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어찜

"무슨 예기를 그렇게 다정하게 하세요?"
고교 12년 선배이신 기원 원장님과 난로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감리단 단장인 김사장이 묻는다.
"상담을 받을일이 있어서."
"상담은 내가 해 줄테니 갑시다."

이끌려 나가 자리 잡은곳은 전라도 풍 음식들을 맛갈스럽게 하는 지하1층의 저렴한 포차집이다.

"선배님은 넥타이를 메고 정시에 출근하는 직장생활은 평생 한 번도 안 해보셨데요."
"전혀 다른 각도의 많은 풍상을 겪은 경험으로 조언을 해 주시니 큰 도움이 되곤해요."

술집도 해 보시고 식당도 운영했었다는 12년 년상의 선배는 이미 머리는 하얀 백발이시다.
그분의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절이 2006, 7년 이셨다는데 바로 재작년 아닌가?
재작년 가을에 빛나리가 운영하던 기원이 문을 닫아 손님들이 그때부터 전부 옮겨 노인 몇분만 훌라를 하고있던 선배의 기원이 살아나게 된 것인가보다.

당시 직업도 없던 늦둥이 막내아들과 부인 셋이서 집에 있으려니 무언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 같아 새벽에 신문배달을 하니 19만원을 주더라는 말씀과 아파트 경비를 신청하니 60넘은 이들은 안 받아주어 지하철을 이용하는 노인택배등 여러가지를 응해도 나이로 안되고 막상 일을 하면 용돈도 안될정도의 일 밖에 없더라는 말씀. 기원운영이 평소 남는것이 없으시다더니 그나마 지금은 안정과 위안을 느끼고 계시는 것인가 보다.

"오늘 아침 목사님께 상담을 청하여 말씀을 드려보았습니다."
"지난 10년 해 오던 해외의료봉사단이 이젠 너무 어려워 접고 생계를 위해 복직을 신청했는데 교회에서 복지관을 병설설립하여 제가 해 오던 복지관련일을 지속하는 것이 가능할지 안 되더라도 한번 말씀을 드려봐야 제 남은여생에 후회라도 없을것 같아서 말씀드리는 것 입니다. 라고 여쭈니 기대이상으로 흔쾌히 자신도 노인복지분야에 관심이 많아 공부를 하고있었는데 한 번 해보자 라고 말씀을 하시며 허락을 얻었습니다."

신앙적판단과 세상의 잣대 중 최근 나의 판단이 부족한 부분이 많은듯 싶어 자문을 구하니 선배는 말씀하신다.

"지금 복직을 신청하고 허락을 받았다며 다시 복지일을 하면 혹 나중에 잘 안되 다시 병원에 부탁하면 그때는 또 들어주겠느냐?"
"그때는 안 되겠지요."
"복지일은 나중에도 또 기회가 되면 할 수 있는일 아니겠느냐."
"집에 생활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지."
선배의 조언을 듣던 중 감리 김사장과 나선 것이다.

"350명 수용하는 복지요양원 원장이 장로인데 월급이 30만원 이던데."
"물론 실무는 사무국장인지 젊은이가 있었는데 그도 힘들어 떠나던데."
"대형교회에서 맡아 운영을 하는데 소유는 서울시로 되어있어 건축과 감리를 내가 해서 잘 알지."
"종교단체는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며 월급도 안 주는 자원봉사자들을 많이 활용하던데."
"나는 그런건 봉사라고 생각하지 않아. 교세를 확장하고 사업일 뿐이지."

예리한 말씀에 놀랍다. 나도 사실 다 알고있는 부분들이다. 기존 복지관들도 대학 졸업한 사회복지사들을 80만원의 박봉으로 희생을 강요하며 유치원의 유아복지사들도 100만원미만의 저임에 12시간 이상 노동이다.

기술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도 세상물정엔 이리 밝으신가보다.

먹음직스러운 병어찜은 보기에도 좋지만 정말 맛깔스럽다.
"나는 이 집 밥이 좋아." 하시기에 다시 유심히 보며 먹으니 쌀이 찰지고 밥맛도 상등이다.
"내 집사람도 교회 권사지만 나는 일요일 교회에서 부인들이 밥짓고 봉사하는것들이 그런것들은 봉사가 아니라고 생각해."
"복직을 당연히 해야지. 고난과 신앙은 성직자의 것이고 성도들은 가정에 충실하고 행복해야지."

소주를 입에 털어넣고 병어찜맛을 음미한다.

지난 10년을 지켜온 나의 신념과 노력은 이제 혼돈속에서 허우적대는 것인가?

바둑을 두며 시간이 조금 더 지나가기를 기다릴 뿐이다.
지난 1년을 기다리기만 하는 내 모습에 실망한 처가 다른모습으로 달라졌을때 전화를 달라던 이야기를 아직도 나는 절실히 느끼지 못하여 기다리는가?

"나 때문에 다시 병원에 취직하지는 말아."

감리 김단장과 기원원장이신 선배, 두 분의 조언은 내 평생을 관통해 온 바둑과 바둑인들의 애정어린 진심이겠지. 처의 이야기는 무슨 뜻일까?

아직도 모르겠다. 오늘도 바둑을 두며 그저 시간이 더 흐르기를 기다려야겠다. 정말 아픈 시간들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