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 奉事 13, 文弱 (문약)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심정이다.

마음이 심약한 것인지 유약한 것인지, 문약함에 기인 하는지.

조선일보의 Books 지면을 몇 년간 모아놓은 나의 보물이 통째로 없어졌다.

청소를 부탁한 아주머니가 오랜 신문이 답답하여 모두 버렸다.

내가 가진 아주 적은 것 중에 오래된 미제 라이방 안경과 이미 깨져버려 겉은 사라지고 속의 두 인형 영감만 남은 우즈벡의 도자기, 미얀마의 장군이 준 시계, 이외에는 오래되어 누렇게 변한 신문더미가 나의 마음속 제일 큰 재산이었는데.

도자기가 깨져 영감들만 남았을 때도 이렇게 마음 아프지는 않았었는데.

덩치가 큰 이들은 내심 부럽다.

軍 시절 의장대나 헌병대의 사병들은 큰 키와 늘씬한 군복이 다리에 찬 링이 은근히 부럽다.

무식한 놈들 배우지 못해 얼굴에 지성미가 없어 속으로 욕해보지만 식당에서 배식을 받느라 줄서서 그들이 곁에 오면 어쩐지 더 왜소한 느낌이 든다.

문약해서 였겠지.

실컷 그들과 싸워봤다.

공군 헌병대의 곤봉을 든 예닐곱 헌병과 싸워 밤새 영창에 갇혀 보았고

육본 헌병대의 헌병들과 주먹질을 했는지 영창에서 철창에 매달려 악을 써보았다.

이 정도면 문약한 것은 아닐 텐데.

지하철 첫 차의 소란은 매일 똑 같다.

방가방가

할머니들끼리 유행을 안다는 듯이 어울리지 않는 인사를 그리 큰 목소리로 하며 목청들은 왜 그리 크고 무식함은 주변을 압도한다. 예를 알아야 무슨 소용일까? 새벽 일하러 나가는데 즐거우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 씩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터득한 노년들의 지혜일까?

조금 젊은 여인들은 50 전후 되었을까?

씩씩한 모습의 여인은 예전 S의료원 수술 장에서 근무하던 여인이다. 미화는 나이 들어도 짤리지는 않는데 무슨 연유인지 옮겨 나와 같은 병원에서 일하고 있나 보다.

그녀는 멧돼지를 연상시킨다. 장비 같은 외모에 근력으로 다져진 다부진 몸집이다.

지하철에 내리려 문 앞에서 보니 그녀도 길다란 귀걸이를 하고 있다. 역시 여자이군.

지하철역에서 버스정류장으로 오르는 길은 길고 긴 계단이다.

옆 방향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는데 그녀는 곧장 걸어서 오른다.

그 옆의 여인은 우리 사무실 부근을 담당하는 미화이다.

모르고 봤으면 깔끔한 복장의 수수한 차림의 그저 어느 시골학교 여선생으로 보이리라.

버스를 타고 앉아 앞에 앉은 그들의 뒷모습을 비교해 본다.

멧돼지를 연상하던 다부진 여인보다 저켠 여인은 어깨가 한 뼘씩은 더 넓을 듯 하다.

키도 한 두 뼘은 더 큰듯하다. 막장에서 조용히 일하는 저 여인들의 에너지틱에 내 문약한 가슴은 더 작아진다.

7시, 9시 출근 직원들의 조회를 마치고 오후 2시 출근 직원들의 조회를 하는데 미화원은 사무실 입구의 바닥 커피 쏟은 자국을 치워주러 온다. 그녀의 대걸레를 빌려 사무실 안을 닦는다.

“커피자국 닦으려다 미뤘더니 그날 본사 팀장들도 왔잖아. 일은 생각날 때 바로 해야 돼.”

직원들에게 조회를 하다 말고 얘기한다.

내가 문약하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한데.

나보다 훨씬 작은 덩치의 중학만 나왔다는 이는 십 몇 년 째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도기를 굽는 곳 도자기에 그림을 그렸다던 그의 솜씨는 지금도 놀랍다.

십 년을 같이 있으며 술은커녕 커피 한 잔 같이 해 본 적이 없는 사이이다.

막장에서 그저 묵묵히 일하지만 자식얘기와 손주자랑엔 속으로 부럽다.

배운 것 없었어도 그저 평생 열심히 잘 살은 것이겠지.

강남의 C의료원에 있을 때 S의료원 중환자실 미화를 하던 늙은 여인이 같이 있었다.

그녀는 미화의 Pro였었지.

수술장이 밀려 바쁠 땐 중환자실에서 수술을 하기도 하는데 심장수술을 하고나면 바닥은 폭격 당한 듯이 피바다이고 의료소모품 등 쓰레기는 가마로 여러 개 나온다. 5분도 안돼 현장을 말끔히 치워버리는 솜씨에 자신의 일에 프로가 되면 저렇구나 싶었다.

그녀는 절대 과거를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반장이나 감독이 되어 후배들을 가르치고 감독을 하고 많은 봉급과 편 할 수도 있는데.

그녀의 지나온 삶의 축적된 지혜였을까?

이제 지금 나는 무엇을 하는 것일까?

심약하여 근심만 하는 것일까?

文弱(문약)은커녕 글월을 운운할 자격도 없는 터에 어찌 타이핑만 즐길까?

그래 순간을 미루지 말고 닥치는 대로 해보자.

대걸레를 잡고 직원들 앞에서 조회를 하다 말고 밀지 않았던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