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동기

쾌청한 날씨에 작년 재작년은 모교 체육대회 날 비가내리더니 오늘은 다행이군 싶다.

교회도 거른 채 따라나서 주는 처가 고맙다.

추리닝 바지에 하얀 티를 입고 소풍가는 기분으로 나서지만 한 편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바둑모임이나 테니스 모임에도 최근 거의 1년 이상 통 참가하지 못했고 동기들의 관혼상제에도 가지를 못 했었는데 축제에는 안 빠지는구나! 라는 욕 정도는 감수키로 한다.

벌써 10여 년 전 부터인지 모교 체육대회에는 꼭 참석해왔다.

바둑모임과 대회가 체육대회에 흡수되어 모교에서 개최하게 되었고 프로기사 초청 다면기와 다양한 행사 활동 등으로 바둑대회 에만 100여명 이상 참가하는 호황 속에 바둑모임에서 봉사단을 후원하는 규모도 확대되는 계기가 되어 내 인생의 전기가 마련된 출발점 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 물론 몇 년 전 부터는 바둑은 행사에서 제외되었다. 젊은 후배들이 바둑을 애호하는 수가 적어서이다.

내가 조금 더 노력 했었더라면 명맥을 이어 올 수도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도 있지만 삶의 굴곡 속에서 불가피 했던 점도 부인 할 수는 없다.

동기들은 바둑모임을 다시 활성화 시키자 여럿이 제안한다. 이제 각자의 영역에서 사업에서 은퇴들을 하고 소일거리를 찾는 것일까? 부장검사를 은퇴하고 변호사를 하거나 대학병원에서 나와 동네병원 원장노릇을 하고 있지만 외롭고 여유들이 생겨 친구들을 찾는 것일까? 앞만 보며 달려오던 지난 과거 보다는 자신을 친구를 한 번 더 생각하는 시기가 되어서일까?

28년 10개월인지 기자노릇을 하다 사업을 시작했다는 동기는 사업을 해보니 선후배가 다 소용없고 동기가 제일 낫더라! 며 열변을 토한다. 집안에서 물려받은 사업을 하는 친구도 있지만 자수성가 한 동기들이 존경스럽다는 얘기에 침을 튄다.

젊어서는 입신양명이 꿈이겠지만 이젠 은퇴의 시기인데 더 무엇을 바랄까?

10년 전 쯤 바둑모임을 처음 시작할 때 11년 선배인 38회 기수 회장께서 당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자신들의 기수는 이미 기금을 2천을 모았는데 10년 정도 걸렸단다. 49회 자네 기수도 이제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그 후 10년이 지났지만 시작도 못했다.

당시 허연 머리에 일선에서 은퇴하신 모습들에 노인들이 바둑은 꽤나 좋아하나보군 속으로 생각하며 도너츠 상자를 수북이 기증하는 모습에 그래도 센스는 있으시군! 이라고 기억을 했었다. 지금 내 모습이 10년 전 그 선배들의 모습일 텐데.

교정 북쪽 제일 구석의 테니스장에 들어서 동기들이 시합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동기들 중 제일 센 팀으로 구성된 복식 조 는 젊어 보이는 상대팀에 전의를 상실한 듯 무력하게 진다. 5년이나 10년은 후배들로 보았는데 나중에 보니 1년 후배들이다. 역시 나이나 기수보다 어떻게 사느냐의 차이인가보다. 같이 구경하던 해군장교 출신의 건축사인 동기는 쟤는 내 해군 1년 후배야! 라기에 속으로 놀란다. 지난 1년 여 테니스 모임에도 나가지 못했었다. 복직으로 바쁘기도 했지만 테니스를 마치고 저녁 후 한 잔 하는 자리에선 항상 덕담이 아닌 어딘지 가시 돋친 험담들이 듣기가 싫었었다. 명색이 교수들이 주로 많고 사업가니 작가니 해도 쫀쫀하게 자리에 없는 사람을 흉보며 마주 앉아서도 취한 척 술잔 뒤에 숨어 상대를 비하하는 농담도 듣기 싫었다. 국가대표 여자 테니스 선수들을 가르쳤었다며 너는 폼이 왜 그러냐는 둥!

이제 내 달부터 테니스 모임에 다시 나가기로 했다. 대머리 교수 가 내뱉는 취중농담 악담도 다 미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겠지. 어쨌든 동무들 아닌가? 10억을 고철자재 수급에서 손해 봤다 운운하면서도 누가 낮에 맥주 캔을 하나 더 먹었다는 둥 하는 사업가친구도 동무들끼리니 그런 잡담도 할 수 있는 것이겠지. 그들의 문제가 아닌 이제야 내 마음속의 모서리가 조금 둥글어진 것일까?

동기들의 바둑모임을 이젠 진지하게 추진 해 보아야겠다.

그들이 아닌 내 마음속의 각진 곳을 무마하면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