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23% 정도라고 한다. 금융 통신 전자 석유 철강 기계 등 인간 생활에 직간접으로 연관되는 모든 분야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영토는 물론 전 세계의 인구 중 5 %도 안 되는 인구로 그처럼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만든 배경은 무엇인가? 독립 후 230년 동안 결속된 에너지를 하나로 충전시켜 초 강대국으로 만든 동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필자는 헌법기념관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었다. 짧은 역사였지만, 강력하고 지혜로운 선택이 그들을 오늘의 슈퍼 파워로 만들었다. 자유 평등 평화에 기초를 둔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고 복지와 번영을 추구하는 노력이 오늘의 미국을 만든 셈이다.

헌법기념관 1층 로비에 들어서면 넓은 홀 한쪽 검은 대리석 벽에 미국 헌법 서문이 흰색 큰 글씨로 각인 되어 있다.

"우리, 미 합중국의 국민은 보다 완벽한 단결과, 정의, 평화,, 국방, 복지, 그리고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미 합중국의 헌법을 제정하는 바이다."
(We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 in order to form a more perfect Union, establish Justice, insure domestic Tranquility, provide for the common defence, promote the general welfare, and secure the Blessings of Liberty to ourselves and our Posterity, do ordain and establish this Constitution for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사진 설명) 헌법 기념관 입구를 들어서면 검은 대리석 벽에 미국 헌법 서문이 흰색으로 새겨져 있다. 1789년 3월 4일 발효된 이 헌법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성문 법이기도 하다.

헌법기념관 소개 문헌은 헌법 제정의 취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미국은 국민이 주권자이다. 국민이 정부를 만들고, 그 조직을 구성하며, 그 조직이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한계와 준수하여야 할 의무를 규정한다. 이러한 규범이 모두 헌법에 의하여 이루어졌으며, 이 규범이 곧 모든 법의 기조가 된다. 이러한 내용의 기조가 미국 헌법 서문에 강력한 메시지로 새겨져 있다."

소개 문헌은 계속해서 쓰고 있다.

"국민은 헌법을 제정한 주체인 동시에 헌법의 종속체이다. 국민은 헌법이 정한 규범 안에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국민의 행동을 규제하는 일반 법률은 헌법에 그 기조를 둔 것이다. 법 제정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법을 수호하는 일이다. 이 법을 수호하는 것은 법관들의 몫이다. 국민들은 법관들의 전문성과 법 집행 규범을 신뢰하고 있다. 그들도 헌법의 주체이며, 종속체이기 때문이다. 준법 정신이 없으면 법은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유명한 법관이었던 레오너드 핸드(Judge Learned Hand)의 명언이 기념관 2층 벽에 사진과 함께 진열되어 있었다.

"자유는 모든 사람의 가슴에 살아 있다. 그것이 모든 사람의 가슴에서 사라진다면, 헌법도, 어떤 법률도, 법정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Liberty lies in the hearts of men and women  when it dies there, no constitution, no law, no court, can save it.)

제한된 시간에 일정을 어떻게 짜야 할지 망설여진다. 헌법기념관 안에서도 각기 다른 프로그램을 공연하는 소극장이 다섯 곳이나 있다. 마침 11시 부터 공연이 시작되는 역사관을 선택했다. 프로그램 명은 "내가 그곳에 있었다 - 역사의 현장(I was there! Recording History)."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역사의 증인이 되라는 취지인 것 같다.

바스켓 모양의 극장 구조도 특이하다. 아래층으로 갈수록 작은 공간이고 위로 올라 갈수록 넓어 진다. 처음 극장 안에 들어섰을 때, 간접 조명만 희미하게 비쳐진 실내는 매우 어둡고 좁은 공간이라는  느낌뿐이었다. 이 작은 공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의아심은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놀라움과 감탄으로 변해갔다.

