 회원의 질문이 나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기초적인 질문이지만 가장 궁금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입사면접에서도 왜 지원했습니까? 연애를 하게 되어도 왜 좋아하게 되었습니까? 이런 물음을 가지게 된다. 사실은 나도 다른 사람에게 그런 점이 가장 궁금했습니다. 그들은 왜 여기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보기에도 이상한 모습인데, 왜 들어왔을까? 그들도 나처럼 다 사연이 있는 것일까? 나는 절대 실수도 들어오게 된 것이라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습니다.

"멋있어 보여서요. 바둑 두는 모습을 보면 멋있게 보여요."
이정도로 넘어가길 기대하면서 면접에서 “이회사의 경영방침이 마음에 들었습니다.”라는 말하듯 일반적인 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답을 하는 내 자신이 너무 우스워서 속으로 웃었습니다. 그러다가 무엇이 연상이 되었는지 웃음이 속에서 올라오는 바람에 큭하고 웃어버렸습니다. 그러자 연이어 사람들은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순간 이곳에서 나의 별명은'ㅋㅋ'가 되어버렸습니다. 크크.
 

어젯밤 꿈때문에 오늘의 기분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날씨는 화창하고 맑고 바람도 따뜻해서 봄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의 모습은 화사하기만 하지만 어울리지 않게도 나의 기분은 좋지않습니다. “I love you for sentimental reasons"라는 노래처럼 축축 쳐지기만 했습니다. 몸을 노래에 맡긴다면 그렇게 노래의 음표를 따라 바닥으로 바닥에서 더 바닥밑으로 빠져들 것 같았습니다.

간밤에 중학교때 헤어진 친구가 나타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부모님이 서울로 이사 가는 통에 서울로 전학을 가버린 친구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사귄 친구인 탓에 헤어짐은 무척이나 가슴 아팠습니다. 그 후, 고등학교까지는 서로 편지로 연락이 되었으나 친구 쪽에서 연락이 오지 않아 끊어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친구가 먼저 연락을 끊었다는 것에 더욱 가슴 아팠습니다. 이유야 있었겠지만, 버려진 기분이었습니다. 버려지는 기분만큼 처참한 것은 없습니다. 스스로 존재의 가치를 찾아야 하는 것이겠지만 누군가로부터 버려질 때 그것으로부터 헤어나기 위해서는 많은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많이 흘려도 한 그릇도 안되는 양이겠지만 그 눈물의 호수에서 배를 저어 나오는 것은 태풍이 불어 난파된 배의 조각을 잡고 바다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어렵고 황량한 사막에서 걸어나오는 것보다 힘들 것입니다.
그렇게 ‘아 힘들다’라는 말이 입에 맴돌도록 한 친구가 꿈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도 잠시 꿈에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진 것입니다. 대학에 들어오고 바쁜 탓에 모두 잊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비록 꿈이었지만 다시 나타난 친구는 나에게 예전의 힘들었던 것을 기억 시키기 보다는 그리움을 일깨웠습니다.
'보고 싶다.... 지금은 뭘하고 있을까?'
그리움의 무게가 그렇게 나를 바닥으로 가라앉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크크야~ 뭐하고 있냐?"
같은 신입생인 대환이가 옆에 왔습니다.
"그냥 앉아있어" 힘없이 말했습니다.
"손에 그건 뭐냐?"

잠을 깬 새벽부터 기분이 좋지 않아 집에서 나올 때는 요즘 유행하고 있는 인터넷 소설을 출력해서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을 손에 들고 다니면 읽지는 않더라도 부적이 되어서 혹시 기분이 좋아질까하는 희망때문입니다. 아침에 시무룩한 표정 탓에 집에서 한소리 듣기는 했지만 그것이 부적이 되었는지 기분은 더 나빠지지는 않았습니다.

야외공연장에는 족구장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동아리방이 모여있는 학생회관 앞에 있는 탓에 빈 공터를 학생들은 족구장으로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그리고 해가 진 저녁까지 끊임없이 공이 이리저리 튕겨 다니고 있었습니다. 족구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자세히 보지 않았지만 수업도 건너뛰며 상당시간을 앉아 있었는 탓에 마땅히 볼 것도 없고 해서 멍하니 벌써 몇 시간을 넘게 보고 있었습니다.

양쪽 4명씩 열심히 공을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보다보니 그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앞에 하던 사람들이 나가고 새로 들어온 사람들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하던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야 사람들의 모습이 망막에 상으로 맺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건 바로 다름아닌 '유리왕자'였습니다. 유리왕자는 공격수였는데 드디어 수비수에 의해 받아진 공이 유리왕자 앞으로 정확히 패스되었습니다. 축구로 치면 골키퍼 없이 텅빈 골대만 있는 상황이요. 배구로 치면 모든 수비수들이 옆 선수를 따라가고 앞에는 아무도 없이 강스파이크를 날릴 수 있는 그런 찬스였습니다. 미국 농구 NBA에서는 이런 상황에서는 어김없이 강력한 덩크슛이 미사일처럼 폭격되는 것입니다.

바운드 된 공이 드디어 그물과 유리왕자 사이에서 정점에 다다르자 그는 허리를 길게 옆어로 틀었습니다. 잔뜩 당겨진 활이 저장된 힘을 한순간에 방출 시키듯이 공을 향해 허리를 튕기며 오른발을 강하게 날렸습니다. 모두다 상대편 코트에 꼽히는 공을 상상하며 보고 있었는데...

