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각시 알바 출근시키고 어머님은 아버님 간병 보내드리고

휘휘 돌아다니다 점심 먹으러 집으로 돌아와 보니

설거지며 청소며 할 일이 태산인데 일단은 밥부터 먹고 하기로 하는데.

아뿔싸.

오늘은 내가 밥을 하지 않아서 상황 체크가 되지 않았지만

어떻게 밥이 하나도 없다

뭔가 덮어놓은 그릇을 들춰보니 식은 밥이 한줌 있다

지금 밥을 해서 먹어도 되지만 쌀을 좀 불어서해야 제대로 된 밥을 하는데

그렇다고 요즘은 라면은 부대낀다.

조금 있으면 퇴근하는데 어차피 밥은 해야 되지만 왠지 좀 분하다

설거지를 우당탕(누구 대명인데..^^)거리며 하다 보니 뭔가가 스쳐간다

아...!

(이래서 여자들이 스트레스가 쌓이면 설거지를 요란하게 하는구나.)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한번 돌리고 한 바퀴 휘 돌아보니 훤한 게 마음에 든다.

근데 막상 식탁에 앉으니 또 분하다

내가 이렇게 바쁘게 사는데 여자 둘이서 설거지를... 밥을...

음..

한참을 식은 밥을 쳐다보다가 전화기를 들었다

“난데”

“응. 빠빠 무서”

“머라카노”

“왜”

“밥이 있어야 묵지”(버럭)

이게 원래 대사였는데 저쪽에서 전해오는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다

뭔가 또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이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 또 누가 ...”

“휴...=3=3” 늘 한 두건은 있잖아. 빠빠 무서(요건 고정멘트..^^)”

“웅. 아주 맛있는 밥 무서”

“무슨 밥을 해먹었는데... 바빠서 밥도 못해놓고 왔는데.”

“식은 밥 조금밖에 없었을 텐데.”

“웅. 여태 내가 바보짓 했더라구.”

“............”

“요렇게 맛있는 식은 밥을 몰래 숨겨뒀다가 두 사람이 내 몰래 먹었데.”

“인자는 안 속는다.”

“엄마하고 자기만 맛있는 식은 밥 먹으란 법 없다”

“나도 먹을 권리 충분하다모”

까르르르....

이상하게 돌아가 버렸지만 일단은 기분전환은 시켜준 셈이다

그래도 요즘은 제법 쌀쌀해져서 따끈한 게 좋은데 서글픈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어떻게 먹을까 궁리를 하다가 결국은 물을 콸콸 부었다

그리고 김치나 된장으로 간단하게 먹으려 냉장고 문을 여니

이럴 수가.

삼겹살도 보이고 소고기 국도 보이고 생선도 구워 놓았다

그리고 정작 금치가 되어버린 김치는 얼마 전 떨어졌고 된장도 안 보인다.

은근히 부아가 나고 뭔가 속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물에 말은 밥을 고기반찬으로 먹는다는 건.

할 수 없이 양파 하나를 까서 고추장에 신경질적으로 푹푹 찍어 먹었다

아...!

누군가 가장 편하고 쉬운 일을 식은 죽 먹기라 했어도

식은 밥은 거론 하지 않은 게 다 이런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식은 죽(왠지 죽시사님이 자꾸 생각날까?)의 편안함과 식은 밥의 서러움을

뼈저리게 느끼는 10월11일 오후의 서러움.

이따 퇴근하면 병원에 잠시 들렀다가 삼겹살 본김에 살살 꽤서 술상 봐 달라 해야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