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삽십여집 이겼던 바둑을 덜컥수 한방에 오히려 삽십여집을 지고 눈물을 머금어야 했다.

전투도 다끝나 마무리 단계로 끝내기만 남은상태였다.  
'왜 않던지니? 아예 만방으로 이겨줄까?' 
이렇게 혼자 콧노래를 부르며 상대방이 두자마자 재꺽 재꺽 두어나갔다.

그러다가... 아뿔사, 무심코 상대가 던진 미끼를 덥석 물어먹는순간 그 한수로 인해 자충이 되고 만것이다.
상대의 대마를 잡았었는데 자충수로 오히려 내 대마가 횡사 하시고 말았으니...

벌써 11월의 마지막날이다.
화려했던 단풍이 다 떨어지면서  앙상한 가지들의 속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름답고 화려한 단어들의 유희 뒤에 숨어있던 내 속마음이 드러나는듯 하다...

오십여평생 돌아보며 그동안 가장 후회되는 기억들을 더듬어 보니 거의가 다 덜컥수로 인한 말의 실수였다.
무심코 덜컥 말해버린 한마디... 그러나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안겨준, 돌이킬수없는 말들... 그리고 상처를 준 대상은 항상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아내, 아이들, 친구, 그리고 나자신...

오로 글방에 와서도 여러번의 덜컥수를 두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아니면 나혼자 스스로 친하고 가깝다고 느낀사람들에게) 농담반 장난반으로 약올리는글, 비웃는글들을 썼다.  물론 진심은 아니었다. 상대를 좀 짖궂게 놀리면서 다같이 한번 웃자는 취지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기분에 도취된 자만했던 덜컥수 였다.

나는 기분이좋아서, 장난끼가 동해서 웃자고 글을 썼을지 모르지만 상대방은 그날 아내와 타투고 심기가 불편해서 나왔을수도있고, 직장에서 어려운일이 생겨 마음이 가라앉았을수도 있고, 혹은 병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수도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좋은말도 기분이 나쁘게 들릴수있는데 하물며 비난조의 말이랴...
그리고 만일 기분이 좋았다 하더라도 누가 자신을 대상으로 우스개소리를 한다는것 자체가 기분 좋은일은 아닐것이다.

인터넷은 특성상 나의 신분을 감출수있기에  얼굴을 맞대고는 도저히 하지 못할말도
자칫하면 쉽게 내뱉게되는것 같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 예의를 지키고 조심해야함을 배운다



올해의 마지막 가을 하루를 보내면서... 
창밖에 떨어지는 낙엽과 함께 뼈처럼 항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를 보면서...
다시한번 뼈저리는 고통가운데 한수를 배운다...
이제는 더이상 덜컥수 만큼은 두지않으리...    (에휴, 이녀석은 언제나 철이 들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