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 4 명

모처럼 쉬는 토요일 오후 핸드폰 벨이 울린다.

내게 오는 전화는 선달아우나 만석형님 빼고는 모두 회사전화인데 눈이 나빠 전화가 울리면 돋보기를 쓰고 전화 건 사람 이름을 보기보다는 사진을 보고 받는다. 사진은 안 뜨고 번호만 올라있다. 웬 놈이 전화질이야.

잠결에 전화를 받으니 사진도 안 뜬다. “녜 김00입니다.”

아침에 임상병리과 직원 둘이 모두 한 시간씩 지각을 해서 핵의학 검체를 보내야 하는 것을 빼먹었다는 전화다. 사유서를 받을 예정이고 그래서 말씀 드린다는 내용이다. 행정담당 34살 젊은 대리의 전화였다.

“무슨 전화야?”

“응 별일 아니고 회사 전화야.”

“근데 그렇게 큰 소리가 전화 밖까지 들려?”

처의 말에 무안하다.

그러고 보니 아니 이 괘씸한 놈이 8시경 지각한 애들 예기를 왜 두 시 반에 전화질이지 뒤늦게 잠이 깨며 생각이 든다.

밤 8:30에 응급실 나이트 근무자가 첫 날인데 잘 나갈지 걱정이 돼서 미리 전화를 한다.

막 잠에서 깬듯한 그는 알았다 인사를 한다. 10:10 전화가 빗발친다. 콜 센터 담당은 근무자가 제 시간에 안 나온다는 예기이고 응급실 이브닝을 한 직원은 자신은 약속이 있어 빨리 들어가야 하는데 나이트 가 안 나왔다는 이야기. 종일 웬만하면 참으려던 것이 마침 저녁 반주에 얼 큰 했던 차에 폭발한다.

회사에 전화해 큰 소리로 다그친다.

“나 김반장인데 후임자가 안 나왔으면 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전철이 끊길까봐 걱정이면 돈 만원 빌려서라도 택시 타고 가면 돼지.”

“그 자리에서 그대로 기다려.”

전화를 끊으며 아차 싶다. 애들 방에서 다 들렸을 텐데 복직 후 내 직함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애들에게 들킨 것 아닌가? 동기들은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되고 대법관이 되었다고 은근히 자랑을 하던 터에 똑같이 양복입고 직장인 병원으로 나가던 내 진면목을 들켜버린 것일까?

아침 자명종은 4시에 맞춰놓았지만 3시에 잠이 깬다.

이른 출근 후 수술장 이송명단을 작성하고 조회와 업무지시들을 마쳤지만 내 관할 응급실 Day 번 담당은 아직도 출근을 안 했다. 매일 지각을 하더니 오늘도 안 오는 군. 전화를 하니 거의 다 왔단다. 어제 아침 두 명의 지각, 어제 밤의 지각 한 명, 그리고 오늘 아침의 지각 한 명. 서로 약속들을 하고 나를 괴롭히는 것일까?

29살 큰 덩치에 꽃 미남인 얼굴, 그 녀석은 나를 보자 애교스럽게 고개 숙이며 인사만 한다. 에휴 저거 아침부터 근무 시작 전에 야단을 칠 수도 없고 일은 힘차고 빠르게 워낙 잘 하니 탓할 것도 없다. 평소 한 시간씩 늦던 것을 겨우 십여 분 늦었으니 잘했다 격려 해야 하나?

나이가 50인 박은 “잘못했습니다.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 한다.

나는 괜찮지만 소장이 문제지. 좀 잘 해야지. 마지막 생명의 끈일 직장을 잘리게 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내 밑에 데려다 놨는데 그도 그것을 잘 알고 있는데 젊은 부인 때문에 늦은 것일까?

이제 29인 젊은 미남은 자신의 동생 취직자리까지 내게 부탁하며 잘 하려고 노력하면서도 매일 지각을 면치 못 하는 것은 젊은 간호사가 애인 이어서일까?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의 길을 걸어야 할 차분한 친구가 내 밑에서 그저 열심히 일하며 나와 농담을 섞으면서도 지각을 하는 것은 세상의 혹독함을 몰라서 일까?

웨이브 준 머리의 미남인 40초반 멋쟁이 조금은 모자란 듯도 보이는 강이 평소 야간근무를 싫어하는 것은 캬바레를 가거나 여자들 때문일까? 그래서 아침잠이 모자라는 것일까?

나는 모르겠다.

다만 바닥에선 물이 차 오르고 파도는 거친데 난파선 아 수라장 같은 이 배의 선원들을 모두 다같이 저 멀리 희망의 나라로 항해하려는 나만의 과욕일까?

네 명 모두 각각의 모습을 떠 올리며 혼자 웃음 짓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