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 내리는 날

나의 반백년의 시간은 멈추었다

세상을 온통 하얗게 뒤덮은 날 당신은 화해를 하지 않았지만

모두를 용서하였습니다.

나의 서러운 눈물도 안타까운 몸부림도 당신의 가는 길을 막지 못했습니다.

반백년을 날아 올린 우리의 연을 매몰차게 끊어 버리고 나에게 허탈한 빈 타래를

감게 하시고 당신은 저 하늘 높은 곳으로 날아 가셨고

그 여운조차도 까치들이 가려 버립니다.

아무도 없는 빈소를 홀로 앉아 있어도 외롭지 않았습니다.

당신에게 죄스런 맘 다하기도 모자랐으니까요

하지만 갑자기 고아가 되어버린 듯  서러운 밤을 눈물로 밝혔습니다.

잠이든 모습이 너무도 평온하고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싸늘한 몸을 주무르며 당신의 손자는 목을 놓아 울었습니다.

고마워서. 미안해서.

그리고 아직도 못 다한 마음들을 죄다 쏟아놓고

원통해서 너무도 원통해서...

100년을 한결같이

그 반을 접어 나를 위해 애쓰시다 이손주의 염원을 100번째를 보시고

고단한 육신을 버리고 자유롭게 저 하늘로 유영해 갔습니다.

가시기 전날 평생을 같이했던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하실 때도

이 미련한 손자는 그냥 웃으며 손을 내밀어 부딪쳤습니다.

할매 힘내소. 하고

하지만 당신은 그때의 그 만족한 웃음은 저를 용서 하셨던 것입니다.

할매.

지금 어디쯤 가고 있소.

내가 따라 갈까봐 안 가르쳐 준다고?

바보 같은 소리마소.

아버지가 쓰러져 중환자실에 드러눕자 갑자기 할매가

서둘러 길을 재촉한걸 내가 모를 줄 아오?

나도 50평생 그 정도는 할매에게 배운 게 있소.

비록 철전지 원수가 되어 40여년을 등 돌리고 살다 갔지만

하얀 눈을 내리게 하여 아버지를 용서하고 이손주가 힘들지 말라고

그것이 안쓰러워 당신이 먼저 가신 걸 나는 다 알고 있소.

고맙소.

정말 고맙소.

나도 아버지를 용서하고 아버지도 용서의 눈물을 흘렸다고

내대신 병원에 다녀온 막내가 그럽디다.

걱정마소.

아버지도 어머니도 할매가 용서하면 내가 뭐라겠소

다 용서하리다.

까치설날이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할매를 진정 아껴주는 사람들은

죄다 불러 모으셨더군요.

우렁각시랑 당근형님이랑 만석형님이랑 도리형님이랑...

너무 고맙고 서러워 끌어안고 또 울어 버렸지만...

반백년의 인연을 놓아 버리면서도

혹시나 잊어 버릴까봐 까치설날을 택해가셨소.

나를 어떻게 보고.

맞소.

낸들 어찌 장담을 하겠소.

그러고 보니 우리 인연 참 끈질기오. 마지막 가는 날 까지도.

절에다 모셔놓고 집으로 돌아와 할매방에서 어머니랑 한참을 얘기했소.

우리 할매 정말 고맙다고.

아.!!! 맞다.

옆에서 다 들었구나.

49제 동안 매일 들러 보리다.

그리고 마지막 날 스님을 모시고 약속대로 용궁사 앞바다에서 보내 드리리다

앞으로 글을 쓰지 못할지 몰라 가시는 길에 넣어드린 100곳의 사찰 외에

아직 올리지 못한 봉정사에 한줄 편지 띄워 보내오.

부디 좋은데 가소

누가 막거나 불편하게 하면 이렇게 호통을 치소

우리 손자가 팔공선달이야..

그리고 108사찰 순례증을 내 보이시오.

내 곧 그곳으로 보내 드리리다.

인자 그만 할라요.

눈물이 나서 아무리 까불어도 눈이 보이지 않아서...

할매.

부디 평안하소.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당신을 그렇게 사랑했던

손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