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과 <논쟁>은 상반된 개념이라고 얼핏 생각이 듭니다.

사전적 뜻은 정확히 모르지만.. <토론>은 뭔가 그럴 듯한 고상한 어감이 있고

<논쟁>은 뭔가 나쁜 것이고, 치졸한 어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토론과 논쟁의 뚜렷한 경계는 없어 보입니다.

토론이 논쟁으로.. 논쟁에서 토론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오래 전에 고교 동창 소그룹 모임에서의 에피소드가 기억납니다.

아마 25년 전 쯤인가 였던 거 같은데.. 저녁에 밥 먹고, 술 먹고 그러다 마지막으로

맥주 한잔 더 하자고 근처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였죠.

역삼동 라마다 르네상스 호텔 뒷 골목이었습니다.

그러다 지금은 이태리에서 살고 있는 친구와 토론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주제는 <미래의 미국과 일본.. 누가 더 강국일까?>였습니다.

그 친구는 일본, 저는 미국.. 서로의 논리를 주장하기 시작했죠.

토론으로 시작된 대화는 양 쪽이 수긍하지 못하고.. 계속 자기 주장만 옳다는 식이 되고

결국은 <논쟁>이 되어 버렸죠. 처음에는 같이 있던 다른 친구들도 의견을 내면서 편이

나눠지더니..격렬한 논쟁으로 흐르자 <싸움>을 구경하는 쪽으로 한 발 물러서더군요.

새벽 1시 경에 들어 간 카페에서 결론도 못 낸채 나온 시간은 새벽 5시 경..

양복 윗도리를 왼팔에 걸치고 친구들과 대로 변까지 같이 걸어 내려 오다가..

차치기에 걸려서 양복을 날치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친구와의 논쟁으로 가뜩이나

기분이 별로였는데.. 지갑이며 집 열쇠가 들어 있는 옷을 날치기를 당했으니..

참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더군요.. 우여곡절 끝에 돈과 카드가 있는 지갑은 잃어 버리고

옷과 집 열쇠는 찾았습니다. 한참 떨어진 강남의 어느 파출소에서요.

지금도 친구들 모이면 이따금 그 때 일을 얘기하면서 서로 웃습니다.

친한 친구와의 <토론>도 <논쟁>이나 <말 싸움>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잘 모르는 사람들과 예민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이라는게 잘 되기가 힘듭니다.

일단 자기 주장만 열심히 하고 남의 주장을 들으려 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우선합니다.

게다가 자기 주장을 철회하는 것은 <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큽니다.

그래서 대화가 진행될 수록 자기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가 없어지면.. 그 다음에는

어거지로 나갑니다. 한 쪽이 막무가내식 고집으로 나올 때는.. 그 대화는 더 이상

<토론>이 아니고 <말 싸움>이 됩니다.

그럴 경우에 제일 많이 나오는 표현이 <따지는거야?.>라고 합니다.

이 때부터 <토론>은 실종 되고 <논쟁>이 시작됩니다. 

TV 토론도 마찬가지 경향을 볼 수 있습니다. 논리가 부족한 사람은 어거지와

고집으로 앞 뒤가 안 맞는 궤변을 말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TV 토론에 섭외되어

나올 정도면.. 수준이 있는 사람들일텐데도  피차 매일반 입니다.

수긍하는 것은.. 곧 <지는 것>.. 쪽 팔리고 창피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런 것이 싫어서.. 또는 토론이라는 자체를 안 좋아 하는지..

토론을 하기 싫어 합니다.. 나에게 돌아 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이, 오히려 상처만

받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토론> 이나 <논쟁>은 얼굴의 앞과 뒤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마주 보고 있다가 순식간에 얼굴을 돌리면 뒷 통수가 나타나는 것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