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몽상이라는 말은 유명하지만
개인적으로 친근해지는 계기가 있었다..
좀 오래된 일이지만, 연애사건에 휘말려서 충격을 받았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혹은 덕분에, 전도몽상 뿐 아니라 감정의 무상함에 대해서도 숙지하게 된 일이었으니
나쁜 일이라는 것이 과연 나쁘기만 한 것인지 좀 의심스럽다..
전화위복이라더니 지금 생각해보면 좀 일리가 있지만 당시로선 좀 불가능한 일이었다..

쉽게 말해서 연애사건 같은 것인데
감정적 충격이라는 것이 좀 남달라서 머리로 이미 잘 아는 구조인데도, 심리적 상황은 참 아득하기만 하여서
도대체가 어느 천년이 되어야 그런 심리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지 까마득하게 미래가 없었다..
당시에도 이미 공부와의 인연이 어느 정도 되었고, 작으나마 성과가 이미 있던 시기였는데
그런 상황을 닥치고보니 생의 핵심적 상황을 감당할 수 없는 구조가 되어버려서
그러다가 인생을 몽땅 망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아마도 대상에의 지향이라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당시의 나도 어느 노래에 나오는 것처럼 길목을 가로막고 가지 말라고 애원이라도 했을 지 모르겠지만
이미 그런 구조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도저히 그렇게 될 문제도 아니고
정말 일만년 짜리의 걱정더미에 올라앉은 셈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감정이나 생각의 자극이나 충격이 순전 거짓말이라는 것을 잘 알게 된 것도 그 사건 덕분이었던 것도 같다.. 왜 그러냐 하면
당시의 그 심리는 정말 1만년이 지나도 해결될 것 같지 않은 곤란함이었지만
어차피 인생의 갈 길은 뻔했기 때문에 무조건 주제에 더욱 집착하며 버텼더니
1만년에도 해결될 것 같지 않은 마음이 단 6개월이 지나자, 그런대로 살 만하게 된 것을 경험하고는
감정이라는 것이 말짱 거짓말이라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말끔하게 해결된 것은 아니었어서, 잘 아는 공부인 한 분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
대상에의 집착이 왜 생기는 것일까요? 라는 질문을 던졌더니, 당시의 내 예상과는 달리
그런게 전도몽상이 아니냐는 답이 나왔다...

그런데 그 답을 듣는 순간에 난 좀 의외였다. 예상과 다른 방향에서 답이 나온 때문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전도몽상이라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전도되었다는 말은 정말 대단한 말이다..
전도되었다는 말은 단순히 특정 대상에 집착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애초에 반대방향으로 살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될 만하다..
대개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가 죽어간다는 식으로 인생을 대한다.
그런데, 전도라는 용어를 쓰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이라는 것 이전에 애초에 시공연속체를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들 자신인 셈이 된다.
무명이라는 용어가 바로 거기에 관련된다.. 그러니까 실제론 세상을 자신이 만들어놓고선 스스로 거기에 갇혀서 고생을 하지만, 사실은 갇혀 있는 그 틀을 만든 것이 우리들 자신이라는 것이 바로 증상심학의 핵심이고 전도라는 말의 뜻이 되는 셈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갇힌 적이 없다는 말도 나오는데, 정말 법상의 형성과정에 대한 설명을 처음 대하였을 때의 그 쇼크가 생생하다..
석남사의 정수원, 즉 삼매의 집 주련을 보면 방거사의 공안이 나오는데
만법과 짝하지 않는 자가 누구냐라는 말은 흔한 개념이긴 하지만, 거기에 담긴 뜻은 정말 인간의 일상에 비하면 대단한 것이라고 할 만하다.. 살불살조라는 말도 흔하지만, 그 전후의 문맥을 잘 보면, 유가적인 관습에 친숙한 우리들이나 혹은 가족이라는 틀을 위해서 노심초사하는 입장에서 보면 참 쳐다보기도 힘든 문맥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또 그 한쪽으로만 강조하다 보면 말썽이 생기기도 쉽고..
아마도 그래서 옥을 가진 사람은 복식을 대충하라고 했었던 모양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