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화창한 날씨를 보니 일기예보는 저녁에 비라고 하지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였다 해도 천기를 누설함에 완벽할 수가 있을까.

스마트 폰으로 몇 번을 검색했으나 하늘을 쳐다보니 도시 비는 올 것 같지 않다

사실 오든 말든 해가 시뻘겋게 떠있는데 어제 비 맞은 애마를 이대로 끌고 다닐 수도 없다

그래도 이 분야엔 프론데 마부와 애마의 코디가 맞아야지.

하자. 아니야. 하자. 됐어.

갈등하는 사이 차는 이미 셀프세차장 입구다.

유리와 흙이라도 닦아 낼 요량으로 시작하지만 늘 손톱 발톱 다 후벼 파고서야 일어선다.

매를 벌어요. 흥부는 볼에 밥풀 데기라도 붙여 오건만........

무심한 사람과 묵묵한 사람이 스쳐가고 조금 애살스런 사람을 만나면 한마디 인사 듣는다.

“차를 깨끗하게 해 놓으시니 기분이 참 좋네요. 부지런하신가 봐요.”

“아…….네. 조금 신경 쓰는 편이지요. 손님 같은 분을 만나면 인사도 듣고요.”

“자네는 차 닦다 돈 언제 벌어. 예보에 비 온다잖아.”

“아. 올 때 오더라도 어저께 엉망이 된 차를 어떻게 그냥 다녀요.”

“그보다도.”

“뭐.”

“연료가 많이 먹잖아요.”

“에라이.”

승강장에서 만난 아는 형님은 기가 찬 듯 엉덩이를 걷어차는 시늉을 하고 돌아서 버린다.

“조심해. “

“네. 형님도요.”

그렇게 화창하던 날씨가 몇 시간 만에 화사한 얼굴에 기미가 꾸역꾸역 보이는 가 했더니

결국은 쏟아 붓는다

(젠장. 결국 헛고생 시켰구먼)

저녁때도 다가오고 컨디션 조절도 밸런스가 맞지 않고 이런 날이면 소주 한잔 댕기는데.

세차할 때보다 갈등이 더 심해졌다

(하루 늦게 태어난 걸로 하고 한잔해. 지랄은. 오늘은 가면 다시 오지 않아.)

잠시 갈등하는데 우렁각시의 전화가 들어온다.

앗싸. 내가 궁상떨기 전에 먼저 벨이 울렸으니 희망적이다.

“비가 와서 어떻게 하지.”

“그러게요. 지금 갈등 중입니다. 낼모레 결제니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하고…….”

최대한 허스키한 목소리로 궁상을 떨어본다.

(자기 컨디션도 안 좋다며 오늘 같은 날 무리하지 말고 들어 와 술상 봐 놀게)

로또 당첨과 비슷한 확률의 바램이다

“응. 수고해 조심하고.”

빌어먹을. 어련하시겠습니까.

할 수없이 조금 더 버티기로 하고 대기모드로 전환했다

빗방울 떨어지는 거리로…….

김현식은 오늘 같은 날 붓 하나를 들고 나와 수채화를 그렸었는데 나는 뭐야.

괜스레 차창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울적해지고 서글퍼지는데

딩동.

동화사에서 콜이 떨어졌다.

그래도 동화사라면 신도나 스님일 확률이 높고 거리도 있으니 괜찮은 코스다

마음을 추스르고 심기일전을 외치며 빗속을 달렸다

그런데 가면서 모니터를 확인하니 행선지에서 눈길이 멈춘다.

염불암.

염불암이라……. 염불암이 어디 있지. 귀에 익은 암잔데. 염불암 최불암 염불........

순간 나는 화들짝 놀랐다

아이고.

몇 년 전 산사기행 때 차를 몰고 올랐다 주지스님에게 혼났던 암자다

밭에서 울력하던 스님이

“차를 몰고 예까지 오르는 게 순례야 최소한 여기까지는 걸어와야지.”

동화사 부속암자 중에 젤 꼭대기에 위치한 염불암.

