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철면피다. 왜냐고 묻지마라. 대답하기 참으로 곤란하다.  어찌 되었거나 내 삶의 한 구석은 위장 되어진 나의 모습이다.  아이들에게는 점잖은 아버지가 되고, 직원들에게는 능력있고 멋있는 상사가 되고 싶다.

  이것이 나의 속 마음이다.  아내에게는 권위를 내세우는 그런 속좁은 놈이다. 어찌 되었거나 나는 엊그제 내가 원해서, 그동안 몸 담았던 부서를 떠나게 되었다. 이유인 즉슨, 내 몸이 시원찮으니 젊은 후배들이 내 자리를 맡으라고, 속에도 없는 말을 하면서 동해안 최북단에 있는 현내면사무소로 전근을 갔다. 맡은 일이야 민원업무를 관장하는 팀장이지만, 인구가 적으니 출생신고, 사망신고, 혼인신고, 이혼신고 등등 합쳐봐야 하루에 한건도 처리 하기 어렵다. 솔직히 말하면 아주 편한 자리란 것이다.

  이제 정년도 늘어난다고 하니, 편한 곳에서 일년동안 편히 지내다가 퇴직을 하자는 얄팍한 심보로, 인사부서에 청탁(?)을 하여서 자리를 옮겼다.  현지에 가서 업무인수 인계를 받고, 내일 법원으로 출장갈 일을 챙기고, 퇴근을 하여 아침에 빨래 하여 놓은것 걷어들이고, 또 빨래를 돌리면 글을 끄적인다.

  아내는 병상에 누워 있는데, 나라는 인간은 아내에게 전화를 안한다. 왜?  아이들에게 전화를 해서 엄마 어떠냐고 물어보면서도, 아내에게는 전화를 안한다. 왜?  습관인가? 그동안 통화를 별로 하지 않아서, 아내에게는 그다지 할 말이 없어졌다.  이 나이에 전화를 걸어서 사랑한다라고 말하기는 도저히 못할일이고.....아픈게 어떤가 하고 물어봐야, 걱정하지 말라고 한마디 하고 끊을테니, 무슨 알콩달콩 이야기 할 일도 없다.

   그래도 전화 정도는 해야 하는데...그래서  난 철면피다. 어여쁜 아짐씨가 지나가면 혹하고 한번 돌아보는 속물인간이 아내에게는 어찌 ..........

   나는 철면피다.

   어제 전에 근무하던 직원들과 회식을 하였다.  그리고 내가 데리고 있던 직원들에게, 화장품 셋트와 책을 사주었다. 한데 화장품가게에 가서 몇만원 하는 화장품을 살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겨우 이만원 짜리 ......거기다 만원짜리 책한권씩......그리고는 나를 가끔은 기억해 달라고 싱거운 멘트를 써넣었다.

  나는 철면피다.

  가끔은 직원들이 힘겹게 야근을 하여도 땡하면 바로 퇴근을 한다. 이유는 내 건강을 위해서 운동하러 간다는 것이 이유이다.  상사의 지격이 없는 바보스런 놈이다.

  어찌 되었거나 내가 철면피로 살아가는 것은, 내 천성이 얼굴이 두껍게 태어난 때문인가 보다.  가끔은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외도를 하고 싶은 욕망을 가져보는 속물이다.

  이런 철면피를 아직 살려두는 염라대왕은 직무유기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