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집권정치의 근본적인 모습은 훌륭한 임금 밑에 충성스럽고 어진 관료가 있어서 깨끗하고 바른 정치를 하는 데 있다. 그리고 어린 임금의 경우는 관료의 우두머리가 섭정을 하면서 어린 임금을 도와 그가 성장할 때까지의 공백기를 메우는 것이 정상적인 관례이지만, 어린 임금과 섭정 사이에 유대가 약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혹은 그런 걸 걱정하여서 나서게 되는 것이 어린 임금의 어머니 즉 태후이며, 태후가 실권을 잡게 되면 환관과 외척이 그 집행부가 된다. 태후가 유능할 경우에는 그 측근이 권력을 쥐게 되지만, 남자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후궁에 출입할 수 있는 것은 남자의 구실을 할 수 없는 환관밖에 없으므로 태후 정권의 집행부는 환관 내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태후가 직접 정치를 할 의사가 없는 경우에는 그의 친정 식구, 즉 태후 혹은 황후의 아버지나 오빠들이 정권을 쥐게 된다. 관료든 환관이든 외척이든 좋은 정치를 하면 문제는 없지만, 후한 말기에는 환관이나 외척이 권력을 잡으면 자기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만을 생각하고 정치는 게을리 했다.

보통 통치자는 겉으로는 충신이 되어야 한다고 격려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취하는 인재등용의 기준과 행동을 보면 충신을 용납하지 않고 간신만 좋아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간신이 충신보다 더 운이 좋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우리는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말이나 글로는 간신을 토벌하고 비난하는데 습관적으로 도취되어 있지만, 실제 행동을 보면 간신들이 하는 짓에 부화뇌동한다. 간신들이 윗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오직 자기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이 그들의 진정한 목적이다.

이것을 분개한 관료들을 청류파라 하며, 그들은 정치의 혁신을 외쳤지만 환관과 외척 세력에 밀려나 정치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이런 형편이었기 때문에 후한 말기의 정치는 문란과 부패가 극도에 이르렀고, 정치가는 백성들의 생활은 아예 돌보지 않고 부정부패와 권력 투쟁에만 빠져 있었다.

이로 인해 한나라 황실은 완전히 통치 능력을 잃고 말았다. 원래 한민족은 운명론자이고 강인한 생활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싫어하는 정부의 존재를 용납하고 가혹한 세금을 참고 견디는 것은 그들 개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도리 없는 치수와 치안과 북방 민족의 침략 저지라는 세 가지 중대한 일 때문이었다.

낙양 동쪽에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황하의 델타지역은 상류에서 흘러온 풍요한 황토가 쌓여서 생긴 땅으로, 물만 있으면 비료를 주지 않아도 곡식이 잘 자라는 농업 지역이었는데, 농업의 시작으로 인류는 비로소 동물과 같은 수렵생활을 벗어나게 되었고, 사람들의 집단 생활로 인한 계급구조가 생기고, 빈부귀천이 생기면서 문명이 탄생하였는데 바로 이것이 황하문명이 탄생한 배경이다.

황하는 물이 많아 걸핏하면 넘쳐서 홍수를 일으키는 것이 큰 고민거리로 물을 어떻게 다스리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다. 바로 물과 산을 다스리는 치산치수에서 정치가 탄생하였다. 낙양 동쪽에서 중원으로 나온 황하는, 때에 따라 북쪽은 천진에서부터 남쪽은 남경 근처의 남북 약 9천리에 걸쳐 위치를 바꿔가며, 바다로 들어가고 있어서, 그 사이의 델타지역은 마치 자동차의 타이어처럼 왔다 갔다 하고 있으나, 단 하나 태산만은 완강히 굽히지 않고 태연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이 지방은 또 1년 내내 비가 무척 적어서 밭의 모래먼지가 날아오르는 일이 많다. 물만 주면 곡식은 자라게 되어 있지만, 그 물은 황하로 모여 있을 뿐 원하는 곳에 고루 주어지지 않았다. 황하 델타지역에서 하늘의 혜택을 넉넉하게 얻기 위해서는 황하의 범람을 막고 그 물을 적당히 분해하는 치수공사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리 끈질긴 중국 농민이라도 각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무래도 전국 규모의 큰 토목공사가 필요했고, 그로 인해 하는 수 없이 본래 무정부주의자인 중국인도 마지못해 정부의 존재를 인정하고 막대한 세금을 바쳤던 것이다.

후한 말기에 있어서 중앙정부의 타락과 못된 정치로 인해 정부는 이 소중한 치수와 치안과 국방을 포기하고 세금만을 거둬들이려 했으므로 당연히 정부는 통치력을 잃게 되고 백성은 피폐하게 되었다. 따라서 백성들의 불만은 절정에 이르렀고 이를 틈타 반란을 일으키는 사람이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이 때 백성을 구제한다는 깃발 아래 들고 일어난 것이 황건적이다. 도적이라고는 하지만 백성들로 보면 의로운 도적이었고 구세주였다. 게다가 종교적인 마음의 구원과 병을 치료해 준다는 현실적인 구실이 따르고 있었으므로 요원의 불길처럼 그 세력이 전국에 뻗쳐 후한 정권을 위태롭게 했다.

이렇게 되자 외척과 환관, 관료들도 집안싸움만을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우선 황건적을 무찔러야 한다고 해서 눈을 밖으로 돌리게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들에게는 적을 물리칠 힘이 없었다. 여기서 화려한 무대로 뛰쳐나온 것이 무인들이다.

처음은 외척. 환관. 관료 등 각 세력 밑에서 일하고 있던 그들이었지만 황건적을 토벌하는 사이에 점점 많은 군사를 가지게 되었고, 싸운 공로와 실력을 배경으로 그들의 발언권이 급속도로 강화되었다.

이리하여 마침내는 지난날의 구세력을 대신해서 통치권을 노리는 전국시대의 지방 세력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완전한 사상적인 혁명이 있었던 것이 아니므로 한나라 왕실의 권위는 여전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장안과 낙양 궁중을 벗어난 중국의 정치권력은 우리에서 뛰쳐나온 사자 같은 군웅들이 뒤엉켜 싸우는 전국시대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이렇게하여 삼국지의 영웅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