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일기105,  생일 케이크

눈을 뜨며 습관적으로 가방이 있는지 확인한다.

옷은 소파위에 마구 벗어 놓았어도 가방이 눈에 띄니 안도를 한다.

가방 속 열쇠가 없어 보니 문 키는 안쪽 유리문에 꽂혀있고 작은 키들은 바닥에 떨어뜨린 것을 누가 주워 복도 창틀에 올려놓았나보다.

저녁회식자리에서 기분 좋게 대취한 후 어떻게 집에 왔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난다.

중간에 한 번 넘어져 가방에서 쏟아진 물건을 되 담고 일어난 기억은 어렴풋이 나나 어디서 넘어졌었는지도 기억 못한다.

7:30 Am에 일어난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쉬는 날도 네 다섯 시면 어김없이 눈이 뜨이는데 간밤에 술이 과했나보다. 넘어지며 부딪혔는지 옆구리는 걸리고 컨디션은 엉망이다. 다시 침대에 누워본다.

7:40 Am 약제 직원의 전화를 받는다. 어제 아프다고 결근한 청년이 오늘도 쉬고 싶단다.

“미리 얘기해야지 근무시간 직전에 전화하면 지금 대치근무를 누구를 시키고 어떻게 나오겠느냐?”

“그런 마음가짐으로 근무를 하면 나도 그런 사람은 근무를 못 시키지.”

“죄송합니다. 지금 출근하겠습니다.”

어젯밤 회식자리에서도 약제 다른 직원의 전화를 받은 것이 이제 다시 생각이 난다.

3~10시 Evening 근무를 나온 청년은 6시경 주간근무자에게 연장근무를 부탁하고 자신은 조퇴를 하겠단다.

28세인 그는 큰 키에 훤칠한 미남이어 여직원들에게 인기 짱이다. 일찍 결혼하였는지 애가 벌써 4살인지로 들었다. 수술장에 같이 근무하던 남직원이 어제 음독자살을 하여 빈소가 차려진 장례식장으로 가서 상주들을 돕겠다는 얘기이나 단호히 거절했다.

“가서 돕는 것은 10시 퇴근 후에 해도 되잖아.”

고인이 음독 전 최종적으로 만난입장이어 경찰에서도 찾는다는 소리에 내심 조금 불안은 하지만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최선이라 다짐한다.

한 달에 한번 모이는 당구모임은 병원의 근무 특성상 Day(오전7시~오후3시)근무자들이 퇴근하며 당구장에서 시작하여 주간근무자들이 주로 퇴근하는 오후 6시에 인근 식당에서 모인다.

“오늘 두 번이나 내가 쿠션을 빨리 끝내서 다들 쇼크 먹었을 거야!”

“반장님 쿠션 보는 눈이 다르던데요. 실력이 훨씬 위던데요.”

“아냐 나는 74년 대학1년 때 120치곤 몇 십 년 만에 쳐보는 건데.”

“하긴 그때도 나인 볼로 내기만 했지만^^”

각 부서의 직원들이 모두 모여 자리는 화기애애하다.

술을 안 먹는 직원들이 더 많아 주류파와 비주류파를 갈라 앉았다.

소주 몇 잔에 취기가 오르며 새벽3시에 일어나 종일 참 바쁘게 지냈군 싶다.

지난 1년 반 동안 90명의 직원들과 참 많은일도 있었고 젊은 소장 밑에 4명의 반장으로 시작된 것이 이제는 9월부터 나 혼자만 반장으로 남는다. 1명 퇴사, 1명 S의료원 복귀, 1명은 8월에 정년퇴직이다. 지금 이 회식자리에 모인 직원들은 내 관할이고 다음 달부터는 전체를 맡아야 한다.

그동안 나를 믿고 따르며 도와준 이 자리의 직원들이 고맙다.

한편 가슴이 뜨끔거리는 통증에 건강이 불안하며 내가 언제까지 직장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지 불안하기도 하다. 만감이 교차하며 술이 과했다.

젊은 소장은 오늘이 이삿날이어 일찍 들어가야 한다더니 회식자리에 잠시 참석해 금일봉을 건네신다. 다음 달부터 병원 전체 일에 이 자리에 참석한 분들이 잘 도와주시리라 믿는다는 덕담을 남긴다.

10:30 Am 또 잠이 들었다가 전화소리에 깬다.

“잘 들어가셨어요?” 걱정이 돼서 전화 드렸습니다.

“제가 대취해 추태나 안 보였는지 걱정입니다.”

“소주 한 병을 대접에 따라 한 번에 드시는데 말릴 겨를도 없었습니다.”

“젊은 직원 둘을 시켜 모셔다 드리게 했는데 걱정이 돼서 어젯밤 전화 드리려다가 이제 했습니다.” 교회 장로여서 술도 안 드시는 그 양반이 얼마나 놀랐을까 속으로 웃음이 나기도 한다. 소장은 내가 술자리에서 잠들어 있자 먼저 일어나셨단다.

믿음직스러운 동료직원들이 있으니 안심하고 취흥이 도도했었지.

작년 생일 턱은 오피스텔로 직원들 십여 명을 초대하였었는데 올해는 병원인근에서 치른 것이다. 그래도 케이크 하나는 내심 기대했는데 차마 돈을 주며 내가 먼저 이야기 할 수는 없었다.

처와 둘이 앉아 조그만 케이크에 초를 꽂는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초 값이 많이 들어 빵집에서 싫어하겠네.” 초 10개를 불어 끌려니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작은 행복을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