지름 8미터밖에 안 되는 작은 원통형 무대가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관객들은 층계식으로 된 위 좌석에서 아래로 내려다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와 같이 무대가 전면에 있어 모든 관객이 전면을 향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시선이 어느 좌석에서나 아래쪽 중앙을 향하도록 되어 있어 훨씬 편하다. 좌석배치도 원통형.전체를 여섯 구역으로 구분하여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 구조이며, 각 구역의 첫째 줄은 여섯 석, 그 다음은 여덟 석, 그 다음 줄은 열 석 등 점점 많아져 그 좁은 공간에 400석은 충분히 되는 것 같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객석을 제외한 모든 면이 영상물을 상영할 수 있는 화면이 되는 것이다. 제일 뒤 관중석의 위쪽 벽면도 화면으로 되어 있어 각기 다른 영상물을 동시에 상영할 수 있다. 이 화면은 양 방향 회전식으로 되어 있어 머리 뒤쪽에서 떠오른 영상물도 즉시 정면에서 볼 수 있게 된다.

고개를 들어 천정을 보면 천정도 하나의 커다란 화면이고, 지름 8미터인 발아래 중앙 무대도 순식간에 화면으로 바뀐다. 또한 영상물 상영 중에 발아래 중앙 무대에서 직경 4미터는 됨직한 투명한 원통형 조형물이 천정까지 솟구쳐 올라와 일본의 진주만 공격 장면을 삼차원 영상물로 보여 주기도 한다. 화면을 각각 독립적으로 운영할 경우, 한 곳에서 수십 종류의 영화를 동시에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11시가 되자 어둠 속 무대 중앙에 한 사람의 형체가 간접 조명을 받으며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낸다. 가벼운 테마 곡 속에 우렁찬 사나이의 목소리가 좁은 공간을 가득 메운다.
"나,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로부터 시작되는 연사의 서두는 다소 철학적인  요소가 가미된 문제 제기에서 출발한다.

곧이어 17세기 초부터 170년에 걸친 영국 식민지시대의 어려움,  1776년 7월 4일 식민지 13주의 대표들이 모인 필라델피아 제3차 회의에서, 훗날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이 된 토머스 제퍼슨이 초안한 독립선언문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어 공표된 배경, 영국과의 독립전쟁, 1789년의 헌법 제정, 남북전쟁, 세계 1,2차 대전 후 산업국으로의 변모, 냉전시대의 소련과의 대치, 월남전쟁, 워터게이트 사건 등 미국이 최근까지 겪어온 역사적인 사건들을 연사의 다양한 발성과 함께 화면 가득 재연시켰다.

그야말로 연사의 화면 설명과 능숙한 몸짓은 관중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였다. 그의 손가락 따라 화면을 여기저기 좇다 보면 어느새 자신이 현장 속의 증인이 되어 간다.연사는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건이 있을 때마다, 미국 국민과 미국 정부 그리고 법원은 행동 규범이 항상 헌법 이념에 충실하였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미국헌법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문 헌법이다. 1789년 3월 4일 헌법이 공표된 이후 현재까지 220년 동안 단 27개의 법조문이 수정되었으나 수정된 법 조문을 포함하여도 세계에서 가장 짧은 헌법 중 하나라고 역설한다. 자유 평등 평화의 개념을 함축성 있게 다루어 융통성을 살렸다는 의미다. 반면 법 집행에 있어서는 자유 민주주의의 개념을 살려 엄격하게 다루었다.

1930년대 미국은 대공황을 겪었다. 이를 치유하기 위하여 프랭크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1933년과 1934년 2년에 걸쳐 뉴딜 정책을 폈다. 미국경제를 살린 뉴딜 정책의 주요 골자는 공업 활동을 촉진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정부의 농산물 수매, 달러 화의 평가절하, 은행에 대한 통제 강화, 고용촉진을 위한 테네시 강 수력발전 댐의 건설 등이었다.

