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일기117, 산신령

평소보다 늦은 밤 10시에 원장은 퇴근도 안한 채 바둑 두던 이들에게 한잔 같이 오라고 청한다. 인색하기로만 알았던 원장의 초청에 평소 기원 사람들과 술자리를 같이 안 하던 전례를 깨고 8명이 다 같이 나선다.

기원1층의 가락시장 밥 배달을 하는 최 사장집도 아니고 큰 길로 나선다. 싸게 한잔 때우려면 최 사장 집이 나을 것 같은데 진짜 한잔 비싼 술을 사려나 의아한 채 따라 나선 곳은 오늘 개업한다는 치킨집이다.

맥주 피처와 소주 몇 병, 튀김이 아닌 숯불구이인지 마늘 다진 것을 듬뿍 바른 통닭에 이야기꽃을 피운다.

김 사범 황 사범 바둑 잘 두는 이들은 기력이 인생에도 고수 인 것은 아님에도 자신의 이야기를 중요한 모두 알아야만 하는 이야기처럼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나는 열변을 토한다. 바둑 잘 두는 것이 무에 중요한 것이겠냐고. 아마추어가 아무리 바둑을 잘 두고 설사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했다손 치더라도 그게 무에 중요하겠냐고.

이번에 태백시 산상 천제단 바둑대회에 가보니 아마 강호들이 전국대회 우승의 관록을 자랑하는 영감들도 어린 연구생출신의 여전사 들에게도 상대가 안 되고 무참하게 지더라고 이야기한다.

바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력의 차이가 아니고 같이 즐길 수 있는 그 자체가 아니겠냐고 열변을 토한다.

중2때 바둑을 배운 이래 50년 동안 바둑을 그리도 사랑한다는 장고형님.

그리도 사랑한다는 바둑이 그리도 약해서 한 우물을 파면 무언가 이룰 수가 있는 것이 인생일 텐데 아직도 저 정도 실력에 머무르는 것을 보면 정말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것도 있나보다.

명색은 사범이지만 하수들에게나 큰소리이지 동수들과는 불쌍할 정도로 당하기만 하는 황 사범. 그래도 그조차도 언젠가 소싯적에 바둑대회에서는 16강에 들었단다. 당시 충암고와 남산공전등이 본선에 올랐다나, 그의 바둑은 전혀 사범답지는 않다. 하수들하고나 큰소리이지 맞수에게는 꼬랑지이다. 석촌호수에 산책을 나갔다 호반에서 두기 시작한 바둑은 산신령으로 불린단다.

각자의 무용담에 역시 그저 그렇게 시간만 소모한다.

오늘의 자리를 만든 연유를 원장은 소개한다.

앞으로 겨울에 추위에 난로를 피게 되면 작은 전기 곤로도 전기 값이 겨울에는 60만원인데 경비를 감당하기 쉽지 않으니 그동안 야통을 경비를 안 받았지만 앞으로는 야통 경비를 내야 할 것이라는 것을 고지하고 싶었다는 말씀과 밤에 주로 대신 자리를 봐주는 국방부 사장에게 밤 경비의 30%라도 지급을 하겠다는 말씀이시다. 바둑은 7 급이신데 심모원려는 사범 이상이어 원장이신가보다.

한쪽 구석에서 주로 듣기만 하던 이 교장은 자리를 정리하며 일어서자 권한다.

50대 60대의 동네기객들, 인근에서 살며 벌써 20여년 이상 얼굴을 보던 상대들.

평소에는 바둑만 두며 말이 없었어도 마음속으로 서로 위하는 따뜻함이 모두의 마음속에 생동함을 느낀다. 바둑의 미덕일까?

오늘부터는 기원을 가지 말아야지 했던 것을 오늘도 오기를 잘했군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