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영산

 

언젠가 어린아이처럼 산사 길에 올랐을 때

그저 무언가를 위해서 의식적인 행위의 머리 박기를 시작했다

일 배 이배...,,,,,,,,,,,,백팔 배

나의 행위로 무언가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염원하면서 무의식적으로.

그것은 나로선 엄청난 도전이요 실로 두려운 발원을 한 것이고

자신을 의심하며 이어지는 책임과 무심의 발걸음을 갈등 속에 옮기며

이젤까 저젤까 발길 머문 나의 모습에 몸서리를 쳤다

 

 

▲ 능가사

그리고 3년.

매번 같은 듯 낯선 길을 한걸음씩 옮길 때마다

전리품처럼 떼어온 마음의 풍경들이

어느 듯 108개에 이르고 한 두 개의 맑은 소리는

이제 우시장의 소떼들이 대가리 흔드는 소리만큼이나 요란하다

얻은 것은 숫자 쌓기 일뿐 나의 마음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그리고 손에든 쇠붙이 풍경들.

위안은 횟수를 채웠다는 것뿐이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목적은 이루었지만 채를 들어보니 또 빈 소쿠리.

나는 과연 한 것이 없는가.

그렇다 나는 한 것이 없었다.

이제 나는 다시 돌아가려 한다.

무엇인가 하려 했기에 한 것 또한 없음이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둘러보리라.

목적은 있되 의식하지 않으며 그저 임하려 할 뿐이다

나는 다시 풍경을 돌려주러 떠나려 한다.

내 왔던 길.

내가 가져왔던 곳이 아니라도 나에게 짐처럼 쌓여버린 풍경들을

원래 있었던 곳으로 돌려주러 떠나리라

그리고 모두 매달고 돌아서는 길이 못내 아쉬우면

그때 다시 하나씩 떼어 오리라.

매달고 떼어오고 매달고 떼어오고.

그 길을 오갈 수 있는 동안이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되리라.

다시 돌아가면 이제는 소리를 담아 오리라

누구에게 들려줄 수 없어도 쌓여 짐스런 모양은 두고 가벼운 소리를 흠뻑 담아

내 마음 호젓할 때 차 한 잔 따라 놓고 눈을 감고 조용히 미소 지으리라.

▲ 조계산 선암사

회향가라고 하기엔 부끄러우나 나름의 소회를

늘 그러해왔듯이 느끼는 대로 주절거려 보았다.

                         산사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목탁소리 무등하고 계곡 따라 물결처럼 너울너울 춤사위를 벌리다

문득 돌아보며 처마 밑 풍경더러 법당에 엎드린 수도승 일깨우니

촛불아래 졸고 있던 염불소리 다시 청아하다

이 평온 앞에 무엇도 필요 없다 눈감고 마음 발가벗은 채

자칫 슬픈 이 숲속에서 자연의 하얀 속살음 소리로 멱을 감고

문득 고개 들어 바라보니 임 같은 빈 하늘이더라.

젖은 상념 걸망에 쑤셔 넣고 돌아선 등 뒤론

어느새 노을빛이고

끊어질듯 멀어지는 저 소리는 이미 익숙해진 서러움이 되었구나

속세인연 끊지 못하니 좋은 생각 일으켜

열심히 사는 게 수도라고

애써 인내하지 않더라도 습관처럼 행하기를 엎드려 빌었건만

오늘도 산사 돌계단만 헛돈 허한 마음은 긴 한숨 되어 비웃고

고개 숙인 내 그림자 뒤따르는 발걸음이 허허롭다

이제 돌아가면 쉬 잊어버리리라

그렇게 나는 언제나 이방인으로 오가지만

머리와 입을 포기하고 늘 성실하여 몸으로 임하려 하고

지금 내려가는 아쉬움은 곧 다시 오기 위함이라 위로할 뿐이다.

                  백팔사찰 순례를 마치고. - 法印 -

이것으로 108사찰 108배 산사순례를 마칩니다.

그동안 개인적인 발원으로 시작한 허접한 기행문에

관심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모든 기우님들께 엎드려 감사드리며

나름 회한도 많지만 조용히 회향(?)하렵니다.

거듭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마무리를 같이해준 분들과의 에피소드는 따로 올리겠으며

다시 시작하면 횟수에 연연하지 않고 보다 자유롭게 행하고 싶고

되도록 호젓한 암자를 찾아보려 합니다.

마지막이 아니라 다시 시작한다고 다짐해도 왠지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꼭 다시 뵙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