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일기131, 잔칫상

두 달여의 준비기간과 오로 온라인에서의 B조 예선전 8강선발등 고교동문 바둑대회는 준비를 착착 진행해왔다. 썰렁하던 동호회에 리그전 게시판을 다섯 조의 25명의 승패와 소식을 전하느라 북적이는 게시판은 모처럼 반응이 뜨겁다.

온라인 대국을 전혀 해보지 못한 동문들도 가입과 방 만들기 치수고치기 등 여러 난제에 오로 측의 친절한 협조로 무난한 진행을 한다.

내일은 백여 명 이상 모일 테지. 2002년부터 시작한 대회는 벌써 10회째이다. 오로에서 시작한 작은 동문회가 이리 오래 가고 여러 방향에 영향을 끼치게 될지는 시초엔 정말 생각을 못했다.

적지 않은 세월도 흐른 것인지 처음보다 부쩍 늙어 보이는 모습의 선배들도 많다. 간혹 풍을 맞아 한쪽 팔을 못 쓰면서도 뒤뚱이는 발걸음으로 행사장을 찾아주는 분들께는 감사한 마음과 한편 무엇이 바둑을 저리도 찾게 만드나 싶기도 하다.

각 기수별 세 명이 참가하는 단체전은 서로 전력들이 거의 노출되어 있어 1, 2 장의 그날 컨디션에 많이 좌우된다. 세 명의 출전선수 조차 모으기는 쉽지가 않다. 최소 오로6단급 이상은 되어야 각 대학 대표급 선수였거나 전국대회 우승전력의 동문들에게 무참한 패배를 당하지 않는다.

출전 고정멤버인 박이 갑자기 또 연락이 안 된다. 최근엔 피시방을 운영하며 연락도 잘 되고 테니스모임에도 나오곤 했는데 다시 두절이다. 한대병원 교수인 K는 출전을 묻자 최소 한 달 전에는 연락을 줘야 스케줄을 잡지 하며 일요일엔 골프모임이 예약이란다. 숙대교수인 H는 항상 제자들과 지방에 무슨 모임이 있다는 똑같은 핑계이고, 교회에 가야 된다는 친구, 여러 이유로 모두 거절이다. 형편이 좋은 친구들은 바둑실력이 약하고 바둑을 즐겨 두려하지도 않는다. 기력이 센 친구들은 방랑자마냥 잠적해 있거나 은둔지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대회 출전을 포기해야겠다. 진행을 담당하는 후배에게 미리 이야기 해 두었다.

지난 십여 년 이상 같이 바둑을 두며 술자리도 많았건만 동기인 박의 자세한 소식은 모르고 있었다. 평소 먼저 묻지 않는 성미이기도 하지만 s대 광산과(현 자원공학과)를 나온 그는 전공과는 무관한 기 와 단을 아카데미를 차려 도 닦는 것을 즐기나 보다 싶었다.

동기들의 또 다른 모임인 테니스모임 뒤풀이 술자리에서 오가는 이야기들을 우연히 듣는다.

약사인 친구는 대학시절 학장이 박의 부친이어 놀랐다고,

금속과 출신 친구는 학창시절 박이 승마를 해 놀랐다고.

지난 시절들을 잊기 위해 그는 술만 마시면 그리 끝장을 보려던 것일까?

다가오는 시간들을 싸우기 위해 그는 바둑에 몰입했던 것일까?

기력이 쎈 친구들은 특출한 기력만큼이나 인생역정도 특이했던 경우가 많은 것 같다.

o대를 다니던 권은 학창시절 당시 공안당국에 의해 돌아버렸고, 부산의 또 다른 권은 아직도 내기 전업이라지.

박은 내일 모임에 나오지 않겠지. 잔치에도 안 오는 건 자신의 모습이 마땅치 않아서일까?

그와 내가 후배 두세 명과 같이 만들어낸 이 모임인데. 지난 십여 년 수백의 회원에 매번 백여 명이상 모이는 모임이 되었는데.

모여서 바둑 두고 술 마시고 헤어지는 그런 모임이 아닌 초창기에 하던 대로 의미 있는 상호 배려하는 색깔을 기능을 잃지 말았어야 했는데 중간에 해외봉사단 일에 매진한다며 한 발 뒤로 물러나 있던 것이 후회가 된다.

적어도 박이 즐거운 마음으로 가볍게 언제든지 참가할 수 있는 모임으로는 이끌어 왔어야 했는데 싶다.

뒤에서 흘러가는 대로 지켜보는 것이 쉽긴 하겠지만 바람직한 잔칫상은 노력과 정성, 손맛의 결과이겠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