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은 지리산에 갔다왔습니다.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어서였습니다. 20살때부터 바둑을 같이 두어오는 친구들이었는데

전국에 흩어져 살다가 얼굴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얼마전 이창호 싸인 바둑판을 선물 받게 되었습니다.

정확하게는 응모해서 당첨이 된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걸 자랑할 때가 없다는 것입니다.

주변에 바둑두는 사람이 없는데 어디 가서 자랑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몇달간 배달온 박스에 그대로 넣어두고 이번 모임만을 기다리면서 있었던 것이죠.

혼자 한 두번 바둑판을 꺼내서 잠시 잠시 보기만 하면서 말입니다.

그사이에 바둑판 사건이 이어져오고 있었던 터라...^^

저에게는 바둑판의 가치가 남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귀한 바둑판이죠. 돈으로 환산하는 누를 끼치면 큰 금액은 아니겠지만

바둑팬인 저에게는 사실 굉장한 돈을 줘도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어디가서 어떻게 이창호 9단의 사인을 받겠으며.. 절레절레... 안될 일이지요...

그래서 드디어 모임날....

소형승용차에 바둑판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번 모임의 담당이라 음식물 넣은 아이스박스 2개랑 마트에서 장본거 등...

짐이 엄청 많았습니다. 바둑판 덕분에 여행용 가방은 트렁크에 들어가지 못하고

운전석 옆자리에서 한명 몫을 해야했습니다.

이때 잠시 마누라님의 눈치를 봅니다. 사실 여행가면서 그 큰 바둑판을 들고 간다는데

좋아할 마누라가 있겠습니까? 차가 짐으로 좁아 터져나가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평소때 바둑판이 귀하고 좋은 거라고 자랑을 많이 한 탓인지.. 아무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평소 제가 바둑으로 과하게 미쳐서 살지 않은 탓도 있겠지요.

그래서 산넘고 물건너 몇개의 시와 군, 도를 넘어 모임 장소에 갔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이 오는 족족 자랑을 했습니다.

^^ 일견 우와~하는 반응은 있었지만, 제가 좋아하는 만큼 좋아하지는 않더군요.

그리고 바둑판은 금새 아기들의 알까기 장소가 되어버렸습니다.

친구들의 애가 모두 7세이하라... 아직 알까기를 못하는 애기들도 있더군요.

그래도 제 아이는 5살인데 알까기는 가르쳐 뒀는데... 말입니다...

혹시 나중에 바둑에 관심이 있게 될까 싶어서 말입니다.

그 알까기판이 되어 버린 바둑판으로 말씀 드릴 것 같으면 ㅠㅠ

흑흑... 제가 기스 하나 내지 않을라고 박스에 스티로폼도 그대로두고

보관하고 있으며... 차에 실어올 때도 담요로 둘둘 말아서... 애지중지 들고 왔을뿐 아니라..

그때까지 바둑은 개시도 못한 이창호 싸인 바둑판인데...

주변에 바둑둘 사람이 없어서... 오늘만을 목 빠지게 기다린 바둑판인데... ㅠㅠ

말입니다.

그런데, 기분은 괜찮더군요...

천진난만한 애기들이 비록 알까기지만 바둑판 위에서 바둑돌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처럼 환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관조의 행복감은 청평조사의 관조와 비견될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애들이 잠든 시각....

바둑판은 본연의 생명을 발하며 한 판의 대국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