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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다보면 큰일이라 생각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매달리는 일이 있고 생각지 않은 작은 일에 큰 의미를 느끼는 경우도 있다 지나고 나면 사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이 공감이 가지만 일상은 많은 일들이 안개처럼 휘감고 있고 또 바람처럼 스쳐간다 우리는 맹인이 되고 나뭇잎 되고. 그렇게 삶의 가치관과 별개의 일들이 우연이라는 명목 하에 무수히 일어난다. 인정하건 말건 필연의 예시겠지만. 원하지 않아도 일어나는 일들에 우리는 의지라는 하찮은 잣대로 버티며 살고 그리고 결과에 변명과 성취욕을 늘어놓는다. 무덤에 침을 뱉든 참배를 하던 사자는 말이 없고 묵언하는 이 상념만 깊다 세상사 원망하지만 모두 부질없으니 도리나 하고 가려지만 결국 술 한 잔과 쓴 웃음으로 지워버리고 무기력해진 자신을 책망하면서 취해간다 내 탓이요. 내 탓일까. 인정하고 반문하면서 또 내 탓을 만들어 간다. 죽음을 선고 받지 않는 한 짐작만으로 하루를 낙엽 태우 듯 보내고 살아 온 날의 족쇄를 벗지 못하고 얼마지 모를 남은 날들을 갉아 먹으며 고사하고 있다 취기로 남을 해하지 않음을 자위하는 밤 쇠창살 너머 달은 내 마음이 허공에 매달린 듯 애처롭게 야위었는데 빈 술잔은 둥글고 채우는 잔은 순리를 따른다. 오늘을 기만하며 후회스런 어제를 반복하고 막연한 내일에 한숨짓는다. 숙취로 생각하는 것이 괴로워 다시 술잔 채우기를 반복하고 세상 신세를 외면하지도 못하고 갚지도 못하는 마음들이 술잔 속에서 비웃는다. 그래서 또 마셔 버린다. 초저녁 경망하게 울어대던 닭소리가 개소리로 바뀐 걸 보니 밤이 깊었나보다 쓰러진 술병들 속에 잠시 잠이 들었을 때도 나에게 계시는 없다 고통스런 속을 물 한 컵으로 달래고 나니 찌그러진 담배 갑 빈 술병이 허허롭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밤 슬리퍼를 끌고 동네 슈퍼로 향하는 발걸음만 무심하다 먼저 떠난 이들이 접어 보낸 종이학들이 다시 앉은 창가를 맴돌고 있다 그들의 사연인가 나를 비추는 반추인가 이름 모를 나방과 풀벌레들은 애초에 그들이었고 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사라진다. 그런데 나는 인연의 무엇이고 싶어 이러고 있나 가득 찬 재떨이를 비우고 술병을 찾아 냉장고 문을 열어 놓고 한숨짓는다. 알싸한 냉기와 잡스런 냄새들이 스쳐간다 무엇을 가지러 왔는지 잊어버리고 물 한잔을 마시고 돌아와 앉았다 졸음인지 취긴지 어제 이렇게 쓰러져 잤다가 아침부터 해장술로 이어 온 시간들 내일의 나는 어떻게 일어나고 무엇부터 시작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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