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일기112, 처의 마음속

사무실 소파에서 잠시 눈을 감고 졸았다. 40분에서 한 시간은 족히 지난 듯하다.

11시경 강서구 거래처를 향하는 처에게 길을 알려주려 가락동 양재 남부순환도로를 거쳐 목동 신정동 신월동을 거쳐 멀리 멀리 어렵게 어렵게 강서구청 근방으로 향한다.

골목길 사이를 지나 우장산 동 공원도 지나고 강서구청앞도 지나 정작 도착한 목적지는 김포공항 行 大路 88체육관 근처 빌딩이다.

지난번 이곳을 방문하고 혼자 돌아올 때 네비 가 알려주는 대로 갔는데도 길을 잃어 광명과 인근을 헤매느라 고생을 했었다는 이야기에 걱정돼 빠른 길을 알려주고 싶어 동행 한 것이 강서구청과 신월터널을 지났다는 이야기만 기억한 채 최종목적지에 대한 판단을 않은 채 옛날 곰달래 길 근처인가 보다 지레짐작한 나도 문제이지.

목적지를 정확하게 알았다면 금세 올 수 있었던 길이다.

강남 개포동 근처 음식점 백화점 학원위치는 그리 잘 아는 처가 그 외의 지역은 전혀 모른다.

5시경 기원으로 향한다.

만 원짜리 편 바둑을 시작한다. 여느 때처럼 편안한 마음에 담배도 한 개비 피워 물고 반상을 응시한다. 담배 한 가치 바둑 한 판을 즐길 수 있는 여유란 얼마나 평화스럽고 소중한 것인지 평소에는 느끼지 못한 채 지내다가 궂은일이나 마음 아픈 일이 생기면 그제야 진가를 느껴본다. 바둑을 져 만 원을 잃지만 다음 판에 이길 수 있겠지 생각한다.

남부순환도로를 헤매다 목적지를 확인 후 방문처의 점심시간을 피할 겸 인근 한식당으로 들어선다. 일식집에서 탕 종류를 먹자는 처에게 점심은 가벼운 칼국수가 좋다며 찾으나 없다. 한식당은 냉면이 있을 테니 들어섰다. 고기에 반주를 권하는 처에게 내가 운전해야지 하며 냉면을 고집했다. “면발이 왜 이래?” “달걀도 오래돼서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처의 말에 “맛있는데 뭘” 하면서 창밖을 내다보니 임대푯말이 붙어있다. 장사가 안 돼서 내 놓은 집이고 손님이 없어 음식도 오래전에 미리 준비해 둔 것인가 보다. 무엇이든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는 나지만 철든 이래 이렇게 맛없는 국수는 처음인 것 같다.

오늘은 왜 계속 이리 일이 꼬일까?

두 세판 둔 바둑은 머릿속을 말끔하게 시원하게 씻어준다. 항상 승률이 좋고 이기는 편이니 용돈도 이 삼만 원은 땄다. 내가 이리 나 좋아하는 바둑을 편히 두고 있을 때 처는 그리 마음 졸이며 고생을 하고 다니는 것일까?

사탕 한 개 비타민 한 봉지 이름이 적힌 스티커 한 개를 작은 비닐봉지에 넣어 수십 개를 거래처에 매주 같은 날 들려 나눠주는 것을 직역이라 한단다. 사탕 비타민 볼펜 값만 해도 매달 몇 만원이 넘을 듯하다. 커다란 비닐봉지들을 앞에 놓고 직역에 돌릴 작은 봉투를 만들 때 안쓰러워서 같이 도운 적이 있다.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 정성과 노력이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고 직역 거래처를 방문하여 반기지도 않는 무심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때 어떤 심정일까?

처는 웃는 얼굴로 건물을 나서 차에 탄다. 내가 기다리는 것만 미안해 할 뿐이다.

마음속으론 가슴이 아프고 처가 안쓰럽기 짝이 없다. 내 하는 일이 봉사단 일이고 돈과는 거리가 있는 일이어 처가 저리 고생하는 것도 애써 외면해 왔던 것인가?

어깨에 박힌 화살을 뽑는 수술을 하며 고통을 잊기 위해 관운장은 바둑을 두었다더니 이 시기가 빨리 지나기를 바라며 시간을 잊기 위해 나는 바둑을 두는 것일까?

가락시장내의 봉사활동 자금마련을 위해 지난 20년간 땅콩장사를 하던 77세의 고인 정 선생과 생전에 어느 날 같이 배낭을 메고 장사에 나섰던 황 선생은 네 시부터 밤 10시 까지 세 봉지를 팔았단다. 고 정 선생은 백 봉지 십만 원을 파시는 동안.

바둑을 좋아했던 시정잡배가 아닌 바둑인 들의 격려와 성원 속에 봉사의 길을 걸었던 그리도 고집 세게 신념을 지켰던 이로 처의 마음속에 남고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