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찬바람을 마주하며 걸으니 머리 속에는 오로지 춥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하루종일 머리 속에 사고, 판단, 걱정, 고민 등이 없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요? 몸이 힘드니 마치 바둑을 둘때 '바둑'이외에 아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머리가 '추위'라는 단어 말고는 모두 비워지네요.

조금의 추위인데도 시린 귀와 훌쩍이는 콧물을 방치하며 옷 사이로 들어오는 찬바람을 막기 급급합니다. 소매도 고쳐 메고 목깃도 여밉니다.

오늘 아침은 5분정도 여유가 있었는데 그 여유를 즐기며 걷다가 사거리에서 신호가 걸리는 바람에 신호가 바뀌자 말자부터 뛰어서 출근해야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찬곳에 너무 오래 있는 것은 오히려 차가움을 모르게 하더군요. 따뜻한 회사 건물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귀가 차갑고 볼이 차갑고 옷이 차가운게 느껴지더군요. 얼었던 감각이 다시 살아나서 그런가요? 집에서는 아무리 보일러 불을 올려도 춥더니 밖에서는 땀이 빨빨 납니다. 집에서는 가만히 앉아 겨울에 봄과 같은 따뜻함을 바라니 그게 될리가 있었겠습니까?

아침마다 승용차로 출근할때는 시동을 켜자말자 추워서 히터가 데워지기만 바라며 손을 동동 구르는데 외부에서의 열로 겨울을 나기보다는 내부의 열이 겨울 추위를 이기는 방법이구나를 깨닭습니다.

지난 늦가을에 꽃 뿌리 한알을 심었습니다. 봄에 사온 화분의 꽃이 지고 잎이 시들길래 죽었나해서 여름에 화분을 비워보니 안에 양파 같은게 있더군요. 그래서 양파망에 넣어 뒷베란다 높은 곳에 걸어두었다가 10월달에 다시 심었습니다. 버리기도 그렇고 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렇게 하라고 해서 말입니다.

흙만 보이는 민화분에 몇달 동안 물을 조금씩 주었더니 다시 이렇게 꽃이 폈습니다. 가을에 잠시 관심을 기울인 것이 아직 겨울인데도 봄을 맞이하는 호강을 가져다 주네요. 실내가 따뜻해서인지 꽃이 봄인줄 알고 피었나봅니다. 색깔도 이쁘기도 하지만 향기가 참 좋은 꽃입니다. 이름도 이쁘지요.

매일 매일 열심히 살며 목표한 바를 달성하는 인생도 중요하지만, 잠시 여유 내서 화분도 가꾸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