가파른 오르막 꼬불꼬불 비탈산길 십리를 이 비 오는 날 그것도 한밤중에.

갑자기 하체에 힘이 빠지고 오만가지 상념들이 몰려와 주체할 수 없다

오르는 것도 문제요 그 으슥한 길을 혼자 내려오는 것 또한 내키지 않는 날이다

(아까 마쳐야 했는데)

후회막급하고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하는가에 골몰한다.

일단 취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본부의 문책에 악천후를 핑계되거나 적당한 거짓말을 해야 한다.

어느 정도 환경은 된다.

그러나 단체의 신용도가 떨어질 것이고 나는 한동안 가책을 받아야 한다.

평소의 생활로는 가당치 않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은 죽어라고 가기 싫다.

가. 말아. 가. 말아..................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갈등하면서 오르는데 갑자기 벨소리에 놀라 전화기를 떨어뜨렸다

근데 이건 또 뭔가. 하필이면 손이 닿지 않는 구석으로 달아나 할 수 없이 차를 세웠다

아......... 참 가지가지 한다.

“처사님 고맙소.”

“스님 고맙긴요. 하지만 사실 걱정입니다.”

“그러게요. 일단 가는데 까지 가봅시다.”

“네”

결국은 산을 오르기로 하였다

“스님 어쩌시다 오늘 같은 날 이 시간에 암자로 오르십니까.”

“큰 절에 공양하고 나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미안하게 됐소.”

“아닙니다. 이것도 오늘의 제 업 닦기겠죠.”

“하하하 처사님 말에 갑자기 가슴이 후련해지네요. 어이쿠.”

스님이 웃다가 갑자기 비명을 지른다.

급커브 3곳의 난코스 중 제 1지점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초행엔 한 번에 돌아갈 수 없는 곳이지만 길을 익혀 아는지라 시도를 했다가 실패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비에 실려 온 마사토가 빙판길을 방불케 하는데 헛바퀴만 돌고 전진할 수 없다

난감한건 탄력으로 올라가려고 한쪽으로 바짝 붙였더니 백을 하려고 해도 각도가 없는 것이다

1미터도 안 되는 공간 시야도 없는 곳에서 깔짝거리며 차를 바로 세우는데 10여분이 걸렸다

안보이니 내려서 확인하기를 수차례.

그리고 다시 아래로 내려가 탄력을 이용해 무사히 올랐더니

“허허 처사님 보통 아니시군요.”

“운전 실력이요.”

“그것도 그렇지만 대개 이런 상황이면 당황하거나 화를 낼 건데.”

“저 소인입니다. 너무 화가 나서 그럴 수도 있잖아요. 스님. 하하하”

“하여간 고맙소. 나무아미타불.”

(사실이거든요. 스님. 저도 나무아미타불입니다요.)

첫 고비는 넘겼지만 비탈길에 어둡고 커브와 언덕이 많아 자칫하면 개울로 쳐 박히기 쉽고

아니면 열길 낭떠러지로 자유낙하하기 십상이다.

말 그대로 꼬불꼬불 울퉁불퉁 우여곡절 끝에 두 번째 급커브에 도달했는데 중간쯤이다

다시 미끄러지기를 수차례 차에서 내려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이번엔 스님도 내렸다

“이번이 더 어렵네요. 스님.”

“음.”

“잘을 모르지만 이리저리해서 아까처럼 한 번해보시죠.”

“그게 말처럼 리어카 돌리 듯 쉽지가 않아요. 스님.”

“그럼 어떻게 하죠. 아직 길은 멀고…….”

“여기서 가시기엔 좀 그렇죠. 잠깐 비켜서 계세요. 다시 함 해봅시다.”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일단 자세를 잡는데 성공했다

두 사람은 이미 반쯤 젖은 상태고 사실 그 자리에서는 차를 돌릴 수도 없으니

이젠 나도 올라가야만 했다 세 번째 난관 앞에 유일한 공간이 있다

차 무게를 줄이기 위해 스님을 하차시키고 탄력을 받아 치받아 올렸다

다행히 가까스로 올랐지만 세울 수 없어 안전한 곳까지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저 언덕아래서 스님이 헐떡거리며 올라오시는데 기다릴 수밖에.참 돈 벌기 어렵다.

