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일기, 순치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하는 병원 인근의 아파트에서 전철역으로 10시 경 나선다.
보통은 병원 회의실에서 다면기를 하곤 8시 경 인근 식당으로 옮겨 10시 경 마쳤는데 오늘은 알뜰히 바둑을 더 많이 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온 청년은 영어만 하고 동유럽에서 온 여류프로는 한국어를 잘 하지만 셋이 같이 얘기하기엔 영어가 빠르다.
일본에서도 8개월을 수련했고 4년 정도 Study했다는 죤의 실력은 연구생 정도란다. 바둑티비에서 일을 하는 명지대 바둑과 출신 여류와 호선 정도 실력이란다.

 그는 병원 바둑동호회 회원 두 명과 다면기를 두어 한 판은 이기고 한 판은 자신이 던졌는데 그게 몹시 마음이 쓰이나 보다.
게스트 하우스는 일반 아파트여서 다면기를 하기에는 애로가 있다. 바닥에 앉은 자세에서 이리 저리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는데 걱정이 되어 일부러 다면기 판 수를 줄여 한 사람이 움직이지 않아도 될 정도로 둘이나 셋과 다면기를 진행했다.

 어렸을 적 바둑교실에 다녔었다는 병원 직원은 전에도 프로와의 다면기에서 네 점에 몇집을 지고나선 무척 아쉬워하며 리턴매치를 요구했을 정도로 탄탄한 실력으로 보였다. 젊음의 자신감과 막 취직을 한 성취감 등 보기좋으면서도 뭔가 한 가지 부족해 보여 아쉬웠는데 오늘은 다른 모습이다. 어렸을 적 두곤 통 두어 본 적이 없다지만 기초가 충실하듯이 오늘도 바둑 실력은 견실하게 실력을 발휘했다. 이스라엘 청년을 투석하게 만들었으니. 실력은 변함이 없는 데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겸손해졌다. 그것이 달라진 점이다.
벌써 2~3년 직장생활에 적응하다보니 순치된 것이겠지. 신입시절의 자신감보다, 유연한 행마가 긴 승부에 도움이 된다는 기리를 터득하여 바뀐 것 이겠지.

 프로페서 리 에게서 수업을 받는다는 이스라엘 청년은 그 선생이 내 후배라 하자 제 선생처럼 깍듯이 모신다. 동유럽의 여류프로는 자기와 죤 그리고 내가 호선으로 바둑을 즐길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오늘은 병원 바둑동호회를 위한 모임에 게스트 초청인사로 온 것이니 그럴 순 없는 것인데 아직 한국 직장생활의 애로를 몰라서 이겠지. 젊은 신입직원은 병원생활에 순치 되었지만 여류 프로는 아직 한국어는 많이 배웠어도 한국생활에 순치가 덜 되었나보다^^

 죤은 얘기한다.
일본보다 한국의 바둑이 힘이 있어서 좋고 배우고 싶다! 자신은 싸움(Fighting)을 좋아한다며.
세돌 프로를 얘기한다.
 여류프로는 얘기한다.
유로피언들은 초반에 무너지면 포기하는데 한국사람은 마지막까지 포기를 안 한다고.
셋의 화제는 방내기로 옮겨간다.
죤은 방내기가 무엇이냐고 묻고 여류는 설명한다.
나도 거든다. 91집을 지면 만방이고 10배를 물어낸다고.
한 집이라도 줄이면 9방을 지는 것이라고.

 프로에 도전하고 싶지만 자국의 병역의무 3년을 지켜야 하기에 입대해야 할 걱정인 죤은 화제가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옮겨가자 자신들은 늘 싸우며 살기에 아무렇지 않단다. 여류는 고국에서 모친이 전화해 돌아오라 하기에 걱정을 안 해도 된다 했단다.

 리조트의 콘도나 병원 회의실, 게스트 하우스 등 여러곳 을 옮겨가며 벌써 거의 10여년 진행해 온 바둑동호회의 모임은 변함이 없는데 변한 것은 직원들의 직책이 올라가고 얼굴에 세월의 풍상이 서리는 것이다.
과장은 짜장면 그릇을 치우고 수석은 바둑판을 옮기고 물론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젊은 회원들의 가입이 적은것이 현실이지.

 지나간 세월들에 추억을 새기며 서로를 아끼며 바둑을 둘 뿐이다.
오늘 게스트 하우스의 추억은 언젠가 바둑작가와 바둑기자를 초빙했었는데 그 녀가 이 국수와 결혼을 했다는 소식에 모두 기뻐하는 것이다. 동유럽의 여류프로도 거든다. 자신은 같이 명지대를 다녔다고.
이스라엘 청년은 이제 20살 이니 오늘의 추억을 평생 소중히 간직하겠지.
세계화 된 바둑의 위상을 실감하며 전철역을 향해 걷는다.
덕분에 오늘은 기원을 걸렀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