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일기 109, 소풍가방

 어렸을 적 소풍가방은 즐거운 추억이다. 오징어 한 마리를 구워서 넣어주고 사이다 한 병을 넣어 주신다. 당시엔 시아시(차가운 것)까지는 생각도 못 했다. 옥수수나 군밤 등과 결정판은 항상 김밥이다. 소풍을 가서 재밌게 노는 것 보다도 가기 전 소풍배낭에 먹거리들을 넣어주던 것이 기억에 더 오래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소풍현장에서 주로 동구릉이나 금곡 등 커다란 고분(무덤)에서 어쩐지 으스스 한 기분만 느끼고 그 다음 기억에 남는 것은 선생님들이 죽 둘러 앉아 자기들끼리 도시락을 먹는데 사친회(기성회)부모들이 제공한 더 고급인 식사를 보던 기억이다. 담임선생 갖다주라고 특별한 도시락 하나를 더 마련해 주실 여유와 시간이 없었을 부모가 그때는 어린마음에도 아쉽기도 했다.

 어젯밤 빨래거리 속옷들을 옮긴 배낭에 처는 지난 주에 가져온 세탁하여 개어 놓은 빨래감을 넣어놓곤 다음 한 주일 먹을 국거리와 찬거리들을 넣어 놓는다. 사과 세 개와 귤 다섯개, 닭 가슴살과 호박을 가늘게 썰어 무친 안주거리, 피망과 버섯 무침개. 커다란 둥그런 빵 한 개 까지. 마치 소풍가방을 싸주던 어릴 적 어머니의 모습이다.

 週中엔 서울 오피스텔에 머물며 병원으로 출퇴근을 하고 주말에 용인 집에 한 번 씩 들리는 것이다.
전철 역에 배낭과 나를 내려주곤 처는 교회로 간다. 친정에 들려 장모와 교회에 갔다 오후 늦게 장모의 장보기를 도와드리고 준비해 간 반찬거리들을 내려놓곤 늦게야 돌아와 월요일부터의 자신 출근을 위해 일찍 쉬어야 한다.

 나의 생존의 이유는 당신의 존재 뿐이라고 문자를 보내고 싶어진다. 아침에 헤어진 지도 얼마 안 되었지만 오늘도 새벽 4시 부터 일어나 아침 일찍 부터 서둘러도 아침 9시경 부랴부랴 집을 같이 나섰었다. 일주일만에 집에 간 토요일엔 회사예기나 내 개인예기는 어울리지 않을 듯 싶어 미루다 아침에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다.

 병원에 골치 아픈 일이 산적하고 내 거취 문제 까지 신중히 판단을 미룰 수 없는 지금 어떻게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인지 지난 일주일 내내 고심하던 전전긍긍하던 문제를 비춰본다. 역시 평소에도 항상 그랬듯이 현명한 처는 명쾌한 답을 내린다. 어제 오후 병원에서 오랜 고심끝에 내가 생각해 낸 방향중의 하나를 그녀는 몇마디 말만 듣고도 명쾌하게 신속하게 결론을 알려준다.

 지금 쯤 예배중일까?
작은 것이지만 끊임 없이 행복을 만들어내고 주변에 행복을 심어주는 그녀!
자신의 고단한 몸과 그리 밝지 못한 내일의 일은 접어둔 채 주변에 행복을 나눠주는 그녀!
바둑을 좋아하는 내가 일요일 오후엔 기원에서 시간을 보내며 나의 취미를 즐기게끔 배려하는 것일까, 일요일 저녁이라도 자신도 쉬어야 하는 데드라인이어 소풍가방을 싸 주는 것일까?

 다음 주엔 인증평가원의 심사가 화요일부터 금요일 까지 예정되 있어 병원은 한 달 여 전부터 비상이다.
지난주에 심사를 마친 S의료원의 바둑동호회 모임은 수요일이다.
나 자신의 거취까지 포함된 향후 방향설정은 실기를 않으려면 주초에 결론을 내려야겠다.

 정말 어려운 이 모든 문제를 답을 얻으려면 오늘 오후 조용히 바둑을 두며 생각을 가듬는 것이 최선일까?
바둑이 병원생활에도 이리 깊게 관련되 있는것이 지금 나의 위치이지!
얼마 남지 않은 직장생활 일텐데 소풍을 어디로 가야하는 것인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