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꾼과 선녀 2편

위험에 빠진 사슴을 구해주어 보답으로 사슴이 알려준 선녀들이 하강하여 목욕하는 연못에서 선녀의 옷을 훔쳐 같이 살다 아이 둘을 낳은 후 선녀는 하늘나라로 되돌아간다는 이야기는 어렸을 적부터 낯익다.

그랬어? 그래서 뭐?

어린이들이나 듣고 좋아할 동화로만 여기던 유치하던 이야기는 오랜 세월이 지나니 가슴속에 저며진다.

설화나 신화를 역사, 문화, 지리적으로 기원과 유래 분포 등을 고찰해온 기록들은 놀랍다.

仙界의 동경, 俗界의 고난, 인간의 속성을 담아 전승자의 입맛대로 변화시킨다.

곡성의 남초라는 이가 사동을 시켜 청학동의 선인에게 기별을 전달하니 바둑을 두던 선인들은 네 올 줄을 알고 있었노라 하며 바둑을 계속 두어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니 속계에선 6달이 지났더라는 이야기는 바둑 구경하는데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고사를 만들며 선계의 시간은 속세와 다르다며 불로장생의 선계를 동경하는 속인들의 몽상이다.

선계의 모습에 바둑이 가끔 등장하는 것이 내게는 위안일까?

3월의 팔공산에 같이 갔던 처. 지난해 애마 그랜저를 팔고 마티즈로 바꿔 고속도로의 먼 길은 위험할 듯싶었어도 나를 위하여 원행에 따라나선 처. 산장2층의 작은 방 전기장판에서 오그리고 잤어도 고생을 마다않는 마음이 내 가슴을 저민다.

7월의 고성엔 집안행사로 동행을 못했지만 선비무도님 내외와 같이 올라오는 버스터미널에 나와 맞아주던 처.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그 마음이 내 가슴을 저민다.

11월의 공주엔 몸살로 여의치 않자 터미널에 전화해 요금과 시간을 문의해 알려주고는 혼자 길을 나서진 않으려는 내 마음을 읽고 무리하며 원행을 같이 떠난 처. 마음씀씀이에 가슴이 저민다.

바둑이 원망스러울 것 같은데도 내가 선택한 내가 가려는 길은 막지 않는 처. 그래서 더욱 가슴이 저민다.

선녀와 혼인은 신분의 상승을 바라는 선계에 속하고 싶은 속인의 욕망이겠지.

아이 셋을 낳기 전에는 날개옷을 꼭꼭 숨겨두라는 사슴의 충고를 어기고 둘을 낳자 옷을 보여준 것은 나름 나무꾼의 신뢰와 사랑과 확신의 발로였을까?

날개옷을 입어보는 척 하던 선녀는 아이 둘을 양팔에 안고 하늘로 올라갔다.

가난과 고부간의 갈등, 속세의 생활이 싫어서였을까?

나무꾼은 희망이 없어보여서 이었을까?

같은 이야기도 무수한 인간들은 여러 가지로 해석하고 파악한다.

날개옷을 숨긴 것은 폭력이고 나무꾼은 전쟁이 나 군인으로 끌려가고 생계를 위해 남편을 찾기 위해 세상에 나온 선녀는 군인들에 강간당하고 창녀로 생계를 잇는다. 재회한 남편은 자신의 작은 폭력이 여인의 삶을 짓밟은 것을 깨닫고 후회하지만, 거대한 폭력 전쟁 앞에선 작은 폭력은 가정을 지키려는 생명력으로 치환된다. 어린이들의 동화로만 여겼는데 나 자신의 세월일수도 있구나 싶어 가슴이 저민다.

“야심은 실패한 자의 도피처“ 라고 오스카 와일드는 말했다지만 지난 10년 의료봉사단체를 이끌며 절명의 위기인 지금도 꿈을 버리지 못하고 버티는 것은 도망자 일까?

12월의 수원모임은 열흘 남았다.

이번엔 같이 가자고 말할 용기가 없다. 언제라고 예기하지도 않았다.

혼자서 가고 싶지도 않다.

날개옷을 돌려주어야 하는 걸까?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기록으로 남을 2008년이 저물어 가는데

2008년은 가장 화려했던 바둑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팔공산, 고성, 태백, 공주.

이제 마지막 남은 수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지금.

나작 식구들을 마음속에 그려보며 온기를 잃지 않으려 한다.

이른아침 민식아우 박 詩人의 글을 보며 그를 그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