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만석

  아침 다섯 시 십분 이면 핸드폰의 알람이 울어댄다. 어제 밤 야간산책을 해서 그런지, 피곤한 듯 하나 그래도 눈을 부비며 일어난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옷을 챙겨 입고 빈 물통 세 개를 배낭에 넣고, 습관적으로 앉은뱅이저울에 올라선다. 헉 어제 잘 먹어선지 몸무게를 가르치는 숫자가 103.5kg, 아이고 3.5kg이 또 늘었다. 이건 어제 말복이라고 삼계탕을 먹은 탓이다. 먹는 것에 비하여 움직이는 일이 별로이니, 지방(脂肪)이 탈 일이 없다.

  저울을 내려서면서 절로 한숨이 나온다.  언제 90kg이 되어보나. 아직도 떡하니 내 복부를 지탱하는? 지겨운 칠 겹 살은, 아무래도 더욱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이 겹 살 정도로  될 터이니, 자 떠나자 약수터로...........

   아직 이른 시간이라 한산한 시내를 빠져나와 해안도로를 걷는다. 발걸음은 가볍다. 읍사무소를 지나서 논길로 접어든다.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길이 관절에 좋은 것은 아니지만 농민들이 요즈음은 대형 농기계를 사용하다 보니 도로포장은 필수적이 되었다. 약수터로 올라가는 송포 1리 마을을 지나면 관음사가 나온다. 산 입구에 자리 잡은 것인데 정말 스님이 거처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관음사를 지나서 산속으로 들어서면, 몇 십 년을 자란 소나무들이 울창하다. 몸에 좋은 산림욕을 아침마다 할 수 있으니, 자연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거저 받는 행복감이야, 서울 사는 사람들이 알 수 있으랴? 약수터 가는 길도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있다. 사람에겐 흙을 밟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길마다 포장되어 있으니 논밭에 나가기 전에는, 흙을 밟는 일이 거의 없을 것 같다.  

  경사가 약 20도가 넘는 가파른 길을 한참 오르다 보면 약수터 입구라고 쓴 팻말이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거의 50도 이상의 가파른 경사이다. 단 한 가지 여기는 포장을 안 해서 흙을 밟으며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흙을 밟는 감촉과 시멘트를 밟는 감촉은 사뭇 다르다. 요즈음 관절염이 많은 것은 모든 도로가 포장이 되어 있어서 그러하다는 생각이다. 무름에 무리가 가지 않는 그런 도로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산책로 정비를 한 탓으로 나무로 만든 220개의 계단을 오르면 내 腹部의 脂肪이 타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숨이 턱에 차서 헐떡거리면서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 가다보면 늘 만나던 분들을 만난다. 오늘은 내가먼저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서로 주고받는 아침인사가 마음을 즐겁게 한다. 약수터에 다 오르자 숨은 턱 끝까지 찬 듯 가쁜 숨을 몰아쉰다. 차례를 기다려 물통 세 개를 채우고 갔던 길을 돌아서 내려온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 갈 때의 반도 힘이 안 든다. 산 속에서는 매미가 합주를 해댄다. 아름다운 음악처럼 들리더니 그중 한 놈이 우는 소리가 유난히 힘이 없다. 속으로 저놈이 어제 밤에 힘을 너무 썼나 보네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하면서 길을 재촉한다.

  어느새 해는 바다를 뚫고 솟아올라 들판의 벼에게 양분을 공급하고 있다. 태양빛을 받아 점점 황금물결을 이루게 될 벼를 보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뜨거운 아침 햇살이 나를 괴롭힌다. 읍사무소 환경미화원 들이 거리 청소를 하다말고 인사를 한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손을 흔들어 준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는 내 몸은 무척이나 가볍다. 샤워를 끝내고 냉큼 저울에 올라선다. 101.5kg. 두 시간 동안의 아침산책으로 내 몸무게는 2kg이 준다. 매일매일 아침산책을 하면 열흘이면 20kg을 줄일 수 있다는 엉터리 산수를 하고 혼자서 씩 웃었다. 아침 식사로는 살 찔 것이 두려워서 사과 하나와 자두 하나를 먹었다. 헉 이러다 영양실조 걸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