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바람이 소슬하게 부는날 강둑길을  비틀 거리며 걷고 있는 그림자 하나.

그는 취하지 않았지만 걸음걸이는 산만하게 왔다 갔다 한다.

거저 발아래만 바라보며 걷기에 무엇이 다가오는지 길이 어떻게 변하는지 전혀 개의치 않으니

그렇게 흐느적거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힐끗거리며 지나가고 자전거가 삐뽀삐뽀 경적을 울려도

비켜갈 생각이 전혀 없다. 발아래 빈 깡통 하나를 걷어차고는 그렇게 계속 걷는다. 

고개 숙인 그림자는 그 마음을 비추지 못하듯 그렇게 길게 늘어져 뒤따를 뿐이다.

공원벤치도 있고 한적한 카페 구석진 자리에서 고독을 씹어도 되련만 그림자는 굳이 주야로

운동하는 사람들이 붐비는 둔치공원을 거닐고 있을까. 취하진 않았지만 약간의 술기운이 있었고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땅만 보고 걸어가고 있다. 사연이야 있겠지.

하지만 누가 물어오며 그 말을 누가 들어 줄 것인가.

세상사 남의 일은 상식과 도리를 고생 시키며 잘도 나불대면서 스스로에게 감복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돌아오면 아집을 소신의 가죽을 입히고 편견을 취향으로 분바르고

이기심을 현실논리로 포장해서 환하게 웃으며 원만한 사람으로 상대에게 들이민다.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으리라 나 역시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을 테니까.

가로등을 지나면 그림자도 바뀐다. 달이 밝던 네가 밝던 상관없는 그림자는

그렇게 길어졌다  짧아졌다 할뿐이다 푸르던 잎이 성급한 놈부터 붉어진다.

아마도 지는 꽃잎이 속상해 그럴지도 모른다. 모두가 나름대로 이유가 있음인데 자기보다

나은 생각을 해주지 않는다. 그것이 서럽다고 그림자는 하염없이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둠은 모두가 그림자다. 하지만 그림자는 그것이 서럽다.

빛이 두려워 숨어 살던 서러움이 모두가 그림자로 뒤덮이니 그것이 더욱 서러운 것이다

그 어디서고 자신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는 서러움을 찾아 가는지 모른다.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서 깔려 있느니 희미하게나마 서로를 볼 수 있는 곳으로  그렇게 걸으며

서러움을 인내하고 외로움을 떨치려 하는가 보다.

그림자는 보여줄 뿐 볼 수가 없다.

그림자는 움직여도 달아 날수가 없다

내 마음은 그림자다

업을 따라 움직이는 내 마음은 그림자다.

어느 가을타는 날  마음의 둔치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