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에서 출발했던 2007, 23rd. US Go Congress 참관이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필자는 세가지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첫째는 필자가 한국에서는 태평양을 건너온 유일한 대회 참가자라는 것.
둘째, 23년 동안 계속되어 온 미국바둑 축제에 관한 국내 문헌이 전혀 없다는 것.
세째. 미국의 바둑계가 이미 유년기를 거쳐 세계화로 도약할 수 있는 충분한 인프라를 구축해 놓았다는 것.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필자는 미국바둑협회에서 보내 온 전자신문에서 참가자 명단을 수시로 점검하였다. 참가자 번호가 300번이 넘어갈 때까지도 필자 이외에는 한국으로부터의 참가자 이름은 보이질 않았다. 현지에 도착하여 점검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참가자 477명의 명단에도 결코 한국에서의 참가자 이름은 볼 수 없었다. 

"이럴 수가?" 중국은 제쳐 놓더라도 일본에서의 참가자 수는 40여 명에 이른다. 이때 받은 충격은 쉽게 지워지질 않았다. 
"바둑 제일 강국! 한국바둑 세계제패!" 등 온갖 구어가 머리속에서 난무했다. 바둑 제일 강국의 수명이 얼마나 갈 것인가?

한국으로부터의 참가가 부진한 이유를 필자는 나름대로 짚어 보았다.
 
첫째. 경비부담 때문일 것이다. 항공료, 체제비, 기타 비용을 감안하면 약 2500불 내지 3000불 정도 소요된다. 그러나 이 금액은 유럽의 바둑축제에 참가하는 비용과 대동소이하다. 유럽 바둑축제에는 해마다 한국에서 많은 숫자가 참가하고 있다.

둘째는 입국수속이 까다롭다. 특히 비자 받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유럽의 대부분 국가는 한국과 비자 면제 협정이 되어 있어 입국수속이 까다롭지 않다.

세째. 미국과의 연결고리가 되어 있지 않다. 유럽에는 오래 전부터 이창세 같은 프로기사가 진출하여 유럽 여러 나라에 바둑 보급 활동을 활발히 한 덕분에 여기저기 연결 고리가 잘 갖추어져 있다. 덕분에 한국 바둑인들의 지명도가 높고, 한국 프로들도 현지 실전에 쉽게 적응할 수 있어서 해마다 바둑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에 윤영선 5단이 독일 바둑 애호가와 백년 가약을 맺게 된 것도 오래동안 쌓여 온 바둑 교류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두번째의 충격, 23년 동안 지속되어 온  바둑 국제 행사에 관하여 기록된 문헌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세계 바둑 제일 강국이라고 자처하는 한국에서 말이다.

오늘날의 미국바둑 큰 틀은 일본이 짜 놓았다. 바둑용어는 물론 일본식이고 규정과 절차도 모두 일본식이다. 일본인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동기를 만들어 바둑을 널리 보급시키고 활성화시키는 역할은  잉창기재단을 필두로 중국인들이 분담하고 있다. 소프트웨어는 일본인들이, 하드웨어는 중국인들이 그 기능을 분담하고 있는 셈이다. 액세서리 정도라도 한국인들이 그 역할을 분담할 수 있는 시기는 언제쯤일까?

세번째 충격, 도약을 위한 미국 바둑의 탄탄한 인프라 구축.
미국의 현재 바둑 인구는 15만 명 내외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그 증가수는 해마다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간다고 한다. 미 전역에 퍼져 있는 바둑 클럽은 수천 개에 이른다. 알라스카 하와이에까지 전국에 골고루 퍼져 있다. 웬만한 소도시에도 바둑 클럽은 여러 개 있다.

바둑 클럽의 활동은 주로 카페에서 이루어진다. 일주일에 두번 정도 요일을 정하여 회원들이 모여 바둑을 둔다. 카페에서도 맥주, 커피 경양식 매상을 올리기 때문에 대환영이다. 어떤 카페에서는 바둑 회원들에게 특별 할인권을 발급해 주고 있다.

매월 또는 격월제로 보다 큰 중소도시 바둑클럽은 정기 승급 또는 승단 대회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는 인근에 있는 소도시 바둑클럽의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들에게는 마음 설레게 하는 월례 행사인 것이다. 

바둑을 배우려는 사람들은 자연히 회원 가입을 하게 된다. 기력 향상을 위해서는 필수조건인 셈이다. 일단 소도시 바둑클럽의 회원이 되면 그 회원은 뉴욕에 있는 미국바둑협회 본부에 자동 등록되고, 공식행사의 성적표는 회원번호와 함께  평생동안 따라다니게 된다.   
회원가입되면 아마추어 유단자인 경우 3-4일 이내 뉴욕 본부 섭외이사로부터 정중한 환영 인사장을 받게 된다. 회원 입회비는 년간 15불에서 20불 정도다. 누구에게나 큰 부담은 되지 않는 금액이다. 가히 미국바둑협회의 조직은 미국 전역을 총괄하며 일사불란하게 운영하고 있다. 도약을 위한 인프라는 완벽하다. 앞으로 피지에이에서와 같은 대형 스폰서만 붙으면 발전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국내에서는 실력이 출중해도 바늘멍만한 입단 절차와 한정된 수입원으로 프로들의 기재들을 썩히고 있다. 해마다 일본과 중국에서 미국을 다녀가는 프로기사들은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간다.   
미국 전역에 퍼져 있는 바둑클럽은 수천 개에 이른다. 그 수천 개의 바둑클럽은 경쟁적으로 주간 또는 월간 행사를 치른다. 이들이 선만 닿으면 프로들을 서로 다투어 초청을 한다. 프로들에게는 풍성한 일거리가 있는 셈이다. 이러한 마당에 한국 프로는 눈을 부릅뜨고 기다려도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쯤에서 우리는 그 동안 우리 바둑계가 자라 온 과정과 앞으로 직면할 변화에 대해서 신중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의 예측으로는 금후 10년-15년 이내에 바둑의 국제무대는 동양3국이 아닌 미국으로 옮겨 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바둑에 대한 인지도가 미약하여 골프의 피지에이와 같은 대형 스폰서가 출현되지 않고 있으나, 바둑인구 200만 명 정도에 이르면 50만 불~100만 불 정도의 스폰서는 수도 없이 등장할 것이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바둑인구 200만 명에 이르는 시기는 앞으로 7 년이면 족하다. 그때쯤되면 한국, 일본, 중국의 강자들은 모두 미국으로 무대를 옮길 것이다. 자유롭고 넓은 시장이 그곳에 있으니까. 중국 대륙에서는 이미 1980년대부터 유단자들의 이동이 시작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다음 아시안게임에서 바둑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중국, 일본, 한국이 공동으로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도록 노력을 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이 가세하여 압력을 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바둑도  체스와 마찬가지로 국제 경기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는 외국인의 이민 자격을 완화하는 법안을 의회에서 심의 중에 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현실화할 경우 미국은 바둑 애호가들에게 드림랜드, 약속의 땅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한 우리의 대안은 무엇인가? 아직까지 아무것도 없다.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니, 대안이 있을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다. 한국 바둑계의 실상을 분석하고 한국 바둑계를 리드하는 주체에 대한 깊은 연구와 개혁 또는 보강을 통하여 대책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현재는 한국기원이 그 주체가 되어 있다. 일본기원이나 미국바둑협회의 기능과 비교해 볼 때 여러 면에서 미흡하다. 바둑 세계 제일 강국의 위상을 유지하려면 넓은 시야와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눈높이를 맞추는 적극적인 대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 지금까지 제 졸고에 성원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