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일기43, ER(응급실)

A~F Section은 각기 급성, 집중치료, 관찰, 뇌 심혈관, 소아, 경증 등으로 구분된다.
그 중 B Section 은 집중치료로 Main station 앞에 정 중앙에 위치한다.
A구역은 16 Bed, C 구역은 10 Bed이지만 B 는 5 Bed 이다. 그만큼 난이도가 높은 환자들 이어 적은 병상수도 관리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겠지.

B 구역 5번 병상의 의식 없이 벤틸레이터(자동호흡기)와 수많은 인퓨전 펌프에 연결된 환자를 가족들은 수술실로 떠나기 전 환자 머리부위에 고개를 숙인 채 열심히 기도들을 하고 있다. 그 사이로 간호사는 수액라인들을 정리하며 EKG, BP라인들을 떼어내고 있다. 나도 곁에서 포터블 산소에 라인을 연결하며 출발에 이상이 없는지 점검한다.

오래 전 S의료원 ICU(중환자실)에 근무할 때 환자가 EXPIRE(사망)하면 환자병상을 둘러싸고 고인을 추모하는 보호자들의 숫자에 관심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많으면 십 여명이 둘러싸고 추모와 애도를 하는 경우가 있고 어떨 때는 아무도 없던 기억도 있다. 본인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겠지만 왜 고인을 둘러싼 추모 객의 숫자에 관심을 가졌던 것일까? 내가 그 경우에 누가 와서 둘러서 있을까 하는 궁금함과 불안감 이었을까?

B5 환자는 마지막 수술을 시도해 보는 것일까? 의료진의 입장에서 보호자들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병원업무의 전산화로 병원 하면 연상되던 차트 도 없어졌고 X-Ray를 비쳐보는 하얀 형광등 박스도 없어졌다. 부서별로 벽에 의례 붙어있던 환자이름과 증상, 담당의사 이름 등 게시판도 없어졌고 모든 것은 컴퓨터와 노트북 모니터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B5환자의 병명조차 알 수는 없지만 오랜 병원생활의 느낌으론 마지막 가시는 길이 아닌가 싶다.

S의료원과는 조금 다른 시스템으로 시도하기 위해 시험중인 중앙 콜 시스템은 아직 문제점투성이이다. 간부와 관리자들이 부서별 특성과 요청에 대해 파악 대처하느라 바쁜 부서들부터 직접 부딪히느라 몸으로 뛰는 중이다. 1200병상 규모이면 응급실은 주간 근무인원이 두 셋은 되야 하는데 우선 혼자서 버티고 있다. 70의 인원 중 벌써 임상병리와 의료정보 약제부등에 15명이 배치됐다. 55명의 인원은 어떻게 배치되는 것이 최선일까? 쉽지 않은 과제이다.

중고생 정도의 어린 환자는 브롱코(기관지내시경)검사를 다녀온다. 5~6세 정도의 어린 남아는 부모와 ENT(이비인후과)외래에 다녀온다. 안과외래, 뇌파검사, 내시경검사, 치과외래, 이동용 Cart에 누운 여환은 입가에 피가 말라 붙은 채 ER(응급실)내의 X-Ray 와 C/T검사를 기다린다. Angio(혈관조영)실에 다녀오며 투석실로 향하는 환자 두 명. 수십 명의 환자들은 각기 검사를 받으며 기다리며 난리 북새통이다. 입원실이 비기를 기다리며 며칠째 기다리던 환자들은 오늘은 병실로 올라갈 수 있으려나 안달하며 애꿎은 간호사들만 채근이다. 산부인과 병동으로 올라가는 여환의 옆 침대 환자는 저 사람은 늦게 왔는데 왜 빨리 올라가느냐며 따진다.

전에 S의료원에서 중환자실에 5년 국제진료소에 2년을 근무했었지만 응급실은 또 다른 분위기이다. 끊임없이 밀려 닥치는 환자들과 앰블런스, 조용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한참 먼 시장 판 북새통 같다. 이른 아침 기분 좋게 출근하며 오늘도 환자들과 보호자들에게 친절하고 세심한 배려를 해야지 했던 것이 정신 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보면 환자, 보호자들의 끝없는 요구와 부탁 속에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돌리며 신속히 다음 처리해야 할 업무에만 집중한다.

물론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불평이 접수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친절과 예의는 지켜가면서. 3시간의 오버타임을 해서 봉급을 늘리려던 계획도 포기한다. 폭주하는 일 속에 8시간 기본만 채우기도 힘겹다.

어제 그제 주말엔 특근을 오버타임 포함해 신청했다가 이번 주 한 주일을 버티려면 기본시간만 채우고 일찍 퇴근해 쉬어야 버티지 싶어 Over Time하려던 것을 포기했었는데 오늘은 내 건강을 해치지 않고 병원생활에 계속 버티려면 기본시간만 채우는 것도 다행으로 생각해야겠군 싶다. 처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려면 오랜 시간을 버텨야 할 텐데.

앞으론 토요일 하루만 쉬고 일요일에 특근을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태야겠다.
토요일도 근무를 하고 싶지만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은 처와 같이 있고 싶은 작은 욕심은 사치일까?

세 시간을 더 버티지 못한 부끄러운 마음이지만 처의 곁으로 달려가고 싶은 욕심에 문자를 보낸다. 내일 저녁을 같이 하기로 약속하니 마음이 놓인다.
부족한 나를 채워주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처.

일하는 즐거움과 기다리는 즐거움, 내겐 즐거움뿐이지 않은가? 지난 10년을 이어 온 봉사단의 미래도 이제 백척간두에 서 난파직전의 위험을 벗어나 조금씩 새로운 구상이 잡힌다.
즐겁게 견디며 이겨낼 때 그토록 염원하던 꿈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겠지.
처와 함께 보람과 기쁨을 느끼며 나눌 수 있는 ‘행복을 나눠주는 비전’을. 끝.
2009/3/3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