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마을

“전남에서 할 때는 땡이 없어.”

일요일 오전 기원에는 바둑 두는 이들은 둘 뿐이고 나머지 여러 명은 티브이를 둘러싼 채 앉아 전국노래자랑에 열심이다.

83세 라는 노익장 송해 씨는 구수한 사회로 몇 십 년 째 장수프로를 맡고 있다지.

언젠가 경북 청도의 노래자랑에서 69세 노인이 청춘만세라는 노래를 열창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

신문지상의 인터뷰였는지 송해 선생은 가장 기억에 남는 노래자랑 무대가 두 곳이었다 들었다. 황해도가 고향이신데 평양에서 노래자랑을 하던 기억과 금강산 의 무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말씀과 초점은 바랄 필요가 없는 것이 세월이라는 취지로 이해를 했었다. 추억과 그리움 회한 등이 전부 별무소용이라는 말씀으로 기억된다.

청도 무대에선 초청가수 김상희가 괜찮아 라는 노래인지 가사는 쓰러지면 일어서면 돼! 라며 열창하던 것이 기억난다. 오뚝이처럼 송해 선생도 평생 같은 이름의 무대를 지킨 것이겠지.

전남 영광군 노래자랑의 12세 소년은 한복에 머리엔 파란 띠를 두르고 북채를 든 채 무대에 나와 송해 형님을 만나려고 12년을 기다렸단다. 송해 선생을 노래 부르게 하고 자신은 북을 흥겹게 친 그 소년은 인기상을 받는다. 모텔을 운영한다는 40후반의 남자는 장려상을, 요양사 라는 50여인은 우수상을, 최우수상은 14세 중1 소녀가 받는다.

남도사람들의 예술적 재능은 창, 소리, 서편제 등 국민적 공감을 받는 것이겠지만 어린 소년 소녀들부터 괄목할만한 재능이 남다른 듯하다. 새벽 햇살이 비추기 시작하는 초원 속 새 생명들에 대한 본능적 기대감일까? 지난 세월을 아쉽게 반추하는 노회함의 시샘과 아픔일까?

출연자들의 동네 읍 이름이 화면 밑에 나온다.영광군 백수읍.“동네이름이 하필 백수읍일까?” 티브이를 보던 8명 중 누군가가 얘기한다.

“백수는 여기 다 모여 있는데.” 이른 아침이어 보쌈 배달 주문이 없는지 오토바이 신이 기원에 올라와 티브이를 보다 한 마디 하자 모두 웃는다.

“세 방이네.” 아침 일찍은 정신이 맑아 내가 이기나봐. 다음부터는 아침 7시부터 두지.

“한 판만 더 둬요.” 1시에 차가 오기로 돼있어. 어딜 가는데요? 일본에 4시 비행기로 갔다가 30일 오후에 올게.

“그럼 나를 데리고 가요. 이 걸(바둑 판)싸 가지고.”

“걷지도 못하는데 어딜 데리고 가.”

물태우 정부시절 큰 공사의 회장이었다는 영감님은 항상 중절모에 양복차림인데 오늘은 먼 길을 가시나 보다.

풍을 맞아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긴또깡은 티브이 앞으로 와 내 앞에 앉아 머리를 긁적이기 시작한다. 감지도 않은 머리에 뒷부분은 대머리이고 남은 숫은 반은 허연색이다. 비듬이 떨어질까 의자를 물려 뒤로 나 앉는다. 젊은 시절 자칭 한 주먹 했다는 그는 별명이 긴또깡이다. 기원에서 노상 김두한 티브이를 보고 또 보고 해서 얻은 별명일까?

오피스텔로 찾아오기로 한 직원을 기다리느라 2시까지 소일거리로 한 판 두려던 것은 노래자랑만 보았다. 14살의 소녀는 꿈을 간직하며 끼를 키워 나가겠지. 83세 의 송해 선생은 언제까지 저 무대를 지키실 수 있을까?

나이 50인 직원에게 그의 앞길을 이끌어 주어야 하는 나는 무슨 일을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나부터 옳은 방향 옳은 일 옳은 충고를 가릴 수는 있는 것일까? 끝.

201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