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일기, 패자부활전

밤 11시. 원장은 아직도 들어가지 않고 문 옆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밤 11시 이후에는 야통 費를 받는다고 붙여 놓았는데 설마 싶어 구경을 하고 있다.

병원 Day번 근무시간이 끝나는 세 시경 일찍 나와 두 판을 연속 지고 두 판을 다시 복구하느라 거의 8시간이 걸린 것이다. 8시간이면 근무시간의 길이와 같은 것인데.

체력도 떨어지고 현기증 까지 나는 것 같아 사양하는데 강 원장은 한 번 더 편 바둑을 하자기에 5번째 판을 시작한다. 같은 편 둘은 일찍 많이 씩 져버린다. 6점 하수인 양 고수(별명)는 41집을 오퍼상 박 사장에게 져 버리고 내게는 강한 젊은이는 상대에게 16집을 졌다.

강 원장은 같은 편이 많이 이기자 적당히 물러서며 내가 1등으로 벌금 만원이라도 받게 도와주나 보다.

거의 12시 직전 신 프로(별명)가 종일 오토바이 배달 일을 마치고 기원에 들어선다. 두툼한 복장이지만 얼마나 추웠을까 싶다.

소주나 한 잔 간단히 하자기에 둘이 오징어 회 집에서 잔을 나눈다. 자신은 저녁을 먹었는데 안 먹었으면 공기 밥을 하나 들라며 부득불 종업원에게 시킨다. 쯔끼다시로 주는 미역국에 밥을 말아 먹으라며 한 그릇 더 갖다 주는 종업원의 호의는 고맙지만 맛은 정말 없다.

신 프로의 깊은 속정에 나도 속으로 감사할 뿐이다.

기원에서 숙식하며 배달 일을 하던 그는 작년 내 방으로 와 반년 정도 같이 있었다. 지금은 본인 Room을 같은 빌딩에 얻어 기원의 다른 이 둘과 같이 셋이 숙식을 하고 있다.

지난주에 처음 그의 방에 가 보았는데 아담하게 잘 해 놓았다.

소주를 한 병 마시며 신 프로는 눈이 오지 말아야 할 텐데 라며 걱정이 태산이다.

오토바이 배달에 눈은 최악이겠지. 바람과 추위보다 눈을 걱정하신다.

평소 남의 얘기는 거의 안 하는데 오늘은 같이 있는 두 사람 품평을 한다.

지난주에 자신의 방을 방문한 뜻에 답을 하시는 것일까?

내일 배달 일을 나오기로 한 안 실장(별명)이 연락이 안 되는데 J기원에서 잔다며 같이 가 보잔다. 아무도 없다며 다시 T기원에 가 보자는 말에 같이 다시 기원에 들어선다.

한바탕 주먹다짐이 벌어진 후 주먹에 얼굴을 맞았다는 A만 씩씩거리며 앉아있다. 일식집 요리사인 그는 바둑보다 화토를 더 좋아해 주로 야간에 밤새워 많이 잃었었단다. 한 편에선 무심히 편 바둑들을 두고 있다. 흥이 나는지 한 잔 더 하러 가자는 이들을 마다하고 편 바둑관전을 한다. 중간 중간 잠이 깨어 눈을 떠 보면 정지된 비디오 마냥 계속 바둑을 두고 있다. 의자에 앉은 채로 잠을 잔 것이 아침 8시까지이다.

밤새 바둑을 둔 넷은 서로 다 잃었단다. 그럼 누가 딴 거예요?

딴 사람들은 다 갔고 잃은 사람들만 남았지.

넷 중에 둘을 가고 마지막 둘만 남았다.

얼마 전 주말 저녁에 젊은 부인이 와 집으로 끌려가던 젊은이와 양 고수 둘이다.

마지막으로 한 판 둬.

그래요.

패자부활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