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둑을 처음 접한 시기는 1968년도쯤 되었다.
본격적으로 바둑 책을 사서 공부를 한 것은 1974년도 대학에 들어가서 부터다.
한동안 월간 바둑과 사이즈가 좀 더 컸던 바둑세계를 매달 서점에서 사서 보기도 했다.
사카다가 지은 각종 바둑책도 사서 열심히 읽으며 바둑 공부를 한 기억도 난다.

바둑에 열심히 관심을 가졌던 시기에 바둑 최강은 일본이었다.
면도날 사까다를 비롯해 괴물 후지사와, 미학 오오다께, 킬러 가토 마사오,
이중허리 임해봉, 지하철 고바야시, 우주류 다께미야, 컴퓨터 이시다 등등
물론 우리의 젊은 천재 조치훈도..

일본의 바둑 역사에 관한 글을 읽으며.. 마치 무협지를 읽는 착각도 들곤 했다.
통치자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바둑을 어떻게
대해 왔는지.. <어전시합>이라든지 <명인 기소>라든지..
바둑의 최고 권력을 잡기 위한 혼인보, 이에야스, 야스이, 하야시 4대가문의
권모술수와 지략을 통한 경쟁의 역사도 흥미진진하였다.

경쟁 가문의 제자를 스카웃하여 개명시켜 다음 문주를 만들기도 하고..
20대의 유망주였던 인데쓰의 요절을 불러온(?) 혼인보 죠와의 <토혈지국>
인세끼의 귀를 빨갛게 만든 십대의 슈사쿠의 <이적지국>과 흑번 필승의 신화..

중국인 오청원의 그 유명한 무적의 십번기 대결과 기성 칭호..
오청원과 기타니의 신포석.. 기타니 도장 이야기 등등
한중일의 조훈현, 오청원, 하시모토 단 3명의 걸출한 기재를 제자로 둔 세고에..
조훈현의 영구 귀국이 원인(?)이 되어 자살했다는 설도 있었다.
   
조치훈의 휠체어 투혼이라던지 조훈현이 철의 수문장으로 유명한 중국의
섭위평에 극적으로 승리한 싱가폴 대첩으로 바둑 황제가 된 사건 등..
한국을 소외시키고 일본과 중국이 벌였던 정기 승발전에서의 철의 수문장 섭위평..

한국에서는조남철 시대를 마감시킨 영원한 국수 칭호를 받는 김인과 그 뒤를 이어
조훈현이라는 걸출한 천재가 병역의 의무를 하기 위해 일본 바둑 유학중에 귀국하여
조훈현 시대를 열어 나갔고 더불어 서봉수와 함께 조/서 시대를 풍미하기도..

바둑은 적어도 30대에서 40대에 전성기를 누리는 기예라는 것이..
나의 머리 속에 바둑과 바둑 기사에 대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다.
<위기구품>에 따른 별칭들.. 9단을 입신이라고 부르는 그 광오한 단어를
나 자신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고 바둑 전문기사를 <사범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이미지가 무너지고 있음을.. 조훈현의 내제자 이창호의 등장때만 해도 몰랐다.
전관왕을 두어차례하던 천하의 조훈현의 철옹성같은 왕국을 자신의 제자가 완전히
무너지게 만들게 될 줄이야.. 영원한 라이벌 서봉수도 함께 무너진다.
 
그 당시 이창호에 대한 생각은 조치훈과 조훈현을 잇는 바둑 천재라는 것이었다.
천재이기에 어린 나이에 타이틀을 따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창호는 나이와는 별개로 대국하는 자세는 이미 완숙한 기사로 보였던 것도
바둑 기사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가 바뀌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바둑 전문기사를 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확실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대략 연구생 제도가 활성화되며
입단 제도가 바뀌고 그 뒤로 입단 나이 제한이 되면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십대만이 프로로 입문하게 되면서 부터가 아닐까.. 생각되어진다.

더불어 바둑티비가 생기면서 프로기사의 대국이 실중계로 인한 대국자들의
얼굴과 대국 태도등을 보게 된 것이.. 점점 과거에 갖고 있던 바둑 전문기사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한마디로 바둑이 禮道가 있는 반상의 승부로 부터 禮道가 실종된 어린애들의
놀이 게임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바둑이 스포츠 종목으로 편입되어 더 가관이 되어가고 있다.
중국 애들의 대국 복장은 한마디로 개판이다. 츄리닝을 입고 대국하는 애도 있다.

이제는 30대만 되어도 노장 축에 든다. 지는 해가 되기가 십상이다.
도대체 10대 20대에 인생을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바둑 기술/실력이 좋은 것과 인격은 별개다.
바둑 기사는 바둑만 잘두면 된다.. 라는 주장이 있다면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바둑 실력만큼 인격이 비례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 이유로 이제는 바둑 전문기사를 <사범님>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다.  <사범님>은 무슨? 그냥 프로棋士로 인정할 뿐이다.
옛날 어른들 말 표현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라는 것이 있다.

물론 프로棋士 중에서 <사범님>이라는 호칭을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런 호칭을 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프로棋士라고 해서 아무한테나 엄마 젖도 안 뗀 애들에게까지도
<사범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낯 간지러운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애들 놀이로 변한 바둑 현실을 보며.. 세월가는 줄 모르는 신선들의 놀이..
밑바탕에 禮와道가 흐르던 과거에 갖고 있던 바둑과 棋士의 이미지가 내 마음
속에서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이제는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

바둑이 가는 대세가 그런 것을 어찌 하겠는가?
단지, 한 개인이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바둑 현실과 변화를 인정하는 대신에..
<위기구품>과 <사범님>이라는 호칭은 버리기로 하였다.
바둑의 神들은 10대,20대도 있고.. 뭔 놈의 神들이 그리도 많은지..
入神의 권위도 개판이 되었다. 守拙이 入神 알기를 우습게 아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