이 정책은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이 정책을 수행하기 위하여 제정된 산업 부흥법, 노동 조정법 등이 1935~1936년 법원에 의하여 무효,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은 것은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다. 자유방임주의 경제 원칙에 반한 정부의 간섭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역사관의 출구를 따라 나오면 자연스럽게 2층 역사기념관으로 통한다. 통로 따라 걷다 보면 양쪽 복도와 중간 진열대에 미국 역사상 유명한 인사들의 사진과 어록 또는 행적들이 진열되어 있다. 진열된 인사들은 역대 대통령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에서 활약했던 인사들이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공화당의 전신인 연방파의 주역이며 당시 재무장관을 지낸 해밀튼, 링컨 대통령, 뉴딜 정책의 프랭크린 루즈벨트 대통령, 케네디 대통령, 워터게이트 사건의 닉슨 대통령, 최초의 달 탐험가 암스트롱, 흑인 운동가 마틴 루터 킹, 철강왕 카네기, 석유왕 록펠러, 금융업의 모간, 한국전쟁의 영웅 맥아더 장군 등 정계, 법조계, 재계, 종교, 사회, 과학, 인권, 노동 등 모든 분야에서 족적을 남긴 인사들의 행적을 담았다.
특히 인상에 남는 사진은 인종 차별을 반대하는 어느 흑인 여고생의 플래카드를 높게 치켜든 절실한 시위 장면이었다.

기념관 2층 중간 복도에 이르렀을 때 시선을 끄는 소형 무대 장치가 있었다. 무대 한가운데 연설용 테이블과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고, 옆면에 법복을 입은 대법원장이 오른 손을 들고 있는 사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정면에는 카메라 앵글이 조준되어 있고. 방문객으로 하여금 잠시나마 미국 대통령이 된 기분을 느껴 볼 수 있도록 꾸민 시설이다.

테이블 위에 올라서니 녹음테이프가 일러 준다.
"파란 신호등이 켜지면 왼손은 성경 위에 얹고 오른손을 들고 대통령 선서를 따라 하시오." 지나가던 방문객들이 웃으며 잘해 보라는 듯이 손을 흔들어 준다.

"나, 용마5는, 미 합중국의 대통령으로서, 대통령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할 것이며 최선을 다 하여 미 합중국의 헌법을 보호하고 준수하며 지킬 것을 엄숙하게 선서합니다."
(PRESIDENTIAL OATH OD OFFICE I, yongma5, do solemnly swear that I will faithfully execute the office of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and will to the best of my ability, preserve, protect and defend the Constitution of the United States.)

역대 대통령들이 이 선서를 할 때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당내 지명대회부터 오랜 시간 험난한 유세 과정을 거쳐 최후의 승자가 되었을 때의 감격, 미국의 대통령은 단순히 3억 인구의 대통령이 아니다. 전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막강한 파워를 행사하는 대통령이다. 순간, 매스컴을 통하여 뇌리에 새겨졌던 옛 미국 대통령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명멸한다.

아이젠하워의 해맑은 함박웃음, 아이젠하워의 함박웃음을 보면 소화가 잘 된다고 했던가? 케네디 대통령이 저격당했을 때 오픈카에서 대통령의 시신을 끌어안고 절규하던 재클린의 모습,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중도 하차한 닉슨의 곤혹스러운 어느 주간지의 표지사진, 언제나 시원시원하고 거침없는 행동으로 미국민에게 자신감을 갖게 했던 레이건 대통령, 그리고 10년 이상 미국의 고속성장을 이끌어 왔지만 "부적절한 행위" 때문에 곤욕을 치러야 했던 빌 클린턴. 지구의 어느 한구석에서 작은 사건이 터져도 즉시 이마에 갈매기 주름을 그리며 기자들 앞에 나타나 미국의 관심과 정책 방향에 대하여 역설하는 부시 대통령.

이들 모두가 벅찬 감격으로 했던 대통령 선서를 필자도 엄숙한 자세로 목소리 가다듬어 선서를 했다.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파란 신호등이 꺼지고 녹음테이프가 돌아간다. "아래층 현상소에서 사진을 찾아가시오." 사진 두 장 뽑아주고 20불이다.

