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말없이 목을 작게 움직여 끄덕인다.

그도 말이 없다. 암으로 투병생활을 한 그는 많이 지치고 힘들었을텐데도 담담한

표정이다.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고 나는 그 침묵의 시간이 끝이 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일이 서둘러 능숙하게 처리한다고 잘하는 일도 아니기에

그 동안 많이 지쳤을 그에게 여유를 주고 싶었다.

'혹시...?'

그는 말을 하다말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의 말이 뭔지 알고 있었다.

내가 지정된 이유기 때문이다. 그가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그를 데리고 올 날짜와

담당자가 정해졌으나 명부관이 마지막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관례에 따라 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하여 나로 바뀐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내가 이미 알고 있음을 전하자 그의 얼굴에는 작은 미소가 흘렀다.

혼수 상태에 빠지기 전부터 작심을 한 듯 했다.

그의 머리맡에는 모란이 수로 새겨진 천으로 덮어 둔 바둑판이 있었다.

바둑판을 본 그는 몸에 힘을 주어 일어나려 했으나, 생각과 동시에 몸은 그대로

둔 체 이미 일어나 있었다. 그것을 알아차리고는 소리없이 웃었다.

'벌써 빠져 나오다니... 이런 것이었군'

그와 나는 바둑판을 가지고 와서 마주 앉았다. 바둑판을 들었으나 아직 바둑판은

그곳에 있었고 바둑돌을 들었으나 아직 바둑돌은 그대로 있었다.

그렇게 바둑이 시작된 것이다.

주위에 그들의 가족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우리의 바둑을 보지는 못했다.

포석에서 중반으로 그리고 끝내기. 한판의 바둑이 끝이 났을 때 그는 다시 몸으로

빨려들어갔다.

몸과 영원한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었다. 그가 잠시 눈을 뜨고 입을 열었을 때

가족들은 그것이 뭔지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괜찮다. 걱정마라'라는 말과

함께 마지막 숨을 쉬었을 때 가족들은 울기 시작했다.

'아이고... 아이고...' 가족들은 자연스럽게 슬픔을 토해내기 시작했고 그와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