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 奉事 12, 손길

2008년 5월에서 8월까지 11편을 써 놓은 후 오랜만에 이어봅니다.

당시 광장을 시끄럽게 하던 원융무애와 혼탁에 분기탱천하여 써 보던 것들이 이젠 남이 아닌 제 자신에게 써 보고 싶었던 것들을 기록해 봅니다.

2009년 2월 병원에 다시 복직하며 그 동안 해오던 해외봉사단 일을 접었고 그 후 만 2년여 강남의 C의료원에 일하다 이제 지난 4월 경기도 S대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여러 가지 변화도 많았고 아직 정리가 안 된 일도 많지만 정년퇴직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젠 정말 자신의 생각들을 해보고 남겨보아야겠구나 싶습니다.

손길,

2011/5/29

세탁소에서 가져 온 빨래봉투를 열고 말린 수건들을 꺼낸다.

작은 봉투엔 세수수건만 차곡차곡 개어 넣었다.

큰 봉투엔 속옷과 양말, 추리닝 티셔츠 등 여러 가지를 역시 차곡차곡 개었다.

와이셔츠는 옷걸이에 걸어 비닐을 씌워주신다.

작은 정성들에 감사하며 손길이 간 옷들을 소중스레 옷장에 넣어놓는다.

숙소 문을 열고 들어오면 습관적으로 쓰레기통을 쳐다본다.

깨끗하게 비워져 있으면 청소를 하시고 간 것이다.

싱크대에 설거지도 깨끗하게 되어있겠지.

탁자도 항상 닦아놓고 탁자 위의 물건들은 정돈되어있다.

작은 손길에 감사한 마음이며 따뜻함이 느껴진다.

당연한 것들이지만 감사하게 느껴지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내 마음이 여려서일까? 게을러서일까? 세탁비를 지불하고 청소비를 지불하는 것이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손길이 느껴지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주말이면 용인에 가 세탁물을 바꿔오던 것을 불편해 하여 숙소근처의 단골집에 다시 세탁물을 맡긴다.

가끔 와서 숙소의 청소와 설거지도 해 주던 것을 불편해 하기에 이젠 직접 하려니 하기 싫어서 보다도 변한 현실이 인정하기 싫어 먹지도 않고 닦지도 않고 청소는 손도 대기 싫어 방치하니 사람사는 꼴이 아니다.

보름에 한 번 한 달에 두 번만 청소를 해 주면 6만원을 드리겠다 했는데 너무 더럽고 청소 할 곳이 많았는지 너무 자주 깨끗하게 바꿔주시니 말릴 수도 없었다.

설거지는 부탁도 안 했었는데 그릇 세정액도 큰 것으로 갖다 놓으시곤 싱크대 위 찬장 속까지 몇년만에 다 닦아 놓으셨다.

저녁이면 주로 소주 한 잔에 후라이판 안주를 사용하는데 식용유도 없었더니 큰 것으로 갖다 놓으셨다.

작은 손길에도 쉬 감동하며 평소 항시 배려를 주창하던 내가 원래 받던 손길에서 배척된 것은 나 자신의 업과 행동의 결과이겠지.

주중 일과의 피로를 주말이면 잠만 자며 풀고 평소 반 한끼 따뜻하게 집에서 못 먹던 것을 주말에 밥상에선 편히 반주 한 잔 후 골아 떨어지는 습관이 보기 좋을 린 없겠지.

자업자득일까?

이제 은퇴도 얼마 안 남았는데 벌어 놓은 것도 없이 무사태평하니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은 당연했겠지.

바둑을 두는 것은 경마처럼 노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됐겠지.

작은 손길에 감동하며 작은 손길이라도 남에게 배려하는 것은 나 혼자만이라도 실천하면 되는 것이겠지.

이 곳 숙소에 배어있는 손길의 흔적들은 어떻게 하나?

오로에 들어선 것이 10년이 넘었는데 앞으로 십 년 후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지하철을 이용하는 봉사들을 보면 흰 지팡이 하나만 의지하고도 저리 잘 찾고 용감히 세상에 나서는 것이 경이로운데 눈 뜬 봉사 나는 집도 못 찾는 것인가? 끝.

심 奉事 시리즈 목록:

1. 시작하며       08/5/11

2. 개안           08/5/13 심청전이야기 外

3. 흑인장님가수   08/5/15 레이챨스, 차민수4연승 外

4. 봉사 단청 구경 08/6/10 행가네, 헬렌켈러 外

5. 구닥다리 교수  08/6/11 심리학교수, 헬렌켈러

6. 쇠고기 국       08/6/19  오이디푸스, 카잔차키스

7. 滿花庭(매니아광장) 08/6/22 평론가 유종호, 사문난적

8. 戰 城 南          08/6/24  소설가 김탁환, 이태백
9. 양풍청년          08/7/8
10.영생과 신화      08/8/15
11.올림픽, 바둑     08/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