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棋行2, 血局

샤워 후 반바지에 편안한 티셔츠는 바둑을 두기위한 좋은 컨디션이다.

사무실 인근의 기원에 갈 때도 가능하면 슬리퍼에 양말을 벗는다. 자동차의 라디에터 처럼 열을 방출하는 기능을 강화해야 바둑이 잘 된다는 나만의 믿음.

오후의 햇살은 아직도 따갑게 방안에 비쳐들고 더위 속에서도 바둑판 앞에 모두 열심이다.

간밤 선비무도님의 대국을 옆에서 관전하니 잡초바둑의 표상이랄까 모양이고 정석 포석은 뒤로 한 채 싸움과 수읽기 대형전투에서 조금도 굴하지 않으며 세 점 상수 선달에게 치열한 전투를 하던 무도님이 인상적이어 두 판을 같이 둔다.

다시 대진표상의 대국을 3회전을 그대그시절 형님과 시작한다. 간밤엔 1회전에 돌부처쎈돌 박 시인을 어렵게 통과하고 2회전은 팔공선달 아우에게 엎칠락 뒤칠락 난전 끝에 선달아우 술이 과했는지 간신히 통과했다.

지난밤 두세 시 넘도록 이야기꽃을 피우며 연간 2회의 정모를 개최하기로 하고 용마 님을 모임의 리더로 선비만석, 팔공선달, 저니 가 중간 허리역할을 하며 곧 있을 수원세계대회에서 다시모여 보다 구체적인 사항들을 논의키로 하였다.

이청선생이 준비하신 관광여정을 나선다.

3천억을 들였다는 공주박물관은 생각보다 엄청난 규모에 지역의 특성을 반영해서인지 뜻밖의 볼거리 이야기가 많다. 485년경 고구려의 남침으로 한성백제 시대가 끝나고 웅진으로 천도했다 이후 다시 사비로 천도했다는 백제의 역사. 실질적으로 그때 끝난 것과 진배없다는 표현에 놀라움과 참신함이 든다. 단체관람 온 어린 학생들은 이리저리 뛰며 시끄럽다. 역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며 재미있는 것 인지는 나이 들어서야 알게 되는 것 일까?

무심코 둘러보니 일행이 아무도 안 보인다. 서둘러 나오니 모두 저 앞 광장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종일 봐도 재미있을 곳인데.

3회전은 오로4단 이시라는 그시절 형님을 두 점 접고 시작한다. 초반전투에 방심을 한 채 수읽기가 깊지 못해 공격을 하던 내말이 오히려 어이없는 착각으로 대마가 단절되어 갇혀 죽은 모양이다. 그냥 던져야 예의 일 텐데 워낙 초반이어 조금 더 두다 우변의 곤마를 공격해보다 던져야지 생각한다. 설마하며 운신하던 우변을 삭감 후 공중에 떠 있던 흑의 말들이 하변으로 상변으로 백에 흠집을 내며 달아나나 아직 완생은 아니다. 흑의 곤마는 이젠 엄청난 대형 곤마가 되어 피차 진짜 승부처가 되어버린다.

여럿이 논의를 할 때도 한 가지씩 매듭을 지어 결론내고 넘어가자는 말씀이나 동인지 발행의 사례나 예산 원고의 매수 책의 사이즈 까지 예시하시는 그대그시절 님의 말씀에선 정말 배울 것이 많다. 老文人 원로작가의 조언은 나작의 복인데 이 역시 바둑인들 이어 가능한 것일까?

흑의 운석도 치밀하고 정확하기 짝이 없다. 오로4단 이시라더니 연세가 많으셔서 생각하기 싫어 그러시지 한창때는 5단 이상의 실력이셨을 것 같다. 다시 백 좌변을 살려주던지 조금만 양보해도 될 형세를 조금 무리하시며 대형전투가 얽혀 체력전이 되어서인지 실족을 하시며 대마가 잡혀 투석을 하신다. 대형전투가 끝난 후에도 끝내기 큰 곳들을 먼저 손을 돌리며 계가로 가려는 모습은 방내기도 사양치 않을 노전사의 모습이다. 이리 아쉬워하시는데 내가 초반에 던졌어야 하는데 싶은 생각이 이제야 다시 든다. 하지만 한번 이긴 것 보다 공주에서 그런 바둑도 있었지 라고 반전을 거듭하던 대형전투가 기억에 남는 것이 그시절 형님에게도 더 재밌는 추억이 되시겠지.

사진좌측:그대그시절,당근돼지,용마,도리(존칭생략)

이제 다시 미국으로 가셨다가 한 달 정도 정리 후 영구귀국을 하시겠다는 형님은 일이란 게 어떻게 될지도 모르니 하시는데 일순 처연한 공감과 會者定離 의 안타까움이 저민다.

온돌방 맨바닥에 방석도 없이 앉아 오랜 시간 바둑을 두었더니 허리가 아프고 평소 지병인 치질도 걱정되어 구부정하니 구부린 채 화장실로 간다. 어구 팬티가 젖은 줄도 모른 채 바둑을 두었다니 일본 어느 기사는 어성기에서 토혈국을 두었다더니 평생처음 血局을 두었군.

나작의 동인지가 탄생하게 될 그때까지 아니 내가 인생을 마무리할 그시절까지 영원히 잊지못할 혈국의 상대 그대그시절 형님의 모습을 가슴속에 담는다.

2편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