기념관의 마지막 코스는 헌법 제정 당시 헌법에 찬성한 39개 주 대표와 반대한 3개 주 대표들의 밀납 인형실이다. 50여 개의 밀납 인형들은 모두 실물 크기로 만들어져 있으며 각 대표들의 위치와 자세는 조각가가 그 당시의 문헌들을 참조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각기 다른 포즈들을 취하고 있었다.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옆에 섰다. 머리 하나는 더 크다. 기록에 따르면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훌륭한 대통령은 초대 조지 워싱턴과 16대 링컨 대통령이 거론된다. 이 두 대통령은 시대를 초월하여 공통점이 있다. 정치 지도력, 애국심, 양심과 도덕성을 갖춘 인격, 나라를 올바르게 이끄는 정치철학, 영웅적 카리스마 등이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230년 미국 역사의 국가 초석을 다지는 데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는 1732년 2월 22일 버지니아에서 태어나서 영국을 상대로 한 독립전쟁 당시에는 독립군 총사령관으로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왔으며, 1775년 4월 43세 때 임무를 완수하자 미련 없이 사령관 직을 사퇴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농장을 경영하였다. 그의 혁혁한 공로를 치하하여 각 지역 대표들이 높은 직위로 보상을 하려 하였으나 그는 단호히 사양하는 미덕을 보였다.

선거인단에 의하여 대통령으로 추대된 그는 1789년 4월 30일, 그의 나이 57세 때 뉴욕 월스트리트 페더럴 홀에서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후 8년간의 재임 기간 동안 국가의 초석을 다지는 정책에 심혈을 기울였다. 탁월한 지도력, 영민한 통찰력 정의를 사랑하는 마음, 과감한 결단력,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은 곧 그의 확고한 정치 철학으로 응고되어 국가경영의 동력이 되었다.

그는 우선 유능한 인재들을 등용하여 적재적소에 배치, 국가 경영을 위하여 각자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하였다. 후에 3대 대통령이 된 토머스 제퍼슨을 국무장관에 임명하고, 새로운 국가의 화폐를 만드는 일과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로부터 빌려온 차관을 갚는 숙제를 해결하도록 알렉산더 해밀턴을 재무장관에 임명하였다. 이들이 각자의 임무를 훌륭하게 해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들 간에 협조가 항상 순조롭게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다. 해밀턴을 중심으로 한 연방파는 동부 뉴잉글랜드 상공업 지역의 지지를 얻어 강력한 중앙집권 제도를 원했고, 토머스 제퍼슨을 중심으로 한 반연방파는 남부와 서부의 농민 지지를 배경으로 각 주의 권리를 주장하는 자유로운 민주주의를 원했다. 이들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 워싱턴은 중립에 서서 열심히 설득하여 양자의 합의를 도출하는 조정자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연방파는 오늘날 공화당의 전신이며 반연방파는 민주당의 전신이였다고 한다.

워싱턴 대통령은 헌법에서 규정한 대로 삼권 분립을 행동으로 보여 주었으며, 헌법을 수호하기 위하여 연방 구성안을 초안한 헌법의 최고 해설자인 존 제이를 대법원장에 임명하였다. 또한 그는 종교의 자유를 존중하였으며, 인종 차별을 혐오했다. 그는 항상 좀 더 많은 국민들이 국정에 참여하는 것을 원했다.

2차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1997년 3월, 3선을 추천하는 측근들에게 3선, 4선을 논하는 발상은 미국의 장래를 망치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호통을 쳐 물리쳤다고 한다. 미국 정치 230년 역사에 3선 금지 전통은 후진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기집권의 폐단을 사전에 봉쇄하는 오랜 전통이 되었다.

밀납실을 나오니 오후 2시, 하루 일과를 헌법기념관에서 보내고 미국 역사의 어설픈 증인이 된 셈이다. 헌법기념관에서 받은 깊은 감명과는 달리 마음 한구석 허전함을 못내 지워 버릴 수 없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9편에서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