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나시의 공허

                                                                                                                저니

올 한해의 흔적이 담긴 다이어리를 뒤적이다 보니 두어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반추 한다는 것이 책상서랍 정리와 같아서 처음에는  대단한 기세로 차곡차곡 버리지 않고

정리하다가 막상 많은 시간이 지나가면 다시 예전 있던 자리로 꾸역꾸역 끼워 넣어버리는

우를 다시 범하게 됩니다.

저 스스로 무슨 언론사 기자도 아니지만,  올 한해 저 삶에 영향을 준 몇가지 뉴스를 꼽는다면,

첫째가 부모님의 소원대로 천주교 세례를 받는 것이 가장 큰 일 이었습니다.

아직은 시계불알 마냥 성당에 가서 성수를 이마에 도장찍듯 성호를 긋고 돌아오곤 하지만,

근 10년이내에 이 불효막심한 아들래미가 잘했다고 스스로 위안하는 큰 사건입니다.

두번째는 해가 지날수록 마누라와 동거동락하는 마음이 깊어지고 있다는 것인데 어찌 보면

나이가 들면서 서로 포기하는 부분을 보듬어 가슴을 짠하게 하는 것이니 기쁘고

좋은 일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제 환경이나 능력에 더욱 분발해야하는 숙제도 갖고 있습니다.

세번째는 오로의 나도 작가가 된 것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 이상으로 누군가에게 저의 글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마치 선을 보는 새색시 처럼 흥분되고 떨리는 일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이로 인해 더욱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고 따뜻한 가슴과 그 분들의 삶에서 배우는 즐거움이

올 하반기를 가득 채웠습니다.

뜻하지 않게 돈을 많이 벌었다든가 아니면 특별히 힘들고 고통스러웠다든가 하는 유난스러운

한해는 아니였습니다.

집도 없고 세력도 없고 딱히 시비걸어서 모험을 하기도 어려운 돈 벌어 먹고 살기 힘든

40대를 들어섰다고 생각하면 세상 다 산거 같이 투정도 부리고 싶지만, 주변에 투정부리기보다

이어 갈곳 이어가고 묵묵히 한칸씩 40대 중반으로 뛰어나갈 때라 생각합니다.

센과 치히로 라는 일본 애니메이션 만화영화를 보면서 탐욕이나 욕망의 대한 댓가를 봅니다.

그 영화에서 나오는 가오나시 라는 괴물은 처음에는 센을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이 탐욕과

욕망으로 점차 변질되어 갑니다.

그 가오나시가 갖고 있는 공허를 치유한 것은 가오나시를 대하는 자세입니다.

공허를 두려워 하지 않고 쫓아내거나 피하지 않고 함께 동행하는 것입니다.

저 또한 지극히 탐욕스러운 인간이고  순수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부모님의 아들로서

또한,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과 딸의 아빠로서 제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분명합니다.

다시 맞을 수 있게 되어 감사하는 2008년.

부디 얼굴이 있는 아들과 남편과 아빠로서 제 안의 가오나시가 치유되는 한 해로 거듭나길

간절하게 바랍니다.

더불어 오로에서 만나 제 삶의 감성을 풍성하게 해주신 여러 작가분들과 격려를 주신

오로 가족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가오나시의 공허

 
                                          저니

아버지로서 잃어버린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