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일기 129, 이틀간의 휴가

토요일 일요일 이틀을 연이어 쉬려니 무엇을 해야 하나 만감이 교차한다.

쉬는 방법을 몰랐던 것일까?

티브이를 꺼버린다.

티브이 속에서는 엄마와의 약속을 지킨다며 히말라야로 아비와 함께 등정을 떠나는 젊은 아들의 모습이 나온다.

여러 해 전 하루하루가 힘들 때 이틀만 쉬고 싶었다.

밤 10시 병원의 나이트 근무가 끝나며 계획했던 2일간의 휴가를 떠난다.

동해바다 강릉에 고속버스를 타고가 동해바다를 둘러보고 설악산 까지 이틀간의 휴가를 멋지게 그려보았다. 어렸을 때 기차를 타고 간 강릉은 밤 새 갔었는데 이제 새로 뚤린 고속도로의 강릉까지의 길은 2.5시간 밖에 안 걸린다. 새벽 2시도 안 돼 도착한 터미널에서 황당하다. 경포해변의 횟집 2층에서 2만원을 주고 민박을 한다. 몇 년 전 일이었지.

더 오래된 여러해 전 일이었나?

둘째 밤은 양양의 바닷가 모텔에서 역시 2만원을 주고 잔다.

쓸쓸한 바닷가엔 전국에서 몰려온 관광버스들이 주차되어 있으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침 뉴스에선 동해안에 숭어가 한창이라며 화면에 비춘다.

대포 항 작은 포차에 들어 이른 아침 숭어와 광어를 시킨다. 포효하는 바다 파도 속에 아침 소주를 먹곤 속초의 선배 치과병원에 들려 인사드리며 사진을 찍는다.

택시를 타고 속초에서 설악으로 향한다.

기사는 그 치과원장의 부인이 설악에서 호텔을 한다 일러준다.

쓸쓸한 상가 설악에서 2만원에 여장을 풀고 구멍가게 한켠의 컴에서 여행기를 올린다.

구멍가게 메밀주를 사와 먹곤 이른 오후 잠들어 이틀간의 휴가를 마쳤다.

본사에서 여러 차례 전화가 와 평일 오버타임이나 주말 주휴근무를 하지 말라는 지침에 토요일 하루를 쉬며 내일 일요일은 어떻게 보내야 하나 궁리를 많이도 했다.

이틀간의 휴가는 나의 큰 소원이자 휴식이었었는데 이젠 자주 쉬어야 된다.

매주 토, 일요일 이틀은 어떻게 보내야 할까?

운동복차림으로 기원에 들렸다 관전도 시간낭비인 듯 싶어 길거리로 나선다.

P 병원 뒤편 공원으로 향한다. 어스름한 저녁 아직 해는 걸려있어도 공원 숲에 빛은 가려져 어둑어둑하다.

자리를 잡고 앉아 생각한다.

몇 년 전 이곳에 왔을 때 그 날도 어려운 하루 였었는데.

점심 무렵 기원에 들렸는데 1층 식당 배달 아주머니가 묻지도 않는데 얘기한다.

사장님 방 앞에 사람들이 많던데요.

본능적으로 느끼며 기원을 나서 방으로 향한 것이 아니고 이 곳 공원으로 와 한참을 보내곤 돌아가니 방 안 기물엔 압류딱지가 여러 장 붙어있었다. 세간도 없는데 유일한 온풍기와 싸구려 컴퓨터에 60만원인지 붙여 놓았었지.

이 공원은 그 때 잠시 바람을 피하려 들렸었는데 오늘은 무슨 바람을 피하러 온 것일까?

이제 매 주 이틀씩 어찌 보내야 하는지 연구를 하러 온 것이지.

교회에를 다시 나가볼까?

일요일에는 11시 예배와 2시 반 낮 예배를 보노라면 하루가 지나겠지.

토요일엔 12시 경 전도를 다니다 보면 하루가 빠르겠지.

책을 읽어볼까?

한 달 한 권 읽던 영어 원서를 안 읽은 지도 꽤 오래됐으니 다시 시작할까?

장부답게 정의와 규범을 잊지 않게 져스티스란 요새 유명한 책을 원서로 읽어볼까?

테니스를 치러 동창들 모임에 다시 나갈까? 그 녀석들 잘난 체 하는 꼴이 달갑진 않지만.

공원에서 돌아오는 길은 전철역 큰 길 가로 나온다.

토요일 오후인데도 식당과 커피 점에 손님이 많다.

저리 바쁜 사람들도 많은데 왜 나는 이리 한가할까?

모처럼 한가해지니 왠지 끈 떨어진 연 같은 기분이다.

해외의료봉사단 단장이라며 외국을 한 해에도 여러 차례 드나들며 젊은이들의 향도 노릇을 하고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봉사를 하고 장애아동을 위한 센터 시설 봉사를 하던 나인데.

그동안 열심히 일한다며 오히려 타성에 젖어 현장에만 몰입되어 잊고 살았던 것일까?

현장에만 함몰되어 밖을 보지 못하고 여가에는 기원에서 바둑판만 들여다 보았던 것인가?

초라한 영감의 넋두리로 누리판을 훼손할 것인가?

내일 아침엔 어찌해야 할 까?

새벽에 일어나 병원으로 가 샤워를 할까?

목사님이 놀라게 새벽예배에 가 볼까?

운동화를 신고 먼 산이라도 올라볼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