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

모든 병동이 신관으로 이전 했으나 NP(정신병동)과 호스피스 병동은 그대로 구관에 남아있다.

신관과 구관은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나 중간의 간호대학 건물을 거쳐 가려면 적잖이 먼 거리이다. 정신병동의 콜 에 직원대신 내가 나선다.

닫힌 철문의 인터폰으로 확인 후 열어주는 NP 스테이션에 가니 남자간호사가 원무과에 접수할 보고서를 준다.

탈원 보고서, 오전 Alcholic으로 자진 래원하여 입원한 남환이 보호자(부인)와 닥터가 면담하는 사이 옷을 갈아입고 탈원을 하였다는 내용이다. 철문의 여닫이는 간호 스테이션에서 통제하는데 재주도 참 좋은 분이군 싶다. 군데군데 보안요원들이 있지만 막기는 쉽지 않겠지.

일요일 오후의 근무는 평일보다 한가하지만 ER(응급실)은 더 바빠진다. 여느 때처럼 시간이 갈수록 ER 입구의 대기석엔 환자와 보호자로 가득하다. 바쁜 일을 도와주다 응급실 중앙의 메인 스테이션 옆에서 손을 씻는다.

“49회지?” 하며 다가서는 늙수그레한 남자의 말에 동창이군! 느끼며 “이젠 늙어서들 못 알아보겠네.”하며 악수를 한다. “아까부터 네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니 맞지!” 싶어 이제 이야기 한단다.

“왜 누가 입원을 하셨나?”

“자리가 어디야?”

“저 앞쪽 F3번 이야.”

“자리를 쉽게 안 내줄텐데 벌써 침대를 얻은걸 보니 중환이신가?”

“아냐 비어 있기에 어지럽다고 그냥 누웠어.”

8년 전에 암으로 상처를 했는데 얼마 전 소개로 새로 만난 분이라고 묻지도 않는데 장황한 설명을 한다. X-ray 와 C/T촬영 채혈 등을 하고 기다리는 중 이었다.

“여기는 말 그대로 응급실이고 오늘이 일요일이어 내일 아침 담당과가 결정되고 해당과의 닥터 회진 때 까지 기다리게 될 거야.”

“나는 오늘 이브닝 근무여서 밤에 퇴근하고 내일 오후 2시경에 다시 나오니 그때 들려볼게.” 응급실 밖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던 친구에게 말하고 헤어졌다.

다음날 출근길에 ER 간호사에게 환자의 경과를 묻는다. 모니터를 보던 RN(간호사)은 “탈원 인데요.” 라고 대답한다. 군인들이 탈영하는 것은 있어도 탈원은 어려운 일인데 참 이상한 일이군 싶다. S의료원의 경우 의료보험증을 확인하거나 보험회사의 개런티를 팩스로 받아놓은 후에야 치료를 시작하거나 급한 경우 원무과나 보안요원들이 감시의 눈길을 늦추지 않는다. 종교재단의 병원이어 입원수속도 허술하고 보안요원도 모르고 있었나보다.

NP병동의 탈원 보고서를 원무과에 전하며 탈원 후 처리절차에 대해 물었다. 월말까지 전화로 독촉하며 기다리다 안 되면 내용증명을 보내는데 실상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여직원은 설명해준다. 친구는 의료보험이 없었는지 39만원이 청구되어 있다.

오죽하면 그랬으랴 싶어 동창회 총무에게라도 연락해 대신 갚는 것을 생각 해 보나 그것도 본인의 명예에 오히려 누가 될 지도 모르겠다 싶다. 전화라도 해 사정을 물으면 오히려 곤란해 할 까봐 전화도 못한다. 검사결과라도 일러줘서 실제 무슨 병이 있는지 안심해도 되는지 알려주고 싶은데 전화를 할 수도 없고 안 하기도 그렇고 딱하다.

내가 반대로 그런 입장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아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바쁜 병원일과에 잊고 시간이 흐른다.

16층 병동의 간호사실에서 어제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 보고를 원한다.

X-ray를 찍은 환자가 넘어져 어깨와 얼굴을 다쳤는데 경위를 알기 원한다.

보호자 없이 휠체어를 타고 촬영실에서 촬영 후 어지러워 검사대에 앉아 있었는데 영상의학과 직원이 나가라고 재촉해 일어서다 넘어졌으며 이송요원은 검사실 밖에 있어 몰랐으며 책임소재엔 관련이 없다. 라는 내용을 해당 간호사실과 우리 회사 간부에게 보고한다.

11시반경 오피스텔에 도착하여 소주를 한 병 꺼낸다.

사과 한 개를 깎아 잔을 기울이다 소파에서 잠들었다. 끝.