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밤인가에 화면을 보니 임금과 성균관 유생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집에 간판 혹은 현판이 있는데, 명륜당이다..

윤리를 밝히는 강당이라는 말인데

윤리라는 말이 배척되게 된 상황을 생각해보게 된다..

사람의 마음은 원래 자신이 처한 상황의 구조적 의미를 궁금해하게 되어 있다..

이럴 경우 윤리라는 것은 바둑에 있어서의 기리와 비슷한 것이 된다..

기리를 알지 못하여 성장의 길이 막힌 사람은 즐기는 데에 한계가 있을 것처럼

윤리를 모르는 사람은 인생을 향유함에 한계가 있으리라고 말해야 될 것인데

윤리가 마치 공자나 주자가 강요하는 독단인 것같은 뉘앙스가 좀 생겨난 듯도 하다..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풍토에 숨막혀서 한국 정말 싫다고 말하는 중학생 소녀의 외침과

윤리라는 말이 생경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이 떠오른다..

조선조가 일본에 져버렸으니, 그 시대의 많은 것이 거부되는 것도 역사의 필연일까?

하지만 생활의 질서가 조리있기를 원하였던 고려조나 조선조의 기본발상 자체가 틀렸다고 보긴 힘들다..

자유평등박애라는 이념과 만상의 질서에 부합하는 생활방식이라는 이념을 놓고 보면

기본적으론 후자 쪽이 더 포괄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은가? 오히려 자유평등박애가 더 세부항목에 해당한다..

문제는 윤리라는 것이 마치 타인에게서 주어지는 것처럼 인식되는 풍토이다..

우리가 바둑을 익혀나가면서 정석공부를 누구나 하지만, 배우고 잊으라는 말은 원래 유명하다..

모든 인류의 문화유산은 참고서이지 그 외형을 따라가다간 현실에서 항상 패배한다..

하지만 지향점을 잘 파악하지 않으면 제대로된 성장도 쉽지 않다..

마음을 쉬라고 하지만, 항상 쉬는 방식으로 쉬어지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상황을 잘 살펴서 자신의 마음이 쉬어지도록 성실한 오랜 기간을 기획하는 것도 역시 쉬는 방식이고, 전략이고 전술이고 책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남의 떡이 커보인다고 서둘러서 흉내를 내어서 자신의 판을 짤 수 있을까?

내가 바둑을 좋아하면서도 대세관이 잡히지 않아서 고민하던 옛날 옛날 한옛날^^에

같이 놀던 1급 선수가 한 번은 투덜거리는 소리를 한 기억이 난다..

사람들이 자기 바둑이 포석이 약하다고들 하는데, 그 소리가 반복되니까 마음에 안들었던 모양이다..

포석이 자기 판짜기 좋도록 하는게 자기 포석이지, 책에 나오는 이론대로 내가 두어야 하나? 라면서

투덜거리는 것이었다..

당시에 나는 그의 말에 공감하였다.. 후속대책이 없는 남의 포석으로 어떻게 300수에 달하는 그 길고도 긴 여정을 내가 책임진다는 말인가?

그라고 해서 포석에 원리가 있고 이론이 있다는 것을 모르겠는가? 하지만 남들이 다 중공식 포석을 둘 때에는 이렇게 두는 것이 정수라고 해서 내가 그렇게 둘 순 없다..

책에서 여기까지 벌리라고 해놓았지만, 그렇게 하는 판이 번잡해질 것 같으면

책에선 손해라고 했더라도 한 간을 덜 벌리는 것이 나의 합당한 포석일 수 있다..

책에 적힌 포석이론은 합리적인 포석이다.. 그런데

한 줄을 더 좁혀서 내가 두는 것은, 이 한 판을 책임지는 나의 바둑이론이고 나의 윤리이고 내 안목인 것이다..

윤리는 책에 있거나 성현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순간을 합리적이고 타당하게 가꾸려는 나의 현실적 마음, 그것이 바로 모든 윤리의 뿌리이다..

그리고 그러한 구체적 모든 노력이 결실을 맺어나가는 과정에 비로소

타인의 모든 윤리들이 형성되고 사회화된 배경을 나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세돌의 마음도 이 창호의 눈도 노자의 마음도 공자의 노력도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바둑판을 직접 보고, 상황의 소리를 귀기울여듣는 그 마음, 그 마음이야말로 윤리적인 마음이라고 하겠다..

그렇게 모든 개개인이 성장하는 과정 자체를 사랑해주라는 말이 바로

내가 받기를 원하는대로 타인에게 해주라는 저 유명한 기본윤리가 아니겠는가?

삼강이라든가 오륜이나 인천10계라는 것들은 그러한 보다 근본적 윤리를 통하여 어떤 사람들이나 집단이 터득한

정석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정석 이전에는 기리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내가 기리를 터득하지않은 상태에서의 정석은 바둑을 재미없게 만드는 원흉이 되고, 그 결과

애꿎은 정석이 욕을 먹는 경우도 생기겠지만, 정석을 세상에 제공한 사람들의 입장에서야

그것이 바로 자신들의 연구성과이고, 세상에 대한 자신들의 공헌일 뿐이지

자신들의 철학대로 개개인이 살아야 한다고 어찌 그들이 강요했으리오?

지금 한국공동체는 좀 방향감각이 곤란해지고 있지 않은가 싶다..

새로움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있던 밥줄이 힘들어지는 것에 화가나서 밥을 선택했지만

도리어 밥의 질서조차가 죽도 밥도 아닌 것이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도 같다..

밥줄이 힘들다고 밥만을 지향하면 밥동네 자체가 혼잡해진다는 것을 지금 우리는 배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식으로든 질서나 지향성이라는 것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긴 기리를 몰라도 바둑이라는 점에선 매한가지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기리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잊혀지기 시작하면, 바둑공동체 자체가 방향성을 상실하게 되는 점도 있다.. 그러면 그 공동체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것 같다.. 그러니

이념지향이나 윤리라는 개념의 존재여부라는 것은 공동체의 존립여부와도 연관된다는 것이 드러난다..

노자가 말하는 덕은 그다지 강박적이지 않지만

덕이라는 것이 도에 준거한 생활양식이라고 본다면, 그 또한 윤리가 아니지 않다..

그런데 노자가 말하는 덕에서 폭력성을 느끼는 경우는 적어보인다.. 하지만 말이 다르다고 말을 서둘러서 미워하면 곤란하다.. 바둑공부 안하고 고수가 되는 경우가 없지 않은가?

명륜당의 이념 자체가 나쁘거나 배패를 불러온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진 것은 진 것일 뿐이다.. 시장원리를 발견한 스미스나, 시장의 한계를 보강한 사람들의 밝은 안목이라고 해서 윤리를 밝힌 것이 아니지도 않지 않은가? 시장의 이치도 바로 윤리이다..倫이라는 말은 질서를 의미한다..

산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 윤리를 깨우치는 과정이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대로 도를 깨우친다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한수한수의 의미를 밝히려면, 전체적 흐름을 파악하는 눈은 이미 전제되어야 한다..

윤리가 덕이고, 덕은 도에 준거한 덕이라면

결국 명륜이라는 것은 매 순간의 의미를 밝히는 작업일 수 있다..

걸어가는 매 순간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 명륜이라면

향교의 교장이 윤리를 더 잘 안다는 보장도 없다..

인셉션이나 메이트릭스나

디지탈 카메라의 한 shot 등등, 그 모든 구조학적 탐색이

만상의 구조적 의미와 그 구조에 입각한 행동양식, 즉 윤리를 구하는

간절한 영혼의 목소리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