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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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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은 내가 누우면 머리와 발끝에 한뼘의 여유만을 허락할 뿐이다. 나가 죽는 순간 이런 공간과 시간이 허락될까? 절 앞 식당의 방에는 이불도 없고 어떤 가재도구도 없이 달랑 상만 하나 놓여있을뿐이다. 가을 구경을 나선 나에게 문경의 김용사는 겨울을 보여주었다. 아직 가을 볕은 따뜻함이 남아있어 계절은 단풍조차도 허락하지 않았지만, 행락객 하나 없는 식당가는 서산하기만 했고 그래서 이곳은 겨울 분위기가 가득하다. 올해는 이상한 해이다. 시월말이 다 되었는데도 경북 북부 지역인 문경에 조차 단풍이 없다. 예전 같았으면 남쪽 도시의 도로에도 은행잎이 노란 허망함을 도시 사람들에게 가득 뿌려댔을텐데 말이다. 여름과 같은 가을 날이 계속되고 또 지난 며칠은 겨울처럼 영하로 떨어지기고 했다. 겨우 날이 풀린 것이 겨울의 삼한사온과 같아서 햋빛이 짠한데도 숨쉬는 코에는 냉기가 느껴진다. 아마, 농업시대라면 불길한 징조로 여겨졌을테지만 지금은 지구온난화라는 한단어 속에 이 모든 것을 집어 넣고는 머리 밖으로 던져 걱정조차 하지 않는다.
아침 일어나자 말자 대구에서 문경으로 가을을 찾아 나섰다. 늘 마음만 먹고 있는 강원도까지 가는 길이 멀기도 하거니와 조용하게 가을을 느끼고 싶었다. 어느 여행안내책자에서 알게 된 김용사에 가고 싶어진 것이다. 상주에서 국도로 그리고 다시 지방도로를 따라 물어 물어가는 길이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다. 나는 네비게이션을 싫어한다. 요즘은 옛날 손목시계 마냥 흔하고, 요즘의 컴퓨터, 휴대폰 마냥 흔해졌다는데 새로운 물건은 지금의 멋을 해친다는 생각에 잡혀있는 나로서는 사고 싶지 않은 물건이다. 나도 나이가 들어 늙수구레해진다는 증거이겠지만 차라리 받아들이고 싶다. 길을 가다가 모르면 차에서 내려서 물어가고, 길을 잘못 들면 다시 돌아서 찾아가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기때문이다. 한편으론, 모든 것이 내가 생각한대로 계획한 대로 흘러가길 바라는 성격인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세상에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있다는 것이 사실이겠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않다. 가끔, 회사동료 중에 이상한 사람을 만나 근무하게 되면 그런 생각을 해본다. 저 사람이 집에 가서도 회사에서처럼 행동할까? 집식구들은 회사에서 저렇게 행동하는 것을 알고있을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면서도 저사람은 그것을 알까?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자기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확신범. 그런 사람일 수록 절대 자신의 행동이 틀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을 말해줘도 고치지 못할뿐만 아니라 알아듣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나비가 나인지 내가 나비인지 모른다고 혹시나 저사람이 정상이고 내가 정상이 아닌 것은 아닌가 하는 혼란스러움에 빠졌다가 멀리서 연락온 친구와의 전화 대화에서 다시금 나는 나비에서 내가 된다.
바둑을 두면서 수를 읽고 착점을 할때는 바둑이 자기가 생각한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가정하에서 그렇게 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진행될때도 있지만 전혀 엉뚱하게 진행될때도 있다. 그리고 정수를 가르쳐줘도 틀린 형세판단을 근거로 내세우며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데는 방법이 없다. 말을 거두어 들이고 혀에게 안식을 줄 뿐이다.
많은 고민과 갈등, 스트레스가 작은 방안에서 소멸한다. 아무것도 없는 방안에서 말이다. 빈 바둑판 마냥 작은 방안에서 스스로 소멸하고 만다. 방에서 냄새가 난다. 천장 나무에서 나는 냄새. 그리고 빛살이 보인다. 달력크기 정도의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 바람이 느껴진다. 그리고 찬바람을 막아야하는 나무 창틀 사이로 끼워진 얇은 한장의 유리창. 소리가 들린다. 바람에 덜걱거리는 창문. 입에서는 내어온 음식에서 지난날의 투박함이 전해온다. 아득한 기억 속의 것들. 내가 젊은날 안식을 취하던 방의 것들과 같다. 현재 속에서 안개처럼 홀연히 나타난 과거는 나의 몸과 마음을 휘감고 그 속의 모든 것을 내어 가버린다. 이곳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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