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에는 봄을 재촉하는 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다.

이런 날은 늘 피하던 물귀신 술친구가 나를 포차로 불러 주었으면 하다가

기다림에 지쳐 한 병을 비우고는 결국은 전화기를 들었다

이제는 외우지 못하는 전화번호들을 이리저리 뒤적이며 희생양을 물색한다.

그들 중 누군가 나처럼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반겨주기를 바라면서.

가끔씩 누군가에게 삶은 계란의 추억이 되었으면 했었다

아무런 격식도 예의도 이성적인 자제력도 필요 없는 서로에 의해 무너질 수 있는

그렇게 편안한 친구가 되었으면 했고 있었던 것 같은 그 친구가 그립다.

만나서 편안한 친구가 있고 생각만으로 위안이 되는 친구도 있다

나이 어린 친구도 있고 나이 많은 친구도 있다. 물론 여자 친구도 가능하다.

그가 나를 기억하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고 내가 아는 것으로 행복한 친구.

한 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30여년을 같이한 그런 나의 친구가 있었다.
때로는 공원벤치처럼 쉬어갔고 때로는 깊은 숲에서 만난 옹달샘처럼 갈증을 풀어줬다

그는 공인으로 나에게 다가왔으며 늘 골목길 가로등처럼 내 마음 어두운 길을 밝혔고

그것으로 한 번도 나에게 공치사 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았고 그는 공인으로 무심했다

무심한 가로등과 마음 붉히며 가슴 설레고 그를 보아 안도하며 편안해하는 친구사이.

내 여린 마음이 세파에 다듬질되어 거칠어지는 동안 그의 불빛도 야위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영원히 내 마음의 골목길을 밝혀 주리라 믿었던 그가 빛을 잃어가고 있으며

그것이 나를 안타깝게 하고 그를 만날 수 없는 이 순간을 누군가와 술을 마시게 한다.

그는 나의 위로를 원하지 않고 내가 도움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와 함께 아니 더 가슴 아프게 상실감을 느끼며 무기력증에 빠졌다

내가 그의 망부석이 되었나.

공인의 개념은 아무래도 부와 명예가 현실에선 우선적인 것 같다

문무를 겸비하고 덕을 갖춘 이들이 존경의 대상이 되었던 시절은 이미 옛말이고

특정부분의 특수 기능인들이 각자의 아니면 보편적 취향에 따라 공인으로 대두될 때

나만의 공인으로 그는 부족함이 없었고 늘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이 많은 것 또한 그로부터 받은 자부심 보너스다

만나서 느끼고 상대를 파악하여 유연하게 대할 수 있는 것도 보통의 내공으로 힘들다

그러함에도 스스로를 단속하고 모범으로 다수에게 인정을 받기란 신의 영역이 아닐까.

아마도 담 넘어 보내지 않은 스스로의 다듬이 소리가 밤을 새웠을 것이다.

이제 모두를 인정하기로 했다

나도 인정하고 그를 인정하고 그리고 그도 인정하기를 원한다.

흐르는 물이 물러서기를 애달파 한다면 물이 아닐 것이고 생명도 없을 것이다

바다로 가기위해 예전에 앞 물을 밀어내고 흘러왔듯이 이제는 밀려서 가는 것이다

바다로. 바다로.

작은 생명을 다독여놓고 더 많은 생명들을 보듬으러 바다로 간다고 생각하기를 바란다.

내 연민의 정으로 내 머무는 곳에서 붙들고 싶지만 결국 나도 가고 있는 것이니.

자신으로 이루어졌던 골도 호수도 모두 뒤로하고 이제는 모두의 바다가 되러 가야한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나면 남은 우리는 같이 가는 우리는 그것을 추억 할 것이니.

조금만 더 에 미련을 두지 말고 이제부터는 의연해 지기를 바란다.

내 휴식 같은 친구여.

이미 이기기를 더 많이 했기에 그 겸손을 이제 지기 시작한 조급함으로
부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지는 마시라.

그동안 이기느라 할애하지 못했던 개인적인 시간과 웃음도 
새로운 가정과 우리들을 위해서 더 많이 웃어주고 더 많은 곳에서 여유를 보여달라
지고난 상심의 시간은 짧지만 그로인한 남은 시간으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니
이제 그것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기를 바란다.
그대는 지는것으로도  이미 우리에겐 추억으로 가는 휴식이니까.

여기 당신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졸필가가 당신을 위로하며 나를 위로하며 술 한잔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