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프로바둑의 면면을 보면
새 시대가 열린 듯한 느낌이 든다..

어제인가는 이 세돌 대 강동윤의 바둑을 티비에서 보게 되었는데
초반에 하변에서 복잡한 변화가 시작되는 무렵이었다..
말많던 강동윤이 이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시기로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 이세돌의 다음으론 최철한이나 박영훈의 이름이 들렸었는데
박영훈은 한쪽에서 원성진과 승부를 다투고 있으니 이름값은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유독 최철한이 빠진 것이 눈에 띈다..

강동윤의 나이도 이제 20대 초라고 하니 힘을 낼 만한 시기도 된 듯하다..

이 세돌을 보고 있자면 타고난 운이 좋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말썽이 있었지만, 휴직 후의 흐름을 보면
바둑은 목하 세계를 향하여 열리고 있는데
그는 아직 포석을 크게 염두하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끝내기도 약하다고 스스로 말한다.. 어쨌든 아직도 바둑의 비중을 전투 쪽에 두고 있다는 것인데
지금의 상황으론 그에겐 아직도 먼 길을 갈 수 있는 양식에 여분이 있다는 말이다..

휴직 후에도 나이가 20대 후반.. 건강의 염려가 생기기 시작할 무렵인데
휴식으로 복구할 기회를 얻었고, 형제들이 공들인 책도 청춘의 기념비로 나왔는데다가
여러 측면에 제도화의 문제도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이 창호가 타고난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비할 무렵에, 매니저를 두라, 휴식기간을 가지라고 하던 그 좋은 덕담들이 모두 이 세돌에게 유용하게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과연 새로운 생활변화 후의 이 창호에겐 새로운 동기부여가 가능할 것인지...

원성진이 결승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매력적인 현상이다..
친구들이 다들 한 자리를 차지할 무렵에 혼자서 고독을 씹었을테니, 그에게도 이제 기회가 과연 얼마나 올 것인가? 한발 늦은 성공의 기회라도 더 즐거운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송아지 무렵에 친구들과 함께 두각하지 못하였다면, 한 발 늦게 출발하더라도
강동윤, 이 세돌 등의 강자들과 힘을 겨루어본다면, 또 다른 그림이 아닌가?

여성프로들 간에 무여회라는 모임이 결성된 것을 알게 되었다..
창립배경을 보니 좀 묘한 느낌이 들었다..
프로입문을 하고나서 도리어 지속적인 공부를 할 여건이 없었다는 것이다..
프로들이란 당연히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긴 하지만
스무살 아가씨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다..
이 민진 5단의 입장에선 개인적으론 아쉽던 경험을 토대로 후배들과 출범하였다고 하는데
아마도 지지옥션 배가 지속되는 흐름을 타고, 장기적으로는
시니어대회라든가 여성리그 등도 어떤 식으로든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
무여회는 이미 분기별로 리그전을 공식적으로 시작하였다고 하니
세상 일은 제도적으로 진행하는 것.. 한 해 정도만 지나면, 3 내지 4분기가 완성될테니
지지옥션 배와 더불어 또 하나의 프로바둑의 축이 형성되고, 아시안게임이라는 특화된 사건과도 맞물려서
좋은 단초가 될 것 같다..

지금 한국은 조금 묘하게 돌아가고 있지만
근대국가라는 면에선, 형성 중의 과정인 듯도 하다..
헌법이나 경제시스템 등의 모든 면들이 일차적으로 수입된 방식으로 시작되어서
주체적인 시스템빌딩의 경험이 적은 편이었으니
6.25 이후의 60년이 된 금년이지만, 국가단위로 보면 이제사 성년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말썽은 많지만...
한류다 어쩌다 하지만, 사실 진정한 무역이란 문명의 교역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삼권분립이나 시장경제라든가 하는 것도, 자연현상적인 면도 있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역시 하나의 수입문명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지금 한국의 문명은 기본적으로 미국제품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고
전쟁이 일어난 것은 미국식과 소련제의 문명이나 사고방식의 판촉싸움에서 생겨난 고난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전에는 또 일본에서 자기 것으로 쓰라고 강제하는 시절이 한 40년 정도 강하였었고
그 전의 문명은 기본적으로 또 중국 식이었었다...
우리가 능력이 있으면 세계 4강의 모든 장점을 다 녹여서 명품국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는 것이고
처신을 잘 못하면, 또 남들에게 놀이판만 제공하고, 정작 원주민은 다시 고난을 겪을 것이다..
바둑계에서도 이런 큰 그림을 미리미리 잘 바라보면서 멋진 창조력을 발휘하기 바란다..
그리고 무서운 여자들의 모임도 거기에서 멋진 역할을 해주면 얼마나 좋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