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에게 제일 좋아하거나 존경하는는 외국인 기사 3명을 뽑으라고 한다면
 우칭웬(吳淸源 오청원), 다케미야 마사키(武窮正樹 무궁정수), 
 후지사와 슈코 (藤澤秀行 등택수행)  를 뽑고싶다.  
그리고 우리나라 프로바둑에서 3명을 꼽으라면 
조훈현, 이창호, 루이 를 꼽고 싶다.
(난 루이 선수가 우리나라의 프로로 뛰고있는만큼 우리나라 선수라 생각한다.
물론 한국바둑사에 중요한 세분을 꼽으라면 조남철선생, 조훈현, 이창호 일것이다)

언젠가는 이분들에 대한 글을 한번씩은 써보고 싶은데 
오늘은 먼저 조훈현 선생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한다.

조훈현 선생이야 바둑애호가들에게는 특별히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것이다. 
푸대접받던 시골변방, 한국바둑을 혈혈단신 그야말로 혼자서 
세계 정상급으로 끌어올린 장본이다.
한국 바둑의 대들보라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이미 잘알려진 조훈현 선생의 외적 성과들을 이시간 다시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분의 성품과 내면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오래전  월간조선 2002년 4월호에 실렸던 조훈현 선생의 글을 읽으며
그분이 얼마나 훌륭한 분인가를 새삼 깨달았던 기억이난다. 
나는 그분의 내면적인 아름다움, 그리고 내면을 볼줄아는 탁월함에 감동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소년 조훈현은 10살의 어린나이에 세고에 겐사쿠
(瀨越憲作 뇌월천작) 선생의 내제자가 되어 10 여년동안 일본에서 공부했다. 
그후 한국에 돌아와서는 한국바둑계를 오랫동안 휩쓸었고 
그후 30대의 젊은 나이에 이창호라는 내제자를 두었다.
  

세간에서는 그가 큰집에 살고싶어 큰돈을 받고 창호를 내제자로 받아들였느니 
어쨋느니 하면서 쑥덕 대었지만 조훈현은 구차한 변명한마디 없이 
그저 묵묵히 창호를 가르쳤다.
 

조훈현은 세고에 겐사쿠 선생에게 돈한푼 내지않고 배웠기에
자신도 그 은혜를 갚기위해 창호를 가르쳤을 뿐이라고 한다. 

“선생 댁에서 10년을 머물면서 가르침을 받았으나 나는 수업료 한푼,
  월사금 한 번 낸 적이 없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內제자란 원래 그런 것이었다. 
  나는 내가 선생님으로부터 거저 받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거저 돌려 준다는 생각뿐이었다.
  은혜를 거저 받았으니, 거저 베풂으로써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기본적인 양식이자, 도리요, 의무였다.“

얼마나 멋있는가… 세간의 입방아와 비방에 묵묵히 말이없던 조훈현, 
세고에 선생에게 입은 은혜를 다음세대에 갚없이 물려주어 
그정신을 이어가는 조훈현. 조선생의 인품이 마음속 깊이 뭉클 다가왔다.

내가 느낀 조훈현 선생의 또한가지 탁월함은 “숨은천재” 를 알아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창호가 어려서 바둑을 잘두기는했지만  전날둔 바둑한판 제대로 
복기를 못하기도 하는등 누구나봐서 느낄만한 반짝이는 천재성의 소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훈현은 창호를 처음 만났을때의 느낌을 이렇게 말하고있다.

 “昌鎬 를 보는 순간 나는 내 생각이 역시 크게 빗나가지는 않았음을 느꼈다.  
   昌鎬에게 천재의 이미지는 별로 없었다. 보통 상식으로는, 천재라면 아무튼 뭔가 
    번쩍이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昌鎬는 번쩍이지 않았다. 
    오히려 보통의 소년보다도 덜 번쩍였다. 
    다만, 어린아이답지 않게 아주 과묵하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면 인상적이었다.” 

아직 돌속에 뭍혀 끝자락만 약간 보이는 금강석을 알아보는 눈! 
그리고는 돌속에 숨겨진 귀한 보석을  정성 들여 가공 하기 시작한 
실천의 사람! 
 




숨어있는 천재를 찾아 낼수있었던 그의 안목이 
바로 조훈현 선생의 위대함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가정을 과감하게 열어 창호를 받아드린 희생정신…
 

남의 자식을 내자식 처럼 한솥밥먹이며 키운다는것은 
말처럼 그렇게 쉬운일이 아니고 역시 아무나 할수있는 일도 아닌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훈현 선생이 더욱 멋있게 느껴지는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외면보다  "내면을 볼수있는 심미안"  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창호는 겉으로 드러나는 천재가 아니라 안으로 감추어진 천재다. 
   굳이 말을 만들자면 「內的(내적) 천재」다. 
   內的 천재가 外的 천재보다 더 무서운 천재인지도 모른다”

겉모습이 아니라 그 사람의 진정한 내면, 속사람, 본질을 꿰뚤어 
볼수 있다는것은 그자신 역시 내면이 깨어있고 성숙한 경지에 
다다르지 아니하고는 결코 볼수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느분야든 최고봉에 이른 “고수” 들에게서 항상 느끼는것 바로 이것이다. 
학문, 종교, 패션(fashion), 바둑... 어느분야를 막론하고 그분야의 
초절정 고수들은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이 있고 핵심을 보는 눈이 있다는것이다.  

그들은 시시한 주변 잡동사니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진정한 고수들은 다만 본질과 핵심, 
가장 중요한것 하나만을 취할줄 아는 탁월함이 있는것이다. 

조훈현선생의 이런 고고한 성품과 탁월한 안목을 보며 그분의 옷끝 한자락, 
그분 내면의 한귀퉁이라도 만져보고 싶은 마음에 이글을 써본다...

물론 우리가 이세상에 사는동안에는 천사처럼  흠없는 성품, 완전한 인격을 가지고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단점을 찾을 시간에 각 사람에게서 가장 아름다운것, 가장 고귀한 인품한자락, 그사람만 가지고있는 멋 을 발견하고 그것을 귀하게 생각하고 거기서 한가지라도 배워 내것으로 삼을수 있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