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일기, 신평 상례원

이른 아침 출근준비를 하며 지방에 내려갈 채비를 해야 하나 망설인다.

상가에 가려면 검은색은 아니어도 단색 양복에 넥타이도 무색으로 해야 하는데.

교복처럼 매일 입는 낡은 베이지색 윗도리는 그냥입고 혹시 몰라 넥타이는 매일 똑 같이 매던 좁다란 붉은 색이 아닌 짙은 색을 맨다.

전철 속에서도 계속 망설인다.

비까지 내리는데 초행길에 밤늦게 버스도 끊긴다는데 갈 수 있을까?

적당히 핑계를 대고 가지 말아야지 싶다.

야탑에서 시외버스로 당진까지는 두 시간 사십분이고 거기서 택시로 11,000원 정도란다.

매일아침처럼 총무팀에 일보를 제출할 때 과장에게 묻는다.

협력회사직원도 공가를 인정한다고 어제 들었는데 기간에 제한은 있습니까?

저희 사규엔 6일인데요. (이렇게 오래 허락할 리가 있을려구?)

협력회사 소장이 자리를 비울 땐 총무팀에 보고를 해야 하는 절차가 있나요? (당연히 있겠지.)

국립규정에 6일이고 자리를 비우는 건 적당히 알아서 하라신다.

내심 안 되었으면 싶었는데.

본사에 전화해 묻는다.

어제 확인해 보라했던 위 내용을 보고하고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물어도 확답을 안한다.

책임지거나 경비문제 등을 피하고 싶어서이겠지.

내심 안 된다 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세상사람 들이 모두 약아 자신은 피한다.

언제 출발하시냐며 직원들은 부조를 걷어놓고 당연시하며 묻는다.

반장이나 조장 간부나 같은 조원들이 가야 할 텐데 제들은 안 가려하며 내게 몰으니 속으로 괘씸하기도 하지만 내색을 않고 상가에 전화해 화환이 도착했는지 확인하고 사망진단서 카피 준비됐는지, 현지인들이 교통편을 더 잘 알테니 다시 확인해보라 한다.

오후2시 Evening 조원들이 출근해 부조를 마저 걷은 후 병원을 나서 신평으로 향한다.

지하철을 타고 전차남은 바로 잠든다.

요즘은 너무 피곤해 앉기만 하면 눈이 감긴다.

기원에도 며칠째 가지를 못했다.

바둑 한 판을 두거나 구경하는 것도 심신이 편할 때 일인가보다.

체력이 약해졌는지 마음이 약해졌는지 퇴근 후 숙소에 도착하면 몸을 이기지 못한다.

9시 뉴스조차 보지 못하고 의자에 앉아 잠들기 일쑤이다.

서울 남부터미날에서 출발한 버스는 당진 근처 신평까지 한 시간 이십분 걸린단다.

어제 행정담당이 인터넷과 버스회사 홈피에서 확인한 것보다 상주에게 확인한 것이 반 이상 줄어 그나마 다행이다.


버스 속 돋보기를 끼고 신문을 읽는다.
문득 양복 팔 소매가 다 헤어져 끝부분이 너덜너덜 한 것을 본다.
평소엔 눈이 안 좋아 모르다 마침 돋보기를 껴 밝게 보였다.
이 옷을 입고 여러나라를 다녔지. 주로 더운 사막에, 동남아의 고산지대에도 갔었지.
너무 오래 입었군. 그래도 계속 입어야지.
아침마다 병원 꼭대기 층에서 한 층씩 각 두 병동을 전부 돌아볼때 내겐 유니폼이지.


신문의 광고면은 마침 쿨한 여름이라며 여름양복 특별전을 소개한다.
롯데 잠실점, 바로 이 곳에서 이 양복윗도리도 산 것인데. 한 십년 됐을까?
38만원이라는 가격에 가 볼까 싶던마음을 접는다.

버스는 평택을 지나 방조제를 건넌다. 젊은 시절 아산만에 방조제가 처음 생겨 구경 갔던 기억인데 이곳이 그곳인가 속으로만 궁금하다.

천안에 공장을 차리고 골치 아플 땐 서울에 올라가는 길에 망중한을 즐긴다며 젊은 운전기사와 여비서에게 현충사에 들렸다 가라 했었는데.

어린 시절 서해안 해수욕장에 가려면 아산 예산 서산을 거쳐 갔는데 옛길과는 다르다.

온양온천을 지나면 도고라는 새 온천이 유명했었는데.

