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일기 127, Shower in Hospital

여느 때 처럼 4시에 눈이 떠지지만 다시 잠을 청해 일어나니 5:30이다.

할 일도 없고 긴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습관적으로 일어나 병원으로 향한다. 6:30에 지하철을 탔어도 빈자리는 거의 없다. 노동자들에게는 노는 날이 적겠지.

M역에서 내려 평소처럼 담배를 한 대 문다. 공휴일이니 마을버스들은 그나마 더 안 다니겠지 싶어 천천히 기다리려는데 웬일인지 병원 셔틀 미니버스가 다가온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타니 손님은 나 하나뿐인데 기사는 병원 직원들만 타는 겁니다. 한다. 녜. 직원입니다.

늙수구레 하니 병원방문 환자나 보호자로 알았을까? 마침 배지까지 달고 있었는데.

공휴일 아침 일찍 사무실에 들어서니 직원들은 다리를 의자위에 뻗은 편한 자세로 쉬다 내가 들어서니 모두 현장으로 올라간다.

7시가 넘었으니 아무도 없을 줄 알고 오늘은 모처럼 처음 샤워장엘 가 보아야지 싶었는데 직원들이 여럿이라 그럼 그렇지 나는 한 치 앞을 내다 볼 줄 모르지 속으로 생각한다.

아무도 없어 혼자 샤워장으로 가 본다.

병원생활 10여년이 넘었지만 병원에서 샤워장은 처음이다.

S의료원에선 지하 3층에 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멀리 떨어져 있고 시설도 안좋다 들어 가지 못했었다. 감염관리 측면이나 하루 종일 땀 흘리며 일한 몸을 씻기 위해선 샤워를 해야 하지만 감히 엄두를 내지 못 했었다.

C의료원에선 미화원들은 전용 샤워장이 있었지만 우린 없었다. 중환자실 보호자실 앞에 한 사람이 샤워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있었지만 그 앞엔 보안직원이 책상을 놓고 앉아 있어 감히 갈 생각을 못 했었다.

병원생활 10여년에 처음 가보는 샤워장.

생각보다 깔끔하고 6명 정도 동시에 이용 할 수 있는 시설이다. 찜질방처럼 개인 옷장에 비밀번호까지 입력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더운 물에 샤워를 하며 생각해 본다. 평소 목욕탕 한 번 가려고 샴프와 칫솔 면도기를 들고 나섰다가도 기원에서 구경만 하다 돈이 아까워 목욕탕은 거의 간 적이 없다. 목욕비가 6천원에 찜 복 값이 2천원인지 8천원은 아깝다는 생각이었다.

대학시절 지리산 대원사에서 공부할 때 새벽에 목욕을 하려면 여스님들이 있는 절이지만 커다란 가마솥에 물을 끓여주면 이용했던 기억이다. 추운 날씨에 추위 속에서도 더운 김과 함께 행여 누가 볼까 서둘러 목욕하던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당시 동네 목욕탕은 800원이었던 것이 이상하게도 잊혀지지 않는다. 목욕탕집 아들이 같은 대학 국문과였는데 그는 문리대 대표로 총학생회장 선거에 나왔고 나는 정경대 대표였었지.

누가되던 서로 회장과 총무 자리를 나누기로 담합했었지.

병원생활 10여년에 처음 샤워장을 이용했으니 소원성취를 한 것일까?

좌우지간 깔끔한 기분이다. 사무실에서 혼자 6월 달과 이번 5월 15일 이후의 근무 표를 점검한다. 이렇게 바꾸면 상당액 절약이 되는데.

수시로 전화가 와선 다그치는 본사의 질책을 듣지 않으려면 이코노믹한 운영을 해야 하는데.

절약을 하는 것은 결국 직원들에게 지불될 임금이 나가지 않게 되는 것인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더 생각해 보기로 한다.

20명이 할 수 있는 일을 25명이 한다면 그것도 잘 못된 일이긴 한데 최저임금을 받는 직원들에게 그나마 작은 여유마저 앗아야 하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

기분 좋게 모처럼 깔끔하게 처음 병원에서 샤워까지 했는데 왜 답이 안 나올까?

두 시 쯤 병원을 나선다.

이브닝 근무를 나와야 하는 직원 한 명이 아직 안 나왔다.

내가 있으면 더 미안해 할 까 싶어 미리 내가 나선다.

병원 정문 앞 버스 정류장에서 그를 만난다.

담배를 피러 저 쪽으로 가는 나를 향하기에 한 대 피고 가시지 한다.

아뇨 빨리 가야죠. 한다. 건너편 주차장 방향 쪽에도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것을 나만 아직 몰랐다.

4월에 새로 온 이곳에서 딴엔 열심히 일 하려고 6시경엔 나와 저녁 6시 까지 그리고 토요일엔 계속 나왔다.

어제 본사에서 전화가 와 오버타임을 하지 말란다. 지출되는 작은 돈이 아쉬워 큰 돈의 향배는 짐작조차 못한다. 대학 때 배운 경영학 교과서의 사례가 기억된다. 경비지출을 아낀다고 복사지 이면지 활용을 하자면서도 원자력 발전소 건설비가 몇 억불 인 것은 깍자는 사람이 없다더니. 현장에서 운영의 묘를 살리며 신뢰를 얻으면 몇 억도 더 수입을 만들 수 있지만 작은 돈을 아낀다는 것이 현장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젊은 관리자들은 탁상공론에만 밝은 제똑똑이 일 뿐이지 헛똑똑이 들이다.

그런들 내가 무엇을 이야기 하랴?

이제 나는 은퇴할 때가 되 가는 것이고 젊은 그들은 제들 하던대로 할 뿐이겠지.

수하 직원들에겐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그들의 이익을 위해 잔돈 푼이라도 도움이 되게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일까? 본사를 위해 이코노믹하게 임금지급을 최소화 해야 하는 것일까?

깔끔하게 목욕을 했어도 답이 안 나오니 샤워조차 못 했더라면 비몽사몽이었을까?

내가 서 있는 현주소는 어디인가?

공휴일에 쉬라고 해도 쉴수도 없이 현장에서 샤워장에서 만족을 하는 나인가?

갈 곳이 없어 벌어 놓은 것이 없어 현장에 매달리는 것인가?

그녀가 바쁘다고 해 마음 놓을 곳이 없어 현장을 찾는 것일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