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

 회사 유니폼을 세탁소에 갔다 줘야지.
당구장에 같이 갔으면 하는 직원들을 모른채 하며 퇴근 후 갈 길을 재촉한다.
큰 아버님이 돌아가셔 지방으로 내려간 중환자실 직원대신 종일 힘들게 일했다. 내일도 똑같이 해야 하는데 이젠 체력이 안 따라주는지 너무 피곤하다. 지난 반년간 신종플루 센터를 맡아 챙기면서도 감기 한 번 안 걸렸었는데 감기 기운인지 콧물이 흐른다.

회사 생활은 너무 피곤하다.
일 하는 것은 피곤하지 않은데 인간관계와 직원들에게 최소한의 처우를 해 주기위해 힘써야 할 나의 책무를 과연 다 하는 것인가? 지켜줘야 할 최소한의 것 마저, 지켜주기 위해 싸워야 할 나의 위치를 책임을 못 하는 것이 아닌가 번민하게 된다. 그만 두고 나가야 하나? 모르는 척 보신만 해야하나?

장부의 길은 무엇일까?
길을 뜻하는 대로 걸을 수 없다면 과감히 버리고 그다지 많이 남지도 않은 길을 소신껏 걸어야 하는 것 아닐까? 이 조차 망상일까? 교회 선교원에서 차량봉사를 하는 것이 더 보람찬 일이 아닐까? 굶어 죽지는 않을텐데. 나 굶는 것은 두렵지 않아도 식구들을 굶기는 것은 죄악이어서 일까?

세탁소엘 갈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 세탁소는 포기한 채 기원으로 향한다.
기운이 없어 대국은 언감생심인채 관전에 열심이다. 옆에서 보노라면 참 다들 잘 둔다. 저런 면면들과 대등한 승부를 펼치는 나도 잘 두는 것은 마찬가지 인 것일까? 나는 마음만 앞서가는 화초일 뿐 이겠지. 민초일까?

 지난해 초 원주의 만석성님 자제분 결혼식엔 어렵게 참가했다.
다행히 멀리보며님이 차를 가지고 가신다기에 차비는 안 들어 동행을 했다.
부주는 나중에 따로 하겠다 했다.
그날 저녁 사당동에서 또 모임이 있었다.
저녁을 마치고 2차인 맥주집에서 뒤풀이를 하며 헤어질 때 선달은 내게 말했다.
만석님이 회식비에 보태라며 준 돈이 있는데 내가 필요하면 5만원을 주겠단다.
내겐 요긴한 상황이니 준다면 받겠다 했다. 그 5만원은 어려웠던 그 당시 참 요긴하게 썼다.

그리 어렵던 시절을 도리 님과 여러 기우들의 격려에 힘입어 다시 복직을 2월말에 하곤 술 한번도 사지는 못했다. 작년 이맘때 송추의 모임엔 처와 함께 같이 갔었다. 내 마음속은 기쁘고 행복했지만 그 자리의 기억은 좌중에 내가 일어서 쓸데없는 소리만 한 기억이다. 회장 자리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굳이 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새로 하겠다던 분도 순탄치는 못했던것 같고 모임의 진정한 의미와 방향은 무엇일까 의문만 가지게 되었던 기억이다.

일요일 아침 처는 5만원을 준다. 쓸때는 써야하니 오늘 모임에 가란다.
핸드백을 열고 꺼내준 돈을 다시 핸드백에 넣어준다. 나는 필요없으니 당신 파마라도 해야지.
내일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데 갈 수도 없고 아직 마음의 여유도 없어.
그대그시절 큰 성님이 미국에서 오셨고 다른 반가운 분 들도 오신다지만 아직도 내겐 허용되는 여유는 이리 작은 것일까? 내 마음에 여유가 없는 것이지.
어떤 모임이건 나 혼자 보다는 처와 같이 가고싶다. 그것이 내게는 삶의 목적이자 이유이겠지.
처는 내일아침 일찍 일을 나가야하니 모임에 같이 가고 싶다고 예기하면 나만의 사치인것 같다.

삼성 사장님 안 들어오실꺼에요?
편바둑에 으례 들어오려니 생각하며 사람들은 청한다.
너무나 피곤했던 오늘 하루 평소 같으면 벌써 누워서 잠을 청했을 시간인데 정말 내 몸이 피곤할 때 갈 곳이 없을 때 내가 갈 수 있는 곳 쉴 수 있는 곳 편한 나만의 장소 기원에서 나 만의 여유를 즐긴다. 바둑은 둘 수 없어도 열심히 관전을 한다. 정말 다들 잘 두네!

 
남들이 두는 판 위에서 내마음은 분주히 오가며 관전을 한다.
가 보지 못한 판 이지만 내 마음은 분주히 만석성님을 껴 안아보고 당근성님을 손 잡고 선달이를 의젓하게 조언한다. 큰 소리 흰소리는 하지만 난 항상 마음속으로 감사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