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여대생, 바둑일기101

2008.aug.7

의연한 수순을 두어나간다며 피차 다섯 수인데 내가 선수이니 결정을 한 것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정확하고 신속하게 두어 나가는 것을 보여준다며 첫 수를 두었지만 상대의 첫수는 내가 예상했던 바깥쪽부터 조여들어오는 것이 아닌 안에서 단수를 치니 나의 착각이었다.

내가 오히려 한 수 늦는 것이군.

종반전 두 세집 끝내기 만 몇 곳 남은 상황에서 상대가 보지 못하고 있던 끊음으로 상대의 대마를 포획해 놓고는 황당한 실수로 오히려 40여 호를 헌납한 꼴이 되었다. 안 잡아도 이긴 판인데 편 바둑의 내편 두 명이 합쳐서 9집을 졌다 길래 조금 더 승부차를 벌리려 했던 것이 오히려 지면서 나는 꼴찌벌금까지 내게 되었으니 순간의 실수가 5만원의 영향을 미친다.

輕敵必敗의 교훈을 마음속에 그리도 되뇌며 딴에 무리 없는 운행을 했는데 종국에 이르러 결국은 貪不得勝으로 지게 되니 승부를 떠나 돈을 떠나 자신이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굳이 패인을 더 찾자면 상대의 장고에 진저리가 나서 상대가 두면 손 따라 빨리 둔 것도 패착이니 인내심의 부족도 나타난 것이지.

자칭 승부사라며 바둑을 사랑한다며 그리도 오래 두어온 바둑인데도 같은 실수들은 반복이 될까?

둘러앉아 관전을 하는 같은 편 강 원장에게 마음속으로 미안하기 짝이 없다. 돈 만원도 소중하여 그리도 정성껏 바둑을 두는 그는 두 집인지 이기고 내가 이겼다고 생각하며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말없이 곁에 있는데 나의 한심한 실수로 그가 2만원을 딸 것까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내심 서운할 것이다.

헝그리 바둑이라는 별명의 빛나리도 자신이 9집을 지기는 했지만 내심 우리 편이 이겼다고 좋아하며 관전중인데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얼마나 클까?

다 잡아놓은 대어를 뜰채로 떠서 어망 속에 넣으려다가 놓친 꼴이니 내 모습이 얼마나 신뢰성이 없어 보일까 싶어 내심 한심스럽다.

바둑 티브이 속 화면은 물가정보 배 조훈현대 홍성지 이다.

종반전인데 흑의 좌상 좌변의 실리가 엄청나다. 우하까지 흑의 실리이니 필승지세인 듯하다. 중앙은 백이 두텁게 흑 말들을 잡아놓고 좌하 패와 하변, 우변의 끝내기가 먼저 손이 가있어 조금 좋은 형세이다. 워낙 상호 큰 집들이어 계가가 한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데 이럴 때는 대국자의 표정과 진행되는 모습들에서 감을 얻게 된다.

던지지 않고 손 빠르게 응수하는 황제의 모습은 지지는 않았다고 계산하는 듯이 보인다.

턱밑에 손을 괴고 잠깐 흐트러진 자세를 보이는 것이 아닌 턱에 손을 괸 채로 계가를 한 손으로 하는 홍성지선수의 모습은 뭔가 잘못된 듯싶다. 다 이긴 바둑을 졌다는 통한의 아픔과 허망함 때문일지, 패배를 자인하고 싶지 않은 순간인 것인지?

저 젊은 선수는 요즘 상승세로 유명인사의 반열에 들고 바둑리그 프로팀에도 어디인지 소속이 돼있던 것 같은데.

종국 후 서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마무리에도 황제는 먼저 머리를 숙이는 것 같은데 젊은이는 건성으로 고개를 같이 숙였다간 들지도 않은 채 딴 짓을 하는 것 같다.

같은 또래 끼리의 시합에서도 저러면 비례일 텐데 기단의 원로이신 황제라는 칭호를 듣는, 이창호를 내제자로 삼아 바둑계의 발전에 이바지 해 오셨다는 조 국수 앞에서 저럴 수가 있다는 것이 프로기사 또한 요즘 젊은이들과 다른바는 없는가보다 싶다.

자사의 홍보를 위하여 프로팀을 운영하고 있을 어느 팀인지 저 선수의 소속팀에는 티브이를 통해 수많은 팬 들이 이 대국을 관전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감독이나 선배들이 없는 것인지?

혹독한 단련을 통하여 성장한 사람은 더 큰 시야로 더 넓게 보며 인내하며 스스로 인격을 도야하겠지. 오로 왕별인 어린 여대생은 네 점 하수와의 대국에서도 무릎을 꿇은 바른 자세로 혹독했던 연구생시절의 모습을 보여주며 넓은 세상의 선배들 앞에서 바른 각오와 자세로 임하며 인내 할 것임을 몸으로 보여준다.

프로가 되지 못했기에, 고통의 껍질을 깨뜨리고 세상에 나와야만 했기에, 세상을 대하는 각오와 자세를 느끼며 배운 것일까? 단지 가정교육의 차이일까?

나의 한 수 실수는 끽해야 푼돈 내기 실수이지만,

프로의 한 수 실수는 더 고통스러웠겠지.

그래도 승부에 연연치 않는 최소한의 자신의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본연의 자세 아닐까?

평소에 훈련되었어야 할 프로의 자세 아닐까?

어린 여대생의 바둑 두는 모습이 영원히 기억 속에 남을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