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일기142, 과메기

화요일 오후 네 다섯 시의 시간인데 기원은 몇 사람 없이 썰렁하다. 폭탄 최와 심 둘이 한켠에서 대국중이고 편 바둑을 할 사람들도 없다. 오락실을 운영하는 젊은 조폭 일명 전투사범만 곁에서 관전중이다.

연말 명절 밑이어 귀향들을 한 것인가? 이상하군!

작은 전기 곤로 옆에 정 원장은 턱을 손에 괸 채 잠들어 있고 범수는 특유의 포즈로 누워 눈을 감고 있는데 잠이 오지 않는 것 같다.

의자 둘을 붙여 그 속에 쏙 잠들어 있는 모습은 요람속의 아기 같기도 하고 무앤지 불쌍한 느낌이 항상 들었다.

며칠 만에 들른 기원은 썰렁하긴 해도 내 마음은 편안하여 식구들과 주말심야에 찜질방이라도 찾은 듯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다. 강남역 인근의 친구가 하는 술집 우드스톡에 남은 양주를 마시러 갈 때의 편안함도 어쩌다 한 번의 드문 일일 뿐이고 그곳보다도 이곳이 내게는 제자리일까?

강 원장, 장고 이 기사, 인테리어 이사장, 기원의 식객 안 실장, 황 사범 일행이 약속이나 한 듯 같이 들어선다. 손마다 들은 봉투에는 붕어빵이다. 빛나리가 최근 시작한 small business 의 시제품이다. 3개 천원 인가본데 수십 개는 싸 오는 것 같다. 사람 좋은 빛나리 정 사장은 기원을 하다 그만두곤 보쌈집 오토바이를 하다 힘들어 그만두고 이제 궁여지책으로 붕어빵을 시작하였는데 단속이 걱정이다. 설렁탕집 앞 젊은 부인이 하던 붕어빵은 권리금 5천이었는데 구청에서 자리를 없애느라 화단을 조성하곤 그래도 계속하자 트럭으로 기계를 실어가 버렸었다.

빛나리의 사업장에 여럿이 다 같이 들렸다 오는 것인가 보다.

편 바둑을 시작하며 붕어빵에 열심히 손이 간다.

운이 좋은 날인지 세 판을 연속 이기곤 쉰다.

최근 부동산 일을 그만두어 쉬던 황 사범은 룸살롱 유 사장에게 취업을 부탁했었는지 오늘 밤 부터라도 빨리 가보라며 받은 전화번호를 들고 나선다.

범수는 냉장고에서 신문에 둘둘만 큼지막한 물건을 꺼내 씻어 껍질을 벗기기 시작한다. 포항의 형이 보냈다는 과메기. 꽁치처럼 생긴 적당히 말려 얼린 껍질을 일일이 벗기니 손에는 기름투성이이다. 미역과 마늘, 초고추장, 쪽파, 애 배추, 막걸리를 미리 준비했었는지 빛나리의 차에서 가져온다. 막걸리는 평소 즐기지 않아 입에 대지 않고 쌈을 싸니 평소 쉽게 접하지 못하던 별미이다. 기원 술자리에는 거의 참여치 않았는데 오늘은 쌈을 예닐곱번 먹는다.

범수가 기원 벗들을 위해 마련한 것이어 정이 간다. 그와는 작년에 가끔 식사도 하고 양주도 한잔 하곤 하였지. 처와 같이 호프집에 간적도 있었지.

자신은 남에게 여간해선 형님소리를 안 한다며 내게는 형님이라 부른다던 그는 내심 본심이었나 보다.

말수적은, 평소 다정한 양 하지 못해도 한 번 뱉은 말은 지키고 한 번 세운 마음은 지켜나가는 것이 그의 본심인가보다.

껍질을 벗겨 가위로 잘라 접시에 놓으니 엄청난 양인데 기원식구들이 많아서인지 동이 났다.

다섯 통의 막걸리는 겨우 두 통만 비웠는데.

어제는 눈이 온다고 택시 정 팔 단이 횟집에서 한잔 사 과메기를 먹었지만 그 맛은 이것과 비교도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음식점에선 일인분에 15,000~17,000 인데 맛과 양이 비교가 안 된단다. 어제는 다 같이 모처럼 노래방까지 갔다지.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 했을 것 같은 과메기. 적당히 쫀득쫀득하고 비릿한 기름이 배어나는 과메기를 처와 둘이 음식점에서 먹었으면 두 세 점 에 그치고 소주만 들었을 것 같은데.

범수의 손길과 마음이 담긴 과메기여서 기원의 오랜 벗들과 같이 나누는 것이어서 그리 입맛이 당긴 것일까?

옆에 서서 부지런히 먹는 안 실장은 기원에서 숙식을 하느라 씻지를 못해서인지 몸에서 눅눅한 냄새가 난다.

그래 그래도 이게 사람 사는 인정이겠지.

역시 내게는 이곳이 편안한 곳이군.

지난 며칠 사무실에서 혼자 고심하던 만사를 모두 잊는다.

그래 내 인생에선 어려운 고비마다 바둑이 큰 위안이었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