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일기 197,

모처럼 기원을 간다.

토요일 하루 종일 방에 있으려니 답답하다.

4시에 눈을 떴다가 아 오늘은 토요일이지 싶어 다시 잠을 청해도 6시 이다.

12시 경 라면을 하나 끓여 먹었어도 만두가 아까워 소주 반병을 먹은 것이 잠들어 눈 뜨면 4시가 넘는다. 라면은 정말 내가 싫어하는 것인데. 평소엔 끓여 놓고도 속에 넣은 만두 몇 개와 계란만 먹곤 라면은 버리기 일쑤인데 오늘은 끝까지 다 먹는다.

오랜만에 두는 바둑은 상대는 박 사장이다.

어느 은행 차장인데 그는 박 사장으로 불린다.

분당에서 이 곳 가락까지 오는 이유는 이곳이 좋아서 일까?

백을 잡고 고미 다섯 알을 준다.

마구 대드는 쎈 기력이고 예측하지 못한 기수연발로 끝까지 방심 할 수 없는 상대이다.

평범하게 두자 싶으며 최근 감각도 둔해졌을테니 쉽게 두자 싶다.

내가 잘 둔 수는 없지만 상대의 무리 과수에 힘입어 11집을 이긴다. 고미 다섯 알을 빼면 16집을 이긴 것이니 많이 이겼군. 편안한 마음에 마지막엔 조금씩 양보했는데 같은 편이 많이 져 결국 돈을 잃지만 벌금 만원을 받아 만원만 잃은 것이다.

두 번째 판은 역시 쎈 상대인 심사장을 만나 간신히 8집을 이겨 또 편은 졌지만 1등으로 만원을 받아 두 판에 2만원을 잃었다.

세 번째 판은 그냥 포기하고 올라갈까 싶다가 잃은 돈 2만원이 아까워 다시 도전한다.

상대는 빛나리이다.

가락시장에서 일한다며 잠바차림 이다가 오늘은 양복차림이다.

낯선 모습이다, 지난 10여년 보아왔지만 양복차림은 처음인 것 같다.

기원의 바지 사장도 했었고 요즘은 기원 위 5층에서 여럿이 모여 사는데 한 켠을 차지 한 것 같더니 어디 취직을 한 것일까? 황 사범이 어디 주차관리 요원으로 취직을 한 것 같더니 그 쪽으로 들어간 것일까?

어쨌든 깔끔한 그의 복장이 보기 좋다.

27집 인지 이긴다.

왔다갔다 바둑에 졌네. 그는 중얼거린다.

만원 씩 두 판 졌어도 1등은 해 잃었던 것을 이제 본전이 되었다.

21:40 늦은 시간인데 본전이라도 했으니 다행이다.

방에서 나서며 기원에 가기 전 담배를 두 갑 샀는데 벌써 거의 한 갑을 다 폈다.

바둑 세 판을 두며 한 갑을 다 핀 것일까?

티브이에서 본 기억은 어제오늘 이었는지 몰라도 폐는 이상신호가 올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아 수술도 못하고 해도 회복이 어렵다는 장면이었었는데. 티브이 속의 조언은 이상하면 폐 CT를 찍어 보라는 것이었는데.

오른 쪽 가슴이 뭔가 이상한 듯 싶어 만약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 갈지 모르니 그저 평소에 잘 해야지 싶다. 하긴 이것도 그저 기우일 뿐 일수도 있다.

미국에 살던 시절 가슴 한 복판 기도가 이상한 듯 싶었어도 아무 일 없었었고,

지난 십 여년 병원생활을 하면서 이리 담배를 많이 피우니 안 이상하면 이상한 것이겠지 싶었지만 해마다 건강검진을 하면 아무 이상도 없긴 했었다.

내가 지금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쓸데없이 직원들의 마음을 얻는다며 술 사주러 다니지 말고 저금을 해 용인으로 이사해야 하는 것일까?

어제는 모란에서 나이 든 직원 둘과 막걸리를 마셨다.

막걸리 한 잔을 하고나면 평소 말 없던 직원도 한 마디 마음속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리 열심히 일하는 그에게 내가 당연히 해야 할 도리를 갚는 듯 싶기도 하다.

동료직원이 갑자기 일하던 병원에 입원을 하는데 보증을 선 직원은 그가 죽고나자 원무과에서 독촉장을 받는다. 죽은사람은 모르겠지만 산 사람은 막상 그의 가족은 나 몰라라 하고 차압이 들어올까 노심초사이다. 내가 만약 아프면 나도 그렇게 되겠지. 보증을 서 줄 직원이라도 있을까?

항상 딴에는 옳은 길을 걸으며 장부의 삶을 살아왔는데 왜 아무것도 남은 것은 없을까?

쓰러지는 순간까지 열심히 바둑을 두어야 하는 것일까?

바둑은 두지 말고 병원에서 열심히 일을 하면 되는 것일까?

열심히 저축을 하며 차후를 기약해야 하는 것일까?

버는 돈도 작고 쓰는 돈도 사실 거의 없는데.

불현듯 이럴 때가 아니지 싶으며 조용히 혼자 생각을 해 보아야지 싶지만 세 번째 판을 두기 시작했다. 최선을 다 해 이긴다. 이미 편이 많이 이겨서 그리 열심히 둘 필요도 없었던 것인데. 간신히 본전을 한다. 일어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