‘슝~’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파리채로 파리를 잡을 때 슝슝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것처럼 파리는 웃으면서 지나가고 파리채를 잡고 있는 사람만 구경꺼리가 되어 땀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헛발질!~' 공은 그냥 발밑에 떨어져있고 몸은 가해진 힘을 이기지 못하고 꽈배기처럼 꼬여 쓰러졌습니다. 아... 이건 정말 노마크 찬스에서 베컴이 골대 위로 똥볼을 찬 격이오, 브롬달이 큐대 픽사리 나며 손을 다이에 부딪힌 격입니다.
 
혜빈의 얼굴에도 웃음이 찾아왔습니다.
"개발 주제에... 공은 왜 빌리러 다녀?...."
옆에 있던 대환이가 갑자기 말한 것에 놀란 듯
"뭐? 뭐?"하며 못 들었는지 뭐냐고 재차 물었지만...
"아!~ 별거 아니야!~ 자 이거 아침에 내가 출력한 건데 재미있을꺼야"하며
급히 자리를 일어났습니다. 어느듯 무거운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마음 속에서 사라져버린 후였습니다.

유리왕자는 짜증난 표정으로 앉아있습니다.
『기타가 말썽이니 별의 별 것들이 다 말썽이다. 갑자기 왠 트로트 연습인지 모르겠다. 다음에 있을 공연을 위해서 트로트 연주를 할 수 있게 연습하란다. 아무리 선배지만 너무한다. 자기들은 늘 멋있는 곡들만 연주하고 이상한 것은 항상 후배들을 시킨다. 나도 락을 연주하고 싶은데... 막간 공연은 다른 후배들 몇 명이 조를 맞춰 트로트를 공연하게 된 것이다. 스콜피온즈와 같이 멋있게 연주하고도 싶고 메탈리카처럼 트러쉬메탈을 연주하고도 싶도 정신없이 하드코어도 연주하고 싶은데... 관객들은 나의 그런 모습을 기대하고 있는데...

그래서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뽕짝^뽕짝^의 리듬을 혼자 청승맞게 연주하고 있는 꼴이라니. 그것도 참 누가 들을까 두려워 아침부터 연습실도 아닌 이곳에서 몰래 헤드폰 끼고 연습을 하다니... 이런거 할라고 손가락 터지도록 피나게 연습한 것은 아닌데....

그런데, 조금전부터 자꾸 나를 보는 시선이 있다. 이게 뭐람... 혹시 기타를 칠 줄 아는 녀석은 아니겠지. 기타를 칠 줄 아닌 녀석이면 소리를 듣지 않고 보기만해도 뭘 연습하는지 바로 알텐데... 헉 어쩌지...
...
...
...
할 수 없지. 연습은 때려치우고 기우회에 가서 공이나 빌려서 족구 연습이나 해야겠다.
기타를 메고, 담배 한 대 입에 물고 기우회를 향해갔다. 기우회 사람들은 항상 공을 잘 빌려준다. 우리 그룹사운드도 공하나 사든지 해야지 맨날 멋은 있는 것 없는거 다 내면서 공은 꼭 후배들 시켜 빌려 오게 하고... 하긴 선배들은 돈이 있으면 술로 다 마셔버리니 축구공 살 돈이 있을 리도 없다.

또 따라온다.
오늘은 정말 찐드기인가 보다. 스토커 되면 안되는데...이놈의 인기 때문에 학교생활이 안된다. 올해의 신입생들은 더 심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 군대를 가버리든지 해야하는데, 영장이 나오지 않는 몸이니... 결국 기우회까지 따라왔다. 기우회 사람인가? 아니면 기우회 가입하려고 온 것인가?

"감사합니다"
공을 빌리고 나오니 따라 오지 않는다.
'휴~~'
관심있으면 말을하든지... 당췌 요즘은 말 안하고 귀신처럼 따라 다니기만 하니... 어떨때는 무서워 죽을 지경이다. 낮에 느껴지는 그 섬뜩함이라니.
며칠 오전마다 족구 연습을 좀했더니 자신감이 생긴다. 선배들에게 연습 좀 했더니 공이 이제 잘 들어간다고 하자 나에게 믿음이 생겼는지 앞에 서란다.
이제 나도 공격수. 앗싸. 트로트를 공연하게 한 것이 미안했나보다. 모두 용서해줘야지.

상대는 우리와 족구 실력이 비슷한 합창반. 그리고 우리와 라이벌은 아니지만 괜히 사사건건 부딪힌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 한참 위의 선배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요즘은 그냥 그냥 잘 지내지만, 늘 질 수 없다는 감정은 유전자가 되어 내려오고 있는 상대다.

오늘부터 나의 족구 실력을 보여줘서 족구장도 내가 접수해야지. 쭉!~ 둘러보는 순간 헉~ 또 나를 보는 시선이 있다.
'앗 찬스 볼인데... 헛발질...'
...
...
...
거듭되는 실수로 나는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에이씨!~~
그녀는 나를 향해 웃고 있다. 나의 헛발질도 멋있게 보이나 보다. 큰일이다.
'소녀여~ 제발 나를 포기하세요. 아직 사회의 시선이 따갑답니다. 동성연애에 대해서 좀 더 관대해 질 때까지 저는 여러분들의 동경만을 먹고 살뿐 사랑을 먹고살 순 없답니다. 이놈의 꽃미남처럼 생긴 얼굴 때문에 죽을 지경입니다. 제가 그래도 락커인데 여자라고 치마 입고 연주 할 순 없잖아요. 흑흑흑 팬 여러분 이해해주세요....'』

그렇다. 혜빈의 유리왕자는 드문 여자 기타리스트였던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