막간을 틈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잠시 생각에 젖었다가 스님의 인기척에 얼른 웅덩이 물에 담배를 끄는데.

“괜찮소. 피울만해요. 한 대 피우고 갑시다.”

“아닙니다. 다 피웠습니다. 가시죠.”

그렇게 마지막 오르막길에 다다랐다

“아. 참 힘들게 오네요.”

“그래요 고생 했습니다.”

“아직 마지막 난코스가 남았는데 끝이 아니지요. 근데…….”

“됐습니다. 여기까지도 너무 고생 많았어요. 이젠 제가 걸어서 가도 됩니다.”

(아이고 스님 성불하십시오)

속으로 짧은 시간에 백 팔 배를 올렸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스님. 사실 여긴 거의 불가능 할 것 같았습니다.”

“한 5분 거리지만 날이 이래서…….”

(그러면 어떻게 함 올라가 보실까요.) 라고 했다면 아마 돌아버렸을 거다.

요금 15000원에 5천원 울력비로 얹어 20000원을 받아 들었지만 그 열배는 힘들었다.

서로 합장하고 돌아섰지만 언뜻 차에 오르기가 내키지 않는다.

조심해서 내려가면 되는 것 같지만 그것도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오르막은 오르막대로 내리막은 내리막대로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게 큰 난관이다

그리고 으스스하다.

음악을 크게 틀고 시야가 안 좋지만 실내등을 켜고 라이트를 상향으로 켰다

가자. 안 가고 배기남.

조금 내려왔나.

주위가 너무 조용하다 사실 물소리 바람소리 빗소리 밖에 없는 산중이니 그럴 수밖에

그러고 보니 음악이 안 들렸다. 분명히 크게 틀고 내려왔는데.

그러나 그것보다 멀리 흘끗 한 것이 보였다 사라진다.

뭔데.........

얼른 염주를 들고 관세음보살을 외치며 굴렸다

잠시 있으니 아무것도 안보여 다시 차를 움직이니 또 다시 하얀 물체가 나무에서 나왔다

그리고 이내 사라진다.

저렇게 내 시선을 뺏고 누군가 슬며시 뒷좌석에....

햐햐햐햐.

룸 밀러에 곁눈질한 뒷좌석엔 다행히 아무도 없다. 할 수 없이 크락션을 힘차게 울렸다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피워 물고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데 다시 그 물체가 나타났다

아이고. 스님.

그 물체는 다름 아닌 암자로 오르는 다른 스님이었고 좁은 길에 차가 내려오니 비켜섰다가

멈춰서니 나오곤 했는데 나는 반대로 했으니.

내가 오래 서 있으니 스님도 비로소 나타나신 것이다

차를 돌릴 수 없어 인사만 했는데 스님은 반가웠다고 했으나 나는 간 떨어질 뻔했다

콰콰콰광.

엄마야.

이번에는 진짜 간이 떨어졌거나 위치 이동했을 것 같다

거의 다 내려왔나 싶어 안도의 한숨을 돌리는데 굉음이 들리는 것이다

끼이~익.

차는 이상 없고 죽었든 음악이 갑자기 괴성을 질러 혼비백산 했는데 그렇다면 중간에선.

글을 쓰면서 알았는데 와이파이 탓이었으리라 짐작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저러나 비 오는 날 산중에서 두 스님과 그린 수채화는 정말이지 지옥도 같은 느낌이다.
절을 나서며 오를 때 스님을 배웅하며 나에게 길이 험하니 조심해서 잘 모시라던 매표원
잠시 눈이 마추친 희미한 불빛아래 오를 때와 다른 그의 무심한 눈길마저 음산했다.

(녀석 명이 길구먼...) 하는 듯.  

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