신평면 거산리 라는 곳에 버스를 하차하여 상례원 장례식장을 향하는 노인과 택시를 합승한다. “혹 유0태?” “아 녜 고인의 자제분이 저희 회사 직원이어서”

병원에 붙어있는 장례식장도 항상 이상한 느낌이었는데 요양원에 붙어있는 장례식장은 더 이상한 느낌이다. 자신의 종착역 한 정거장 전이라는 막장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

쓸쓸한 빈소에 문상객은 거의 없고 일가 식구들만 모처럼 만나는 듯 누구 조카고 아들이고 서로 인사들이다.

커다란 식당 한켠에 자리잡자 상을 내오는데 혼자 앉기 미안하다.

“남은소주 반병짜리 있으면 갖다 주세요.”

덩그러니 혼자 앉아 밥을 먹는데 근처에 사시는 분 한의원 원장이라는 영감님과 초로의 영감님 둘이 동석한다.

“간 이가 얼마나 됬지?”

“내년에 76일 거에요.”

“아들은 50 됏나?”

“잘모르는데 한 40됏을거에요”

“장가도 안 갔죠.”

“부인은 안왔나?”

술을 한 두잔 서로 건넸으니 내가 답한다.

“모친은 편찮으시다 하던데요.”

한의원 영감은 혼잣말처럼 한마디 한다.

“잘 해야 가정이 안 깨지지”

“결국 저렇게 가네”

쓸쓸한 빈소에 한의원영감님도 마음이 처연한가보다.

고인은 요양원에서 혼자 계시다 돌아가셧나보다. 그나마 고향의 요양원이어 위안이 되셨었을까?

충청 국립대 법대를 졸업하고 고시에 오랫동안 도전했던 상주는 고인의 꿈과 희망이었을텐데. 이제 꿈을 접고 나와 일하는데 나는 그의 정확한 나이조차 몰랐던 것이군.

키크고 잘생긴 말 수 없는 그가 30대 일 것으로만 생각했었는데, 먼 신림동에서 분당까지 출퇴근 하길래 강남쪽 병원으로 옮겨줘야지 정도만 생각했었지.

거리가 멀어 아침시간 출근이 어려워 오후2시 출근하는 근무만 자원해 타 직원들과의 형평을 나중에 셈해보려했었는데.

부친상을 계기로 고향에 정착하느라 회사를 그만 두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어 향후대책을 가늠해 보려 나는 온 것일까?

말 수 없는 그가 분당에 계속 다니기를 원하면 나는 그의 마음속의지를 헤아려야 할 까? 그의 미래를 위해 강남을 강권해야 할 까?

한 시간 후 서울행 버스가 있다기에 시골 삼거리 다방에 들어선다.

대학시절 교문 바로 옆 천지다방이 기억난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항상 늦기에 책을 한 두 시간 읽다보면 그녀는 왔었지만 누구였었는지 모습도 이름도 기억이 안난다.

실연을 했었는지 학교앞 소주를 대여섯병 먹고 택시에 토하며 집에가니 부친께서 걱정하며 나무라던 기억이 안 잊힌다. 살아생전에 효도를 다하라 고 하더니 옛말 그른것이 없다.
선친도 실망만 하며 임종을 맞으셨겠지. 부고를 듣고도 텍사스에 가지를 못 했었다.

시골다방은 대낮에도 벌써 취한 중년 대머리가 홀로 와 레지들과 말을 섞고 싶은가 본데 아무도 그 곁에 가지 않는다. 그는 탁자에 머리를 대고 잠든다.

앞으로도 다방에 가 볼 일은 없을 것이다. 다방이 없어지고 카페만 있으니.
다방에 앉아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본다.
이제 많아진 시간에 국내산천경개를 유람을 다녀볼까 싶었는데 혼자 있는 이 곳 시골 삼거리 다방에서 내겐 여행도 어울리지 않겠군 싶다. 허전하다 라는 느낌은 어디를 가건 어떻게 하건 물리치기 어렵겠다. 그저 과거와 추억만을 반추하게 되겠지.

가락동 숙소의 문을 열고 들어서며 안도감이 든다.

그래 이곳이 나의 쉼터이지.

추위와 번민에 허전함에 몸부림치던 이 곳 내 숙소가 시골길을 한 번 다녀오니 아늑함을 되새기게 된 것인가?

그저 병원에서 열심히 일하고 수하직원들에게 아주 작더라도 희망과 보람, 실익을 줄 수 있게 매진해 보는 것이 내 남은 生이겠지.

냉장고의 소주를 한 병 꺼낸다. 동원 버섯 해물완자 6개를 후라이판에 지진다.

나는 이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