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나와 지금의 나는 누구이며 내일의 나는 누구일까.

지난날을 알고 있기에 지금의 나를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오늘을 비추어 내일의 나를 예견한다면 어디까지가 나란 말인가.

과거의 잘못된 내가 대견했던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닐 수 있고

그때도 그랬듯이 지금의 나도 내일의 내가 아닐 것이다

무기력한 오늘의 벽돌쌓기는 내일을 불신하고

계획 없는 아침을 맞으며 한낮을 건성으로 끼 때우고 노을에 무심하다

누구를 위하여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오해가 유치하고

나로 인하여 행복한 모습을 그리는 그림이 치졸하다

다시는 그리지 않으리라 찢어버리고 던져버린 붓이 마음벽지를 더럽혔다.

그리고 허접한 사색의 걸레를 집어 들고 얼룩을 더욱 번지게 한다.

나의 슬픔을 모르는 슬픈 사람의 전화를 받고 집을 나선다.

위로를 받으러 위로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과 밤새 술을 마셨다.

헤어질 때 바람과 물로 채운 포만감은 서로의 몫이 되고

외로움의 허기는 텅 빈 방을 밝히려 어둠속에서 습관처럼 찾아내는 스위치.

밝혀도 그냥 두어도 별반인데.

마음은 가라앉았고 결과를 각오하였건만 손에서 술잔이 떠나지 않는다.

만약 내가 떠난다면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슬플까. 무심함에 내가 슬플까.

부질없는 사색의 시간들은 불장난이 되고 나는 현실의 이부자리에 오줌을 산다.

그렇게 살아왔던 과거처럼 또 성숙해지는 과정이라 위로하고 변명하기엔

지금 나는 너무 지쳐있고 이해 받기에도 어리지 않다

모두의 잘못도 나만의 잘못 또한 아니지만 서로를 원망하며 등을 돌리고

서로를 위해 잔을 따른다.

그리고 들리는 소리로 상대의 슬픔을 짐작하고 자신을 위해 눈물 흘린다.

빗소리가 멈추었다가 다시 들린다.

비어버린 병을 밀어내고 냉장고 문을 여니 한 병 남은 술이 나를 쳐다본다.

죽여 달라고 교태를 떨다가 살고 싶으면 돌아가라 두 얼굴로 말하고

하얀 냉기는 아랫도리를 휘감고 오르며 알 수 없는 허무의 오한을 전해준다.

취해 쓰러뜨린 술병이 나를 비웃고 있다.
벌거벗고 누운 창녀처럼.

과연 누가 누구를 비웃는 세상인가.

갑자기 나보다 어려웠던 사람이 보고 싶어졌다

지금은 새로운 인연과 새로운 길을 나섰기에 그 모습 그 말을 듣고 싶어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냥 듣기만 보기만하고 따르는 술만 마시고 오리라

그리고.

한양으로 달려가는 기차에서 내려오는 기차에서 과거와 내일